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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르스IRS Oct 13. 2022

현재 가십거리가 된 학교들의 모습에 대하여

학생은 강하게 통제해야 할까, 그대로 둬야 할까

뉴스를 보다 보면 초중고 학생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경우가 요즘 들어 많이 보이는 듯하다. 여자 교사가 있음에도 남학생이 상의탈의를 한 상태로 수업을 듣는다든지, 수업 중인데 교탁에 누워 휴대폰을 한다든지, 교사가 실질적인 제재를 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 반항을 한다든지. 일부 뉴스나 신문에서는 '교권이 추락했다' 같이 걱정된 마음을 담은 제목들과 내용이 자주 보인다.


이런 내용을 담은 글이 커뮤니티에 올라오면 어떤 커뮤니티에서는 체벌금지 같이 학생에게 잘못을 알게 하는 수단이 교사에게 사라져서 그렇다는 댓글이 자주 달린다. 본인들이 학교를 다닐 때도 잘못된 행동을 하는 학생이 있었지만 체벌로 인해서 잘못을 깨닫거나 체벌을 받지 않기 위해 조심하게 되어 교정이 되었다는 것이다.


학생을 교육하는 데에 있어서 서로 대치되는 의견이 두 가지 있는 것 같다. 한쪽은 통제를 통해 잘못된 행동들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쪽, 다른 한쪽은 그런 통제가 아이들을 의기소침하게 하고 위축되게 하니 그대로도 괜찮다고 응원해주어야 한다는 쪽. 부제로도 적은 글이지만 학생들을 강하게 통제해야 할까, 그대로 둬야 할까.


내가 내린 결론부터 말하면 둘 다 해야 한다. 어떤 부분에서는 지도가, 어떤 부분에서는 그대로를 유지할 수 있게 돕는 응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먼저 지도가 필요한 부분은 두 가지다. 제일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는 것.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헌법과 같은 기초적인 법에서부터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고, 원하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고, 원하는 종교를 믿을 수 있는 자유. 그래서 누구도 다른 사람에 의해 휘둘리지 않을 자유가 있다. 하지만 이 자유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니다. 내가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해서 분을 참지 못해 친구나 주위 사람들에게 폭력을 휘두른다든지 명예를 실추시키기 위해 없는 말을 지어내어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닌다든지. 이것은 자유가 아니라 무질서이다. 다른 사람의 자유와 인권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말과 행동은 상호존중이라는 중요한 규칙 안에서 행해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교사들에게 폭언을 하는 것이나 수업을 방해하는 것 등은 명백히 교사나 다른 학생들을 존중하지 않는 무질서의 행동이다. 학생들이 많은 다른 사람들과 어우러져 잘 살아가려면 이런 잘못된 행동은 교정되어야 한다. 특히 가정을 제외했을 때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교육기관인 학교는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아야 할 의무가 있다.


두 번째로 지도가 필요한 부분은 포기하고 내려놓는, 현재에 머무르고 무기력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한 사람도 빠짐없이 가지고 태어난 능력들과 장점들이 있다. 그러나 이런 강점들은 가만히 둔다고 자라는 잡초 같은 것이 아니다. 먼저 발견되어야 하고 각자에게 적절한 훈련법을 찾아야 하며 삶이 끝날 때까지 발견과 훈련을 반복해야 한다. 과학적으로도 뇌는 다른 신체와 달리 계속해서 사용하면 늙지 않고 발전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항상 전진하는 삶이 되려면 그래야만 한다.


그런데 학생들의 현재 감정을 위로하기 위해 이대로도 괜찮다고 하는, 반쯤 거짓말인 말로 위로한다면 학생들은 평생 가만히 있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평생 자기위로만 하다가 삶을 마무리하게 될 것이다. 학생들의 삶이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하는 학교라면 반드시 학생들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게 돕고 그 가능성을 더욱 높일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반대로 그대로 두어야 할 부분도 존재한다. 바로 이전 문단에서 '이대로도 괜찮다'고 하는 말이 반쯤 거짓말이라고 했는데 어떤 의미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얼마 전에 쓴 '학교라는 이름의 공장'(https://brunch.co.kr/@iarespecial/9)에서 적은 것처럼, 아직 우리나라 학교들의 대부분은 정해진 틀에 맞는 학생들만을 우수하다고 평가하는 면이 굉장히 크다. 아직은 모든 과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학생이 더 좋은 학교, 더 좋은 직장에 갈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어떻게 모든 학생들이 모든 과목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까. 당장에 가장 비슷한 가족끼리도 서로 달라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어떻게 다 비슷하길 바랄까.


그러니 기본적인 수준의 교육이 이뤄진 이후에는 학생들의 성향과 장점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파악해서 어떤 부분에서 강점을 보이든지간에 그것을 존중하고 인정해주고 똑같이 소중하다고 말해주면서 그 강점들을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이런 의미에서의 '이대로도 괜찮다'라는 말은 굉장히 힘이 나면서도 삶을 헤쳐나갈 힘을 주는 큰 응원이 될 것이다.


통제와 방임은 이분법적으로 나뉜다고들 생각하지만 사실 교육뿐 아니라 굉장히 많은 분야들을 보면 한 가지로 단정 짓기 어려운 것 투성이다. 오히려 한 가지로 단정짓게 되면 시야가 좁아지고 시야가 좁아지면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합리와는 거리가 훨씬 멀어지게 된다.


대립과 다툼이 생겼을 때 더 고차원의 대처는 상대방에게 내 의견을 관철하고 짓누르는 것보다는 상대방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설득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서로가 동등한 자리에서 진행되는 대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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