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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비 Apr 12. 2024

옆집 사는 엄마

6. 엄마의 천국

  <바다 이야기> 유리문은 거대한 상어와 물고기 스티커로 빈틈없이 메꾸어져 안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처음 들어가는 낯선 장소, 더군다나 도박장이라니! 나는 용 문신으로 온몸을 장식한 조폭들이 가득한 풍경이 상상되어 문을 열고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때, 내 이름을 부르는 엄마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은미야, 은미야!! 여기는 어떻게 왔냐? 아이고 잘 왔다, 나 좀 데리고 가라!”

엄마가 역 앞 계단에 앉아서 손짓한다.

“엄마, 왜 여기 앉아있어?”

나도 모르게 소리를 빽 지르고 말았다.

“다리가 아파서 도저히 걸어갈 수가 있어야지, 전화기는 꺼지고, 뭐가 통했나 보다. 아이고 살았다.”

“으웩,  이게 무슨 냄새야! 엄마, 오늘은 집에 못 가. 쥐 들어왔어. 우리 집으로 일단 가자.” 나는 지린내가 진동하는 엄마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망할 년이, 무슨 냄새가 난다고 지랄이야, 지랄이! 됐어. 내가 내 집 놔두고 왜 딸년 집에 가서 자빠져 자냐?”

“엄마! 좀! 집구석 꼴 좀 보고 이야기해. 거기서 어떻게 잠을 자? 우리 집 오기 싫으면 그 잘난 오빠네 집에 가서 자던가. 그만 좀 해. 그리고 엄마, 거기서 돈 얼마나 잃었어? 화투도 모자라서 이젠 도박까지 해? 엄마 미쳤어? ”

“내 돈 가지고 내가 하겠다는데, 네가 뭔 상관이야? 거기 가면 밥도 주고 젊은 남자들이 얼마나 대우해 주는지 아냐? 너는 나한테 천만 원 뜯어 가고도 지랄하는데, 이 총각들은 아주 입속에 혀처럼 군다. 그깟 삼십만 원 하나도 안 아까워! 더도 갖다 줄 수 있어, 망할 년!”


 엄마는 도박장에는 자기같이 시골 땅 보상받고 건물 지어 월세로 천만 원씩 받는 노인네들이 잔뜩 있다고 했다. 신도시가 들어오면서 촌 동네가 갑자기 돈이 썩어났다. 여기저기 사기꾼들이 평생을 농사만 짓고 살아온 돈 쓸 줄 모르던 노인네들을 꼬셔서 약도 팔고 관광도 다니고 하다못해 이젠 도박장까지 합법화시켜 돈을 펑펑 쓰게 만들었다. 노인들은 복잡한 룰은커녕 기계의 버튼도 누를 줄 몰라 라이터나 재떨이를 오락기 버튼 위에 올려두고 멍하게 화면만 보고 있다고 했다. 나는 엄마가 성인 오락실에 가는 걸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방법은 몰랐다. 조폭인지 사기꾼인지 모를 그들은 나보다 엄마 마음을 더 잘 알았다. 외로운 노인들의 아픈 몸을 이곳저곳 마사지해 줬고, 혼자 밥 먹기의 쓸쓸함도 눈치채고 종일 김밥도 박카스도 막걸리도 무상으로 제공했다.


 엄마와 밥을 먹는 건 우리 오 형제들 모두 싫어했다. 입 냄새와 잦은 사레들림과 기침으로 식탁 위는 온통 엄마의 입속에서 나온 음식물들이 흩어지기 일쑤였다. 같이 먹는 게 곤욕스러운 식사도 조폭들은 달게 먹고 천천히 씹어 먹으라고 따뜻하고 달콤한 매실차까지 가져다주었다. 나도 똑같이 엄마의 돈이 좋았지만, 그들처럼 조직적이고 마음을 읽고 위로하고 친절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엄마의 돈만 좋았다. 엄마의 외로움, 허무함, 아픔은 당연한 엄마의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해 버렸다. 나는 엄마를 모시고 가면서 내내 짜증이 나서 투덜거렸다. 다음에는 다시는 오지 마라, 여기 또 오면 경찰서에 다 신고해 버릴 거다. 저거 하다가 재산 다 말아먹고 자살한 사람 매일 뉴스에 나온다. 겁도 주었다. 내가 지어낼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이야기들을, 도박하다가 패가망신한 이야기들을 잔뜩 늘어놓았다. 그러나 엄마는 도박하다가 망한 인생보다 지금 한 걸음 한걸음 발을 떼는 것이 더 고통스러워 보였다. 엄마는 두 걸음 걷다가 멈추고 한걸음 가다가 쉴 곳을 찾았다. 엄마는 입속에서 “아이고” 소리가 쉼 없이 나왔다. 엄마는 약에 중독되는 걸 두려워한 나머지 진통제 한 알 먹지 않고 아픔을 견디고 있었다. 나는 그런 엄마가 답답하고 미련 맞고 미웠다. 돈이 아까워 약도 안 먹는 무식한 노인네로 취급했다. 귓속을 울리는 엄마의 “아이고” 소리를 멈추게 하고 싶었다. 길바닥에 엄마를 주저앉혔다.

“엄마, 안 되겠다. 이렇게 걸어서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내가 차 가져올 테니까. 여기서 잠깐 기다려.”


 나는 집으로 뛰어가면서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의 사정을 설명하고 전화를 끊었다. 차례대로 세 명의 언니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들 엄마의 사정을 들었지만, 입으로는 걱정하면서도 무심하게 전화를 끊었다. 아무도 엄마를 모시고 가지 않았다. 엄마는 여전히 엄마네 집으로 쥐가 있는 모피와 가죽옷이 천장까지 쌓여있는 숨쉬기도 불편한 집으로 가야만 했다. 그때는 미쳤다고 난리를 쳤지만, 엄마에게는 엄마의 춥고 어두운 집보다 조폭이 입속의 혀처럼 시중드는 <바다 이야기>가 천국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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