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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비 Apr 05. 2024

옆집 사는 엄마

5. 돈과 함께 사라진 엄마


 돈과 함께 엄마가 사라진 걸 보고 나서야, 나는 급하게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엄마 어디 가셨어?”

“어머님 안 계셔? 노인정에 안 계시면, 역 앞에 가봐”

“오빠, 요즘 엄마 집에 와본 적 있어? 쥐가 집안에 들어왔어. 내일 와서 쥐 잡아놔!”

“저번에 다락에 있던 건 잡아드렸는데, 집안까지 들어왔나 보네. 알았어. 어머님 연락되면 알려줘”

오빠는 나이가 열두 살이나 어린 내가 소리를 질러도, 명령조로 말해도,  늘 알겠다고 다 알아서 하겠다고 장담하는 사람이었다. 먼저 화를 내지도 그렇다고 먼저 전화를 걸어서 부탁하지도 않았다. 화가 났지만, 알았다는 한마디에 나는 또 다른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서둘러 노인정으로 뛰어갔다.  가는 길에 저녁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노인분들을 만났다. 다리가 아픈 엄마를 노인정까지  모셔다 드린 적이 많아서 노인정 어르신들의 얼굴은 대부분 알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저희 어머님, 노인정에 아직 계신가요?”

“아이고, 이게 누구여?”

“왜, 저기 면서기, 운필이네! 막내딸 아니야?”

“네네, 저희 어머님 노인정에 계신가요?”

“야, 말도 마라. 네 엄마 요즘 노인정 쌈닭 됐다. 그 계산 빠른 양반이  바보가 됐는지... 화투 치다가 계산 틀렸다고, 판 엎고, 맨날 싸운다.”

“요즘, 우리가 화투판 안 끼워주니까, 삐져서 안 와. 안 온 지 한 며칠 됐어. 어이구 미친 노인네….”

“역 앞에 바다 이야기 가 봐라”

이야기를 듣고 있던 노인회장 김 씨 아저씨는 자식 앞에서 엄마의 험담을 하는 게 불편한지, 서둘러 비밀을 털어놓았다. 나는 의외의 장소라서  놀라긴 했지만, 더 묻지 않았다. 계속 이야기를 듣다가는 내가 모르는 이상한 일들을 알게 될까 봐 두려웠다.   

   


 엄마는 새로 바뀐 노인정 총무 욕을 했다. 좀처럼 남 욕을 하지 않던 엄마였는데, 총무가 욕심이 많은 사람인가 보다 했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새로 뽑힌 총무 춘천댁은 사십이 넘는 장가 안 간 아들 둘과 사는 박복한 여자였다. 거지 같은 꼬마 빌딩 하나 가지고  더럽게 유세를 떤다고 했다.

“고년이 얼마나 못됐냐면, 그 집에 월세 사는 새댁이 있는데, 남편도 없고 어렵게 살아. 새댁이 잔업하거나 일이 늦으면 춘천댁에게 연락을 하는가 봐. 들여다봐달라고. 이웃끼리 그럴 수 있지? 그런데, 춘천댁 고것은  즈그 집에 애를 데리고 가서 밥 먹였다고 밥값이랑 애 본 값을 받는 년이다. 고런  망할 년이 어디 있냐? ” 돈도 있을 만큼 있는데도 악착을 떤다고 싫어했다.

“우리 집에 빈방 많은데, 춘천댁 받는 월세 반만 받고... 우리 집에 오라고 할까? ”

“엄마, 그런 말은 하지도 마! 그 순댓국 아줌마 생각하면 진짜!”

내가 진저리를 치자 엄마는 더 이상 말도 못 꺼내고 알았다고 눈살을 찌푸렸다.

노인정에서 지급되는 식비와 식사를 만들어줄 아줌마의 인건비를 춘천댁 앞으로 돌려서 맘대로 쓴다고 했다. 노인정 식자재를 집으로 빼돌리니, 식사는 전보다 형편없어졌고, 춘천댁은 갈수록 화려하고 뽀얘진다고 했다.  평소 같으면, 그깟 것쯤 신경도 안 쓸 액수이고 엄마 돈도 아니고 나랏돈으로 엄마가 지나치게 신경 쓰고 있다고 핀잔을 줬겠지만, 나도 춘천댁에 대한 안 좋은 소리를 하도 들으니 덩달아 괘씸해서 같이 화를 냈었다.

“어머나, 그 아줌마 진짜. 못쓰겠네.”

“썩을 년이지, 그게 얼마나 한다고 노인네 밥을 훔쳐가냐?  네가 공무원이니까, 거기다 신고 좀 해라.”

 시청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나를 엄마는 공무원으로 알고 있었다. 시끄러운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서 엄마를 설득했다.

“엄마, 그래도 춘천댁이 노인들 밥 다해주고 설거지도 하는 거니까, 그 값이라고 생각해”

“야. 너는 지금 그 망할 년 편을 드냐? 고년이 노인정 총무하면서부터, 백화점에서 옷을 사 입고 온다니까, 얼마나 돈을 해 처먹은 거냐!”

“에이, 어디를 가나 도둑년은 있어. 여기도 하나 있잖아” 나는 그날도 엄마 집 냉장고에서 과일을 한 보따리 챙기면서 혀를 날름 거렸다.

     


 엄마는 춘천댁이 돈을 빼돌렸다고 했는데, 노인들은 엄마가 생사람을 잡고 의심을 해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고 했다. 급기야 화가 난 춘천댁이 노인정을 나갔다. 그날부터 노인들은 굶었다. 점심부터 저녁까지 두 끼를 노인정에서 해결했던 독거노인들은 엄마를 욕했다. 엄마는 노인정 밥을 한다고 진탕을 만들어 놨고, 다리가 아파서 쩔쩔맸다. 노인들은 춘천댁이 아니라 엄마를 쫓아냈다. 화투판에서 쫓겨난 엄마는 <바다 이야기>에 돈을 싸 들고 갔다. 나는 서둘러 역 앞으로 달려갔다. 성인 오락실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는데….

머릿속에서는 영화 속 한 장면이 돌아가고 있었다. 전 재산을 도박에 날리고, 돈이 없어지자, 사채를 쓰고 사채업자들은 딸을 납치하고….

“엄마, 제발” 도박장으로 달려가는 나는 손에서 땀이 났다. 역 앞에는 슬럼가의 담배연기 냄새가 났다. 


  https://brunch.co.kr/@iba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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