어젯밤 무단히
오래전 헤어진 옛 연인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그와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태어난 조카가 지금 중학생이니 정말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그 사람의 근황을 궁금해하거나, 찾아보거나, 물어보지 않았다.
아는 사람들을 통해 어렴풋이 들리는 소식을 몇 번 들었을 뿐.
헤어진 뒤로는 한 번도 마주치지 않는 현실이 놀랍기도 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애써 외면한 듯도 하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왜 갑자기 궁금해졌을까?
SNS에서 몇 단어, 몇 사람을 검색하고 여러 단계를 거쳐 그를 찾아냈다.
이젠 한 아이의 아빠가 되어 있는 사람
자신을 닮은 아주 예쁜 딸의 아빠
나와 헤어진 뒤 그는 (놀랍도록) 오래 혼자였던 것 같고, 30대 후반 '비교적 늦은 나이'에 결혼한 것 같았다. 어쩌면 아이는 40대에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가장 크게 든 마음은 안도감이었다.
이젠 좋은 사람을 만나서, 외롭지 않게, 안정적으로 살고 있겠구나.
예쁜 딸을 낳아 사랑을 듬뿍 주고받으며 살고 있겠구나.
어린 시절 풀었던 시험문제의 답안을 어른이 되어 맞추는 느낌이었다.
한 사람 인생을 60%쯤 확인하고 나서 오랜 세월 뒤 40%를 일순간 목격하는 듯한.
그렇게 살도록 정해진 누군가의 인생 상자를 십수 년 뒤 열어보는 느낌.
당신은 어느 때에 어떤 사람을 만나, (내가 낳았어도 그리 예쁘게는 못 낳았을 것 같은) 아이의 아버지가 될 운명이었군요.
당신의 운명을 확인했으니 나는 이제 안심하고 돌아가겠습니다.
오래된 숙제를 해결한 것 같았다.
20대의 많은 시간을 함께한 사람
마음 따뜻한 사람
오래도록 홀로 지낸 후 만난 짝은 분명 좋은 사람이리라 믿는다.
내 상상 속 그 사람의 모습은 '중년의 아저씨'였는데 약간의 흰머리와 주름이 늘었을 뿐 여전히 '앳된'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나와 결혼했다면 진작에 '아저씨'가 되었을런지는 그 누구도 모르지)
참 좋은 사람이지만 그와 헤어진 걸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그와의 이별 후 홀로 있는 시간이 있었기에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게 되었다.
어쩌면 길고도 아팠던 그 시간 덕분에 당신도 더 좋은 사람이 되었을지도...
그리하여 지금의 당신이 존재하는 것일 수도...
잘 살아요 행복하게.
당신의 행복과 안녕을 빌게요.
내 인생의 빛나던 순간에 나타나 사랑을 주고받았던 사람
서로의 역할이 끝난 뒤 이젠 각자의 길을 걸어가게 된....
부디 행복하기를 바랄게요.
안녕
오랜 시간 뒤의 진정한 작별 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