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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May 07. 2019

늪에서 닿은 인연

작은 소녀 마리나와 루스키섬을 여행하다

게살라면과 보드카 한 잔에 3시쯤 뻗어서 9시가 한참 넘은 늦은 아침에 눈을 떴다. 블라인드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쾌재를 불렀다. 어제는 한겨울이더니, 오늘은 봄이다.


아르바트 거리, 난관에 처한다. 막심-러시아 택시- 기사님과 언어의 장벽에 부딪치고 만 것. 그렇게 어쩔 줄 모른 채 서 있는데 한줄기 빛이 보인다. 우리 앞에 나타난 해결사는 바로 한국인 유학생. 그녀의 유창한 러시아어 덕분에 네 여자의 여행이 시작된다. 루스키섬으로 가는 길, 수평선 너머 설산이 펼쳐졌다.






한참을 달려 내린 곳은 루스키섬 근처 어딘가. 기사님께서는 “발로타, 발로타!”하고 외치셨고 우리는 눈을 깜빡이며 모른다는 신호를 보냈다. 얼마 후 구글 번역기를 돌리자 ‘저기에 늪.’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더는 갈 수 없다는 소리였나 보다. 결국 우리는 도로 어딘가에 던져졌다. 러시아에 와서 배운 언어가 하나 늘었다. “늪”


섬으로 가는 길, 지아언니는 아무 차나 잡아보자는 심정으로 손을 흔든다. 그런 우리를 못 본 체하는 차 몇 대가 가고, 어떤 차가 멈춰 섰다. 창문을 내리고 모르는 언어를 내뱉는 남자. 뒷좌석에는 그의 딸로 추정되는 예쁜 아이가 있었다.






작은 소녀, 마리나. 그녀는 많은 걸 소개했지만, 우리가 알아들은 유일한 것은 그녀의 이름뿐이었다. 루스키섬 정상에 도착했다. 바다가 보이는 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주시고는 다시 차에 타라고 손짓하시는 아저씨. 이번에는 바다와 가까운 섬 중앙부로 내려갔다.

주황색 모자를 쓴 마리나는 밝게 웃으며 물속으로 들어간다. 한참 조개를 줍더니 모래사장으로 나와 언니들의 손바닥에 자신의 바다를 만든다. 우리는 햇빛 아래 조개 바구니가 된다. 그녀가 주운 조개들은 우리 두 손 위에서 천천히 말라가고, 포기를 모르는 러시아 부녀는 끊임없이 움직였다.






조개 수확이 끝난 후, 또 어딘가로 이동했다. 배가 고팠지만 아저씨는 섬의 숨은 곳까지 안내해주신다. 굶주린 위를 달래며 갈대밭을 걷는다. 덩그러니 놓인 나무를 지나 절벽 끝에 도착한 우리. 감탄사가 쏟아진다. 배고픔을 참은 가치가 있는 벼랑 끝에서, 바람을 맞으며 눈을 감는다. 택시도 몸을 사리는 루스키에서 좋은 인연을 만난 오늘을 기억해야지.






가방 속에 있던 초콜릿을 건네며 작별한다. 고작 4시간이었지만, 함께한 순간이 소중해서 마리나를 꼭 안았다. 손으로 만든 하트를 보여주자, 곧바로 나를 따라 하는 아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마음에 웃으며 외친다. “Ba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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