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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May 07. 2019

우리의 젊은 날을 기억해

하바로프스크의 관람차 아래, 낭만적인 저녁이 흐른다.

작별 인사가 길어지는 바람에 출발이 늦어졌다. 기차역에 도착해서 가방 검사를 막 끝냈을 때쯤, 택시 기사님께서 돈을 더 내라며 나를 붙잡았다. 말이 통해야 뭘 묻고 따지고 할 텐데, 아저씨와 실랑이할 만큼의 여유는 없었다. 결국 350루블을 드리고 3번 칸을 향해 뛴다. 기차는 왜 그렇게도 길고, 내 짐은 또 왜 그리 많던지. 울고 싶었다. 몇 칸을 건너서 겨우 자리를 찾고 짐을 푼다. 순조롭지만은 않았으나, 어쨌든 횡단 열차 탑승 완료.




최소한의 예의(양치질과 세수 정도)를 갖추고 침대에 누웠다. 로션을 바를 기력 같은 건 남아있지 않았다. 아래칸을 쓰시는 러시아 부부가 짐 넣는 걸 도와주시고 수건 위치도 알려주셨다. 그들의 친절함에 경계가 허물어진다. 그리고 기절하듯 잠에 빠진다.





하바롭스크, 초췌한 몰골로 숙소에 도착한다. 방구석 어딘가 배낭을 내려놓는 것, 내 어깨에 희망을 주는 일이다. 일기를 쓰고 침대에 누우려던 찰나, 70리터 배낭과 캐리어를 끌고 방에 들어온 여행자. 우리는 통성명도 하지 않은 채 각자의 여행지를 늘어놓았다. 그녀는 몇 개의 계절이 지나는 동안, 긴 방황을 할 거라고 말했다. 그 굳건한 결단과 도전에 응원을 보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동행들이 근처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우리는 식당에서 만나 러시아 음식을 주문했다. 장작과 창틀 위의 식물, 따스한 조명 아래 식사를 시작한다. 언니들은 곧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고, 솔이오빤 내 기나긴 여정을 걱정하며 한숨을 쉬었다. 지아언니는 방랑 생활을 하던 20대 시절을 이야기하며 긍정적인 기운을 듬뿍 심어주었다.






늦은 오후, 사원을 지나 아무르강 근처로 향한다. 러시아 나무들은 이 추위에도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일몰을 보기 위해 밤거리를 걸었다. 여덟 시, 해를 보긴 늦은 시간인데 저 멀리 빨간 경계선이 시야에 잡힌다. 네 명 모두 탄성을 질렀다. 관람차 아래, 낭만적인 저녁이 흐른다. 해가 긴 이 나라가 좋았다. 일몰을 보러 다시 오겠다고 다짐할 정도로.

집으로 돌아가기 전, 마트를 구경하기로 한다. 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갈 언니들은 컵라면을 품에 안는다. 일주일간 열차 생활을 즐길 나는 코너를 돌며 장바구니를 가득 채운다. 계산을 마친 후, 정든 언니 오빠들에게 초콜릿을 선물한다. 우연히 마주친 소중한 인연들과 함께 보낸 시간에 감사하면서. 오늘도 이상 무, 하바롭스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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