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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May 09. 2019

만남과 이별 사이에서

나는 그들의 여정이 행복해지길 바랄 것이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식탁을 차린다. 오늘도 아침부터 밀가루 파티라니, 위에게 좀 미안해진다. 빵을 먹으며 다짐했다. 앞으로 체리잼은 작은 통으로 사리라고. 바하는 매 끼니마다 햄을 꺼내서 자르고 도시락에 물을 붓는다. 감자 수프는 먹지 않는다.




유일하게 영어를 할 줄 아는 아스타샤. 그녀는 이번에 정차할 도시가 치타라고 말한다. 정차역에 내리자 매서운 바람에 어깨가 움츠러든다. 보보는 감기에 걸릴지 모르니 겉옷을 입으라며 다정하게 웃었고 마디나는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막 달려와서 내 허리를 끌어안았다.


칼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금방 다시 침대로 달려간다. 배낭 안에든 엽서를 꺼낸다. 열차에서 만날 이웃들에게 주려고 가져온 작은 선물. 여행자들은 엽서를 받고 고맙다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아스타샤는 간단한 글을 남겨달라고 한다. 키릴 문자를 열심히 적어 보낸다. 얼마 후, 내 자리에 와서 새로운 엽서를 건네는 그녀. 앙코르와트 그림이 그려진 표지 뒤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You are sunshine”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하나 남은 신라면을 먹는다. 내일부터는 감자 수프와 그린필드로 하루를 보내게 될 테다. 밀가루 음식에 멀미가 날 지경이지만, 3일째 맞는 열차 생활은 여전히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아스타샤가 떠나고 열차는 바이칼에 가까워진다.






울란우데, 제니는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더니 갑자기 나를 번쩍 든다. 첫날부터 계속되는 그의 장난에 당하는 사람은 나뿐이다. 이것마저 익숙해졌다니.
기차가 옴스크에 도착하면 이웃들이 하나 둘 떠나겠지만, 나는 그들의 여정이 행복해지길 바랄 것이다.

슬류단카와 바이칼을 눈에 담기엔 너무 깊어버린 우리의 저녁, 오늘은 울란우데로 만족하기로 한다. 내일은 드라이 샴푸로 머리를 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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