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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May 21. 2019

독일 날씨는 원래 이래요?

인도 할아버지와 다 식은 감자튀김

두 번째 나라는 독일. 긴 여정을 계획하며 두려움이 앞선 건 사실이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두 달을 잘 버틸 수 있을까, 국경을 넘나드는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따위에. 하지만 눈을 떠 보니 나는 어느새 베를린에 있었고, 통하지 않는 언어는 미소로 해결되곤 했다.




도로를 따라 무작정 걸었다. 페르가몬 미술관 너머로 일몰이 펼쳐졌다. 루스트 정원을 지나 내가 도착한 곳은 베를린 대성당. 잔디밭에 여유를 사랑하는 청춘들이 모여 있다. 멍하니 서 있는 내게 누군가 말을 걸어온다. 몇 시인지 알고 싶다는 할아버지께 핸드폰 화면을 보여드린다. 선한 미소로 고마움을 표현하는 그에게 “bitte schön”하고 웃는다. 한 학기 동안 배운 독일어가 이렇게 쓰일 줄이야.






할아버지는 인도에서 태어났으며 독일에 온 지 10년 정도 됐다고 하셨다. 인도는 어떤 곳이냐고 묻자, 뜨겁지만 평화로운 곳이라고, 그 나라를 걸어보라고 대답하신다. “꼭 그럴게요. 저는 어제 막 독일에 도착했어요.” 아직 가본 곳이 없다고 말씀드렸더니, 베를린을 구경시켜 주시겠다는 제안을 받고 뒤따라 걷는다. 우리는 몇 개의 횡단보도를 지나 니콜라스 교회에 도착했다.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 단란한 저녁이 내렸다. 할아버지는 또 인연이 닿길 바란다며 미소로 인사를 대신하셨다.






사과주스와 프레첼을 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날이 춥다는 핑계로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게스트가 없는 덕분에 4인실을 독채로 쓰고 있어서 불을 켜고 끄는 건 자유였으니. 시체처럼 침대에 누워있던 중, 저녁은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거리로 나선다. 근처 베이커리가 문을 닫은 바람에 간이음식점까지 걷기로 한다.







감자튀김을 좋아하진 않지만, 독일에서 유명한 음식을 먹어 보겠다며 커리부어스트를 주문한다. 얼마 후 잿빛으로 변한 하늘 아래, 손에 들린 차가운 감자튀김과 소시지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졌다. 혼자라는 사실에 외롭기도 했고, 따뜻한 엄마 밥이 그립기도 했고.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먹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가판대 위를 덮었다. 아, 미운 베를린. 날씨가 아주 자기 멋대로다.






강가 다리를 지나 몽비쥬 공원으로 가는 길, 좀 전의 추위는 가시고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강가 너머로 춤에 취한 이들과 낭만의 한 장면이 된 연인들이 보였다. 이제 혼자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외로웠다. 집을 떠나온 이후, 내가 마주친 많은 이들은 늘 함께였다. 결국 내 인생에 홀로서기란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깨닫는다. 강가를 지나자 몽비쥬 공원이 보였다. 정원 곳곳에 있는 식물들은 내 마음에 초록빛을 잔뜩 뿌렸다.






켜진 등불에 반짝이는 강물과 춤추는 사람들. 고요한 밤의 한 장면에 막 빠져들 때쯤, 함부르크에 있는 유학생의 연락을 받는다. 그는 뭐가 먹고 싶냐고 물었고, 나는 깊은 고민을 하며 답을 보냈다.
“빵 말고 다 좋아. 빵은 그만 먹고 싶거든. 이제 밀가루는 정말 질려.”
“처음 독일 왔을 때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네. 조금만 기다려, 내일 맛있는 거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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