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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비 Apr 02. 2024

옆집 사는 엄마

4. 도둑질의 시작


 

  ‘집안을 이렇게 해놓고 도대체 어디 가신 거야?’

나는 이불을 걷자 엎어져 버린 밥공기를 주워 담았다. 밥알이 이불에 붙어 손으로 떼어내도 끈적함이 남아있었다. 밥과 스텐 밥공기 두 개를 쓰레기통에 처넣어버렸다. 엄마는 지독했고, 나는 엄마의 아끼는 것들을 발로 차버리고, 헤프게 쓰고, 죄다 버리고 싶었다. 엄마가 악착같이 살수록 나는 더 철딱서니 없이 굴었다.   

엄마의 베갯잇 지퍼를 열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스무 살이 되자, 엄마는 등록금만 주고 용돈은 아르바이트해서 벌어서 쓰라고 했다. 엄마 친구 딸들은 다 그렇게 한다고 아빠 없이 대학까지 딸년을 보내줬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나는 자식 복도 없지! 딸년 뒷바라지를 육십이 다 되도록 하니, 내 팔자도 더럽지. 너는 내가 불쌍하지도 않니?”라고 쏘아붙이면서 아픈 다리를 주물렀다. 엄마는 오래된 관절염으로 걸을 때마다 뒤뚱거렸고, 비가 오거나 날씨라도 궂으면 더 심하게 아프다고 했다. 그런 엄마를 보고도 나는 살을 좀 빼면 걷기가 쉬울 거라고 맞받아쳤다. 그러면 엄마는 “경칠 년, 빌어먹을 년” 같은 욕으로 그 서러움을 대신했다. 나는 질세라, 악을 쓰고 대들곤 했다. 엄마와 딸은 얼굴만 맞대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다. 그러나 오빠는 신신 파스도 사 오고 관절염에 좋다는 오메가 3나 비타민 D, 보스웰리아 같은 약을 구해왔다. 미국 약이 좋다고 필리핀이나 외국 나가는 친구들에게 꼭 엄마 관절염약을 부탁했다. 시간만 나면 다리를 주물렀다. 사랑은 돌고 돌았다. 그 꼴을 보면 나는 더 배앓이 뒤틀렸다.

“엄마, 오빠는 용돈을 받아본 적이 없다던데?”

“그래, 오빠는 용돈 달라고 한 번도 안 했어! 오빠 좀 보고 배워라! ”

“엄마, 그럼 나도 통장 줘!  오빠는 일 년 치 용돈을 한꺼번에 받았다는데? 오백이 담긴 통장을 줬다면서? 돈이 있는데, 왜 돈을 달라고 하겠어?”

“경칠 년! 오빠는 돈복이 있어. 경숙이 엄마가 못 받을 줄 알았는데, 빌려준 돈을 주더라. 그래서 오빠 준거지.  네년은 돈복이 없어, 돈 달라고 할 때마다 곗돈 붓고 주머닛돈까지 싹싹 털어 넣은 날 달라고 해. 그러니 없어서 못 주는 거지!”


 엄마는 늘 당당했다. 돈이 없어서 못 주는 건, 돈복 없는 내 팔자라고 했다.  엄마 이야길 듣고 있으면 한편으로는 이해가 갔다. 돈이 없을 때 돈 달라고 하면 짜증이 나겠지. 그래, 나는 돈복도 없고 부모복도 없나 보다. 다 포기하고 심드렁하게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았다. 엄마도 나이도 먹었고 어디 가서 일해? 월세 나오는 거로 근근이 사는 거지. 나는 엄마 말대로 없는 집구석에서 태어난 복 없는 내 팔자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베갯잇에서 빳빳한 무언가가 만져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지퍼를 열어보니 만 원짜리 지폐 수십 장이 있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달그락거리는 소리로 봐서는 엄마는 저녁준비를 하고 있다. 언니들과 오빠는 한 시간은 더 있다가 올 것이다. 나는 살그머니 일어나서 안방 문을 소리 나지 않게 잠갔다. 그리고 조용히 창문을 닫고 커튼까지 쳤다. 베갯잇에 들어있는 만 원짜리가 몇 장인지 천천히 침을 묻혀가며 세어보았다.

서른다섯 장.

“삼십오만 원이나 있었네! 씨발.”

나는 욕이 튀어나왔다. 30년 전, 내 나이 스무 살에 삼십오만 원은 엄청난 돈이었다. 그리고 숨을 죽이고 만 원짜리 석 장을 떨리는 손으로 꺼냈다. 엄마 돈을 훔쳐낸 나는 뛰어나갔다.

“밥 차렸는데, 어딜 또 나가?” 엄마의 잔소리를 뒤로하고 공중전화로 가서 친구들을 불러냈다.

“다 나와! 오늘은 내가 쏜다!”

처음으로 도둑질을 했는데도 나는 부끄럽지 않았다.

 ‘도둑질한 건  다 엄마 때문이야.’      

 나는 못된 짓을 할 때마다 엄마뒤에 숨었다.


열어보면 항상 만 원짜리가 넉넉하게 있던 베갯잇에 돈이 없었다. 나는 엄마가 집안에 없는 것보다 30년 동안 훔쳐오던 베갯잇 돈이 사라진 게 더 불안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내가 잘못한 게 하나도 없는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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