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오빠만 자식이야? 거기 비었잖아. 우리 집도 언니네 옷 때문에 강 서방한테 쫓겨나게 생겼어.
창고라도 쓸려고 그래, 빨리 열쇠 줘봐! “
엄마는 막내 사위가 성질이 불같은 걸 알고 있었다. 지나치게 깔끔을 떠는 사람이라는 것도. 그런 사람이 20평 아파트에 수백 벌의 옷상자가 들어왔으니 오죽이나 괴로웠을까 생각하는 눈치였다.
”이게 맞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문갑 서랍에서 열쇠뭉치를 던져줬다. 열쇠고리에는 녹슨 수십 개의 열쇠가 달려있었다.
나는 마치 상가를 받은 것처럼 눈을 빛냈다. 그때부터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상가에서 뭐 하지? 옷 장사를 할까? 떡볶이집을 할까? 아니지 커피숍을 해도 잘될 거야. 엄마 집도 내 집처럼 쓰고 싶었다. 오빠에게만 전재산을 물려준 엄마에게서 상가 하나라도 뺏어오고 싶었다.
‘빈 상가에 들어가 장사라도 하고 있으면 설마 나가라고 하겠어?’
나에게도 콩고물이라도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계산을 하면서 던져진 열쇠를 들고 인사도 없이 뛰어나갔다.
엄마가 40년 전에 산 상가의 위치는 너무 좋았다. 병점역이 계발되고 있었고, 병점은 구도심이지만 동탄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었다. 새로운 사람들 때문인지, 칙칙했던 도시는 반짝반짝하게 빛이 나기 시작했다. 대형 프랜차이즈가 생기고 대형 빵집과 커피숍이 오픈을 기다리고 있었다. 건물 바로 앞에는 동부 출장소와 하나로 마트가 사용하는 공영 주차장도 넓었다. 작은 골목을 끼고돌면 대형 은행이 3개나 있었다. ‘상권은 이 정도면 됐어!’ 나는 미소를 띠며 내 매장을 계약한 것처럼 가겟방 열쇠를 손가락에 끼우고 빙글빙글 돌리며 콧노래를 불렀다.
수십 개의 열쇠를 손을 호호 불면서 하나하나 열었지만 짜증도 나지 않았다. 오히려 재밌었다.
‘그래, 단박에 열리면 재미가 없지! 이건가? ’
그러나 결국 마지막 하나 남은 열쇠까지도 맞지 않았다.
‘어라? 이 열쇠가 아닌가?’
갑자기 언 손가락이 아파왔다. 짜증이 났다. 그래도 한 번 더 돌려봤다. 그러나 역시 열쇠가 돌아가지 않았다. 다시 보니 아래에 열쇠 구멍이 또 있었다.
'아 여긴가 보다!' 나는 아랫구멍에 열쇠를 끼고 돌렸다.
”딸깍 “ 하고 아래 문은 열린 것 같았는데, 문은 여전히 열리지 않았다. 열쇠 구멍은 계속 헛돌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어쩐지 박 여사가 나한테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열쇠를 넘길 리가 없지!’
나는 씩씩거리면서 다시 엄마네 집으로 뛰어갔다. 엄마가 없는 집에서 자개 문갑 서랍을 열어젖히고 물건을 몽땅 끄집어냈다. 순식간에 집은 도둑이 들어온 꼴로 엉망이 되었다.
‘어디 내가 이기나 엄마가 이기나 해보자고!’
나는 내 것도 아닌 것이 내 눈앞에 아른거리자 내 것을 빼앗긴 것처럼 오기가 났다.
그때, 누군가 엄마 집에 들어왔다. 나는 마치 도둑질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깜짝 놀랐다. 밖에는 엄마와 오빠가 다정하게 걸어 들어왔고 양복을 입은 남자는 엄마 뒤에서 따라 들어왔다.
”너는 이 시간에 여긴 왜 왔어? “
나를 본 오빠는 깜짝 놀라면서도 엉망이 된 방안을 살피며 불쾌한 얼굴이었다.
”오빠는 왜 왔는데? “
나는 앙칼지게 쏘아붙였다.
엄마는 마지못해 자개농을 열고 이불과 이불 사이에서 열쇠를 꺼내 주었다.
”열쇠 꼭 잠그고 가! 다른 건 손대지 말고! 에이 썩을 년! “
‘뭔가 있지? 뭐지?’
나는 찜찜한 기분이 들었지만, 열쇠를 받아 들고 집을 나갔다. 20년 가까이 오빠랑 산 집이었는데 돌아서서 나오니 무척 낯설어 보였다. 나는 여전히 집에서 내쳐진 기분이 들었다.
‘오빠랑 또 뭔 짓을 하는 거지?’
나는 남의 집을 엿보듯이 초록색 철제 대문 뒤로 엄마와 오빠가 검은색 양복을 입은 남자와 속삭이는 소리를 들어 보려고 애썼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더 궁금하기만 했다. 오늘은 상가 열쇠를 받았으니, 이걸로 만족하자.
나는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겨 윗집으로 갔다. 어둑해진 골목에서 쭈그려 앉아 가겟방 열쇠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