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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비 Mar 28. 2024

옆집 사는 엄마

2. 백억 부자엄마가 사라졌다!

    

 한참을 전화해도 받지 않았다. 급한 김에 같은 동네 사는 넷째 언니에게 전화했다.

“언니, 엄마한테 요즘 가본 적 있어?”

“아니, 저번에 돈 문제로 싸운 다음에는 안 갔어. 왜?”

“전화를 안 받아서”

“주무시겠지”

“아니야, 뭔가, 이상해. 그래도 전화는 받았단 말이야”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면서 차에 시동을 걸었다. 차로 가면 20분도 안 걸리는 거리였다.

 엄마는 오래되고 낡은 주택에서 생활비를 아껴가며 전깃불도 안 키고 살았다. 기름보일러를 켜는 것은 더 아까워 1인용 전기장판에 몸을 의지하며 겨울을 버텼다. 나는 우중충한 친정집이 가까워 오자 몸서리를 쳤다. 그런 친정집이 싫어서 명절 때도 친정에 가면 저녁 한 끼만 먹고 집에 가기 바빴다. 엄마는 어둡고 춥고 불편한 집에서 어떻게 살지?라는 생각이 들지도 엄마의 겨울을 안타까워하지 않았다.

<다 엄마 탓>이라고만 생각했다.


 머리를 흔들면서 엄마네 집으로 향했다. 몇 번의 신호위반과 과속으로 20분 걸리는 길을 10분 만에 도착했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엄마에게 무심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설마 도둑이 든 건 아니겠지?  문단속조차 하지 않는 엄마네 현관문은 오래되어 한쪽이 내려앉아 꽉 닫히지도 않았다.

도둑이 들었다면 집에 있는 금붙이를 먼저 가져갔을 텐데…. 엄마와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에도 나는 엄마에게 있는 순금이 떠올랐다.


엄마가 출장소 앞, 1층 건물에 세를 준 적이 있었다. 순댓국집을 운영하던 아줌마는 예쁘장하고 엄마에게 잘했다. 옷도 사다 주고 싸구려 신발도 사다 주고 반찬도 만들어 가져다주었다.  심심한 저녁이면 와서 밤새 수다를 떨고 가기도 했다. 월세도 밀리지 않고 잘 냈다고 했다. 돈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무심한 자식들보다 낫다고  칭찬했다. 그러나 아줌마는 월세를 밀리기 시작했고,  엄마네 집을 드나들면서 자개 문갑 윗서랍에 넣어둔 순금 20냥짜리 금목걸이를  훔쳐갔다. 알고 보니 엄마네 건물을 자기 거라고 뻥치면서 세입자들에게 월셋돈까지 싹 다 받아서 도망가 버렸다. 그 후로 엄마는 집에 사람을 들이지 않았다. 남아있는 엄마의 금붙이들을 다 앞마당에 묻어버렸다. 늙은 얼굴에 금붙이 하나 없는 엄마는 초라해 보였다. 늙고 돈 없고 자식도 하나 없는 가난한 할머니처럼 하고 다녔다. 엄마는 어딜 봐도 백억 부자 할머니가 아니라 박스 주으러 다니는 독거노인 행색이었다.


나는 금전적으로 어려울 때면, 엄마네 마당에 묻혀있는 금덩이를 생각하며 웃었다. 엄마 것이었지만 그건 내 것이기도 했다. 여차하면 엄마가 잠들었을 때 담장을 넘어 그 금붙이를 훔쳐가야겠다는 생각만으로도 뿌듯해지곤 했다. 그래서 남편이 돈걱정하면 나는 금덩이 같은 환한 얼굴로,  

"걱정 마! 내가 해결할 수 있어!"라고 큰소리치곤 했다. 그런데, 그걸 누가 또 알고 있나?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나는 엄마가 아니라 언제나 엄마의 돈이 먼저 걱정되는 철없는 딸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엄마가 혼자 사시는 걸 다 아니까, 나쁜 맘먹으면 노인네 하나 해치우는 건 일도 아니지!  나는 끔찍한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늦은 시간에 호루라기조차 없이 혼자 온 걸 후회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아니라, 나는 몸을 걱정했다.


나는 그때까지도 엄마를 사랑하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전혀 알지 못했다.

     

쓰러져서 꼼짝을 못 하시나? 오래된 관절염으로 아픈 다리를 끌고 절뚝거리며 걷던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게 돈도 많으면서 왜 그렇게 궁상맞게 살아! 잘못돼도 다 엄마 탓이야!”

페인트가 떨어져 나가고 귀신의 집 같은 낡은 친정집 대문 앞에 섰다. 초인종을 몇 번을 눌러도 기척이 없다. 나는 괜히 철 대문을 발로 걷어차버렸다. 아픈 건 내 발뿐이었다. 그래도 인기척이 없자,  담장을 넘고 삐그덕 거리는 기분 나쁜 소리를 내는 현관문을 젖혔다.

빛이 하나도 없는 깜깜한 거실에선 불쾌한 오물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두운 거실벽을 손으로 더듬으며 불을 켜자,  잿빛 털을 가진 작은 동물이 후다닥 달아났다.      

“엄마야!”     

나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고 마루에 미끄러졌다. 마룻바닥은 끈적하고 더러웠다. 아픈 엉덩이를 비비자, 쥐똥이 손에 묻어 나왔다.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깔끔하던 엄마였다. 다섯 명의 아이를 키우면서도 한 번도 흐트러진 적 없던 집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게 분명해 보였다.


 나는 살며시 안방 문을 열어보고 거실에서 도망간 쥐를 본 것보다 더 놀라 자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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