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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비 Mar 30. 2024

옆집 사는 엄마

3. 엄마의 짐

    

 벽을 더듬어 불을 켜는 순간 형광등이 깜박이면서 검은 물체들과 짐승의 털이 눈앞을 지나가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으악! 엄마야!”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가만히 살펴보니 검은 물체는 검은 가죽 재킷과 모피였다. 행거에 걸린 옷뿐만 아니라 옷이 담긴 이사박스가 천장까지 쌓여있다. 

자개 옷장을 버리고 새언니가 새로 사준 원목 옷장에도 옷이 가득했고 옷장의 틈 사이에도 옷상자가 구겨져 올라가 있었다. 옷을 걸어 놓은 철제행거가 엄마가 누워있는 자리만 빼고 가득 들어차 있었다. 

숨이 막혔다. 

'저 상자가 머리에 떨어지면 죽을 수도 있겠다.  엄마는 이 끔찍한 짐 방에서 잠을 잘 수 없었겠구나.'

 엄마가 우리 집에 놀러 오면 잠이 안 온다고 걱정했다. 나는 병원에 가보자고 하고 저녁밥을 같이 해 먹고 일일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엄마는 코를 골고 잤다. 우리 식구들은 깔깔 웃으면서 이렇게 잘자면서 무슨 불면증이냐고 했고 웃음소리에 놀라 깬 엄마는 내가 언제 잤냐고 화를 냈다. 나이 들면 다 그렇다고만 생각했다.    

   


방배동 형부가 왔다 갔구나. 형부가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사당동 창고 월세를 낼 수 없자, 창고를 비우고 옷들을 가져다 엄마 집에 쌓아놓은 것이다. 고가의 가죽과 모피 옷들. 

 몇 년 전만 해도 수백만 원을 줘도 국내에선 구할 수도 없던 옷들이었다. 대부분 가죽과 모피에 환장하는 유럽과 러시아로 수출했고 형부는 외제 차를 굴리고 강남에 집을 사고 항상 코냑을 마셨다.  형부는 산타클로스처럼 추석과 설날이면 코냑과 모피와 가죽옷을 가져왔다. 아이들은 값비싼 캐나다산 구스를, 우리는 모피, 가죽옷을 고르느라 엄마는 항상 뒷전이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젊은 세대들은 고가의 옷들을 사지 않았다. 인터넷으로 싸고 유행 타는 옷들을 쉽게 사고 버렸다. 더군다나 유명 연예인들이 동물 인권 운동을 하면서 매출이 곤두박질쳤다. 형부는 사업을 확장해 외국에 공장을 짓고 설비를 새로 들였는데, 코로나가 터지고 전쟁이 나고 상황이 말이 아니었다. 그리고 누구나 다 아는 망한 이야기다. 강남의 수십억 아파트는 경매로 넘어가고 옷이라도 챙긴다고 물건을 실어다가 엄마 집에 쌓아두고 형부는 사라진 것이다.        


친정집에 오면 나는 뭐라도 하나 더 가져갈까, 둘러보기 바빴다. 엄마를 찾는 건 처음이다. 엄마가 옷 무덤에 파묻혀 주무시는 건 아닌지, 이불과 뒤엉킨 옷을 치웠다. 엄마는 하루 세 번 밥 먹는데, 하루종일 켜놓는 전기밥솥을 아까워했다. 이불을 덮고 있는 건 뚜껑이 있는 스텐밥공기 두 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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