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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르스IRS Oct 08. 2022

힘 빼기 연습

'열심히'보단 '잘'

두 달 전에 갑자기 크루저보드가 사고 싶어져서 당*으로 싼 녀석으로 데려왔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신경은 영 없었던 터라 시간이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새벽 4시에 일어나겠다 집 근처에 있는 중랑천으로 가서 보드를 타기로 했다. 처음에는 겁이 너무 많이 났다. 사기 전에 봤던 글에는 다들 타면서 몇 번이고 넘어졌다길래 다칠 것 같기도 했고 급하게 내리면서 보드를 앞으로 날려버리기도 했다고 해서 누군가 다치게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근데 생각보다 그렇게까지 어렵지는 않았다. 애초에 스케이트보드처럼 기술을 배워야 하는 것도 아니라서 작은 트랙을 몇 번 도니까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제일 어려웠던 건 발로 땅을 찰 때 보드에 올린 다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였다. 발의 앞에 힘을 줘야 할지, 중간에 힘을 줘야 할지 전혀 모르겠더라. 그렇게 계속해서 타다 보니 적응이 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편하게 트랙을 돌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렇게 편하게 돌 때 내가 발의 어디에 힘을 주고 있는지를 봤더니 앞과 중간 사이 쯤에 힘을 주되 힘을 세게 주기보다는 오히려 빼고 있었다.


비단 보드뿐만 아니라 수영에서도 몸에 오히려 힘을 빼야 물에서 몸이 뜨고(나는 아직 수영할 줄 모른다) 볼링을 할 때도 어떤 자세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신경쓰지 않고 편하게 굴렸을 때 오히려 점수가 높게 나왔던 것 같다. 우리가 익숙해지고 잘하는 일들을 보면 의식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내 몸이 자동으로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을 자주 보곤 한다. 그렇다면 무언가에 진전을 이루고 싶다면 힘을 주는 게 아니라 힘을 빼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열정이 굉장히 많다.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입사원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하는 말도 '열심히 해'이고 반대로 신입사원들이 포부를 내비치기 위해 하는 말도 '열심히 하겠습니다!'이다. 그런데 열심히 하는 게 좋은 걸까. 나는 이번 글에서 '열심히'와 '잘'을 비교해보고자 한다. 수요일부터 오늘까지 사람들을 응대하는 단기 알바를 했었는데 이 알바를 예시로 들어보겠다.


단기이기도 하고 사람을 직접 응대해서 안내하는 알바는 처음이라 조금 서툴렀다. 이때 만약 '열심히' 고객을 응대했다면 아마 내가 알고 있는 부분들을 다 나열하면서 물어봤을 것 같다. 이름은 어떻게 되시는지, 휴대폰 번호 뒷자리가 XXXX이 맞는지, 필요하신 건 없는지 열심히 물어보고 어떻게든 부족함 없이 해드리려고 하지 않았을까 싶다. 반대로 잘하려고 했다면 핵심적인 부분만 물어보고 따로 얘기가 없다면 더 말할 것도 없이 고객을 보냈을 것 같다. 말 그대로 상상이고 예시로 든 부분이라 논리적인 설득력은 부족하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전달이 됐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열심히 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느리더라도, 서툴더라도 천천히 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간단하게 그린 그림이지만 설명하기엔 부족하지 않을 것 같다. 두 사람이 출발점에 있고 목표점으로 가야 한다고 하자. 파란색 길을 간 사람은 5년이 걸려도 결국 목표점에 도착했지만 빨간색 길을 간 사람은 1년 만에 갔지만 10도가 들어져 목표점에 도착하지 못했다면 누가 더 좋은 걸까. 당연히 오래 걸려도 목표점에 도착한, 파란색 길을 선택한 사람이겠지.


우리네 삶은 사실 이렇게 명확하게 목표점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목표를 잡는 것조차 힘든 것이 당연한데 열심히 가기만 한다면 목표점에 도달했는지 아닌지도 모를 것이다. 이럴 때는 오히려 출발점에서 목표점이 어디에 있는지 잘 찾아보고 그때 출발해도 괜찮지 않을까.


물론 목표점이 중간에 바뀔 수도 있다. 그랬을 때 빠르지 않은 속도로 가던 사람들은 방향을 트는 게 쉽겠지만 빠르게 가던 사람들은 관성 때문에 방향을 틀기가 비교적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속도를 위해 열심을 다해서, 힘을 다해서 가다가 그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부족한 체력과 느껴지는 허무함은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주저앉기 쉽게 만들 것 같다. 그래서 요즘들어 다들 지쳐있고 번아웃이라는 용어도 자주 쓰는 게 아닐까 싶다.


맨 처음에 운동들을 들어 얘기했던 것처럼 진짜 잘하는 사람은 힘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힘을 빼는 사람일 것이다. 열심히 달리다가 페이스 조절에 실패해 멈추는 것도 실력이 부족한 것일테니. 다른 사람보다 조금 느리더라도 좋은 길로 가다보면 언젠가는 닿아야 할 목적지에 닿을테니 조금 더 마음에 여유를 갖고 걸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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