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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May 03. 2019

먹고 걷고 사랑하라

뚜벅이들의 송도 트레킹


6번 홈으로 들어오는 기차에 몸을 싣고 배낭의 압박에서 벗어난 아침. 날이 흐려서 들뜬 마음도 함께 구름 속으로 가라앉는다. 밀양에 가까웠을 때쯤, 반짝이는 빛 대신 산자락을 감싼 운무가 시야를 가득 채운다. 무거운 눈꺼풀이 시집을 꺼내고 싶은 욕구를 이긴다. 달콤한 잠에 빠진다.




흰여울 문화마을. 촬영지는 늘 붐빈다. 수많은 여행객이 좁은 공간에 줄을 선다. 결국 안내소에서 빠져나와 골목길을 구경한다. 알록달록 칠해진 건물들이 환하게 빛난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채 걷는 일, 힘들지만 의미 있다. 골목 구경을 마친 후엔 손목 서가로 향한다. 계단을 오르면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문을 열자 낡은 난로 위에 놓인 꽃이 보인다. 카페의 시그니처 메뉴라는 글뤼바인을 두 잔 주문한다. 그리고 수다 삼매경. 잔을 드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얼굴이 달아오른다. 분명 알코올이 다 날아간 음료라고 했는데, 나보다 술이 센 친구도 양볼이 빨갛다.





일몰을 보고 싶었지만, 광안리에 도착했을 땐 이미 해가 진 뒤였다. 어쩌면 오늘의 해는 구름 속에 숨어 안 나올 예정이었던 걸 지도. 결국 숙소에 짐을 풀고 약속 장소로 향한다. 뷰가 좋은 자리에 앉아 우리를 기다리는 부산 시민을 만난다. 얼마 후 주문한 음식이 나온다. 맛있는 파스타를 먹으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는 우리. 세 여자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많은 감정이 오간다. 서로를 사랑하고 위하는 마음이 애틋한 밤.




전기버스를 타고 남포동으로 가는 길, 버스가 멈추는 동안 정적이 흐른다. 목캔디 씹는 소리가 민폐라고 느껴질 정도. “여기 혹시 독서실이야?” 얼마 후, 승객들이 빈자리를 채운다. 그제야 들리는 사람 소리. 대전 시민은 부산 억양에 대해 이야기하고, 부산 시민은 아침에 먹은 국밥에 분노한다.






동백꽃이 핀 거리를 지나 케이블카 입구로 향한다. 알록달록한 방파제와 파란 하늘이 잘 어울리는 송도. 다리 위에 모인 이들은 여유롭게 사진을 찍으며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오늘 우리의 목표는 트레킹. “갈 길이 머니까 일단 걷자.”




오후 두 시, 오랜 시간 파도와 함께 천천히 쌓인 시간을 따라 걷는다. 10월이면 열매가 붉어진다는 먼나무를 지나 철제 다리에 도착한다. 드디어 암남공원과 가까워지는 숲 이음길 4코스. 다리 아래로 낚시하는 아저씨와 고양이 한 마리가 보인다. 계단으로 내려가 낚시의 내용을 궁금해한다. “아저씨, 그건 뭐예요?” 물고기가 잡히는 동안 커피를 마시고, 산 고양이들과 시간을 보내시는 송도 주민들. 그 옆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산을 사랑하면서도 늘 바다를 갈망한다. 파도 소리와 햇살에 섞인 물빛은 언제나 새롭다. 하지만 결국 내 마음은 산으로 향한다. 산에 오를 때면 바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값진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 이를 테면 숲길에서 흐르는 자연의 소리, 나무의 향과 오랜 흔적들, 거센 심장 박동과 달리 차분해지는 생각과 마음 같은. 암남공원에 도착한 우리는 케이블카를 타기로 한다. 오늘은 이 정도로 만족해야지.





41번 버스. 헤어지기 아쉬운 우리는 비좁은 버스 구석에 서서 다음 만남을 약속한다. “배낭을 메면 항상 어깨가 아프다는 생각을 하는데, 오늘은 배낭에 어깨가 찌그러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부산역에서 파이 만주를 사고 기차에 오른다. 몸살 기운이 느껴져 배낭에 든 감기약을 꺼낸다. 한참 열이 오르는가 싶더니, 밀양역에 가까워질 때쯤 몸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어쩌면 여독은, 몸을 혹사시킨 결과이거나, 여행이 끝나는 아쉬움에 생기는 열병일 지도.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 아늑한 침대에 눕는 순간을 상상하는 건 꽤나 짜릿하다.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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