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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비 Apr 21. 2024

옆집 사는 엄마

7. 망할 년이 망하다

     

 엄마 집에서 큰언니를 제외하고는 두 명의 언니는 30분 안에, 오빠는 20분 안에 엄마네 집으로 달려올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러나 아무도 모시고 오라고 하지 않았다.

 “아랫집에서는 하루도 못살아!”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외쳤는데도 들리는 목소리는 서늘한 걱정뿐이었지, 그 누구도 달려오지 않았다.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큰언니에 대한 원망이 앞섰다.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긴 통화음 끝에 전화를 막 끊으려는데 언니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려왔다.

"왜?"“

"언니, 아무래도 엄마 집 좀 치워야겠어"

"나는 지금 아무것도 못 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언니의 목소리는 마른 낙엽처럼 힘없이 부서져 버렸다. 나는 분명 언니가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잠만 잤고 일어나서도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일 거라는 걸 짐작했다. 집에는 온통 빨간딱지가 붙어있다고 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고도 했다. 마른 가지 같은 언니는 손만 대도 부러질 것 같았다. 처음으로 정신이 번쩍 났다. 언니가 죽을까 봐 덜컥 겁이 났다.

망한 언니한테,  뭘 해결하라고 해? 미쳤구나.

 


  형부가 사업을 30년 넘게 해도 한 번도 친정에 돈 빌리러 온 적도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한 적도 없는 언니였다. 속이 상하면 상한 대로 참고 참는 언니였다. 며칠 전 엄마 집에 들렀다가 '아쉬운 소리'를 하기도 전에 눈치 빠른 엄마가 먼저,

“딸년에게 줄 돈 한 푼도 없다.”라고 언니를 내쳤다.

언니는 아픈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쓰러져 잤다. 그게 벌써 일주일 전이다.      


  10여년 전, 엄마에게 서운했던 감정들이 떠올랐다.

 시아버지가 알고 지내는 고등학교 실업팀 복싱 코치는 체육관이 필요했다. 남편과 시아버지는 그와 술을 잔뜩 먹고 들어와 100평 규모의 사무실을 덜컥 계약했다. 그는 선수들 체육관만 대여해 줘도 월세는 나온다는 말로 꼬드겼다. 남편은 신혼 초부터 모은 전 재산과 약간의 빚까지 내어 샤워장을 만들고 나무 바닥을 깔고 유리를 사방에 붙이고, 링을 만들고…. 복싱장을 열었다. 일을 벌이니 눈뜨면 다 돈이었다. 온다는 선수들은 10여 명이 안 되었고, 그들이 준 대여비는 월세는커녕 관리비 내기에도 빠듯했다. 남편이 벌어오는 돈은 없고 눈만 뜨면 빚이 불어났다. 매일매일 남편과 서로를 탓하며 미친 듯이 싸웠다. 사업이 망하자마자 친정에 가서 엄마를 찾으면 엄마는 돈이라도 뜯길까 봐 나를 피했다. 전화하고 가도 엄마는 집을 비우고 달아났다. 그러면, 나는 괘씸한(?) 엄마의 빈집을 털어갔다. 과일, 반찬, 샴푸, 화장품, 세제,  보일러에 기름 넣고 사은품으로 받은 휴지까지…. 아이들은 어리고 나는 풀타임으로 일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엄마 집을 털어 생활할 수도 없었다. 관리비며 대출이자... 현금이 필요했다. 급하게 살고 있는 아파트 거실에 칸막이 책상 10여 개를 사서 공부방을 열었다. 그렇게 그럭저럭 그 암울했던 고비를 넘겼다.

 내가 진짜 망하자, 엄마는 “망할 년”이라는 욕을 하려다가도 내 눈치를 봤다. 나는 엄마의 그 말 때문에 하는 일마다 꼬였다고 엄마를 탓했다. 철딱서니가 없는 나는 모든 게 엄마 탓이라고 말해야 속이 시원했다.


 언니는 20년 전의 나처럼 철딱서니 없지도 젊지도 않다. 나는 언니가 수면제를 털어놓고 깨어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양피 재킷을 차에 실을 수 있는 만큼 가득 실었다.

“어디 가지고 가려고? 그걸 다?”

“이거라도 팔아서 보태줘야지, 엄마가 돈도 안 주고 나도 돈 없고, 언니는 죽게 생겼고!”

나는 엄마의 누울 자리를 마련해 놓고 급히 집을 나왔다.


어디다가 이걸 팔아야 하나? 나는 이직한 직장 동료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에게 정수기를 팔고 보험 상품을,  다단계 사해 소금을 팔러 왔던 친구들이 떠올랐다. 가장 싼 물건을 사면서도 잔소리를 늘어놓던 내가 떠올랐다.  나도 급하니 어쩔 수가 없었다. '돌고 도는 거지 뭐.'  나의 뻔뻔스러운 강매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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