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캐롤 May 25. 2019

베를린에서 만난 우리

우리가 독일에서 요플레를 먹고 있다니, 웃음이 터졌다

시차 부적응자의 하루는 이른 새벽부터 시작된다. 오늘은 함부르크에서 살고 있는 유학생 오빠가 오는 날. 눈부신 태양 아래, 모렌슈트라쎄역을 향해 걷는다. 어제는 그렇게 춥더니, 따스한 바람이 몸을 감싼다. 출구에서 나온 그가 나를 보고 던진 첫마디. “베를린은 처음인데 널 보니까 여기 그냥 한국 같은데?” 사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오빠를 만나자마자 갑자기 한국에 있는 것처럼 편안해졌다. “환영해. 일단 짐부터 놓고 산책하러 가자.” 숙소에서 나와 테라스에 앉았다. 어떻게 보면 정말 어려운 일인데 우리가 독일에서 요플레를 먹고 있다니, 웃음이 터졌다.





구글 맵을 켜고 베를린 대성당을 검색한다. 이곳에 온 지 삼일 째 되는 날, 나는 베를린 시민이라도 되는 것처럼 가이드를 시작한다. “분수대를 잘 보면 무지개가 보여. 저기는 지금 공사 중이고.” 오빠는 내 설명을 흘려듣고는 배가 고프다고 외친다. 하지만 그 소리마저도 행복의 일부가 된다. 누군가와 함께 식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마냥 즐거웠기 때문. 이 머나먼 타국에서 서로를 의지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평소엔 베이커리나 카페에서 대충 끼니를 해결했는데, 동행이 생기자 맛있는 식탁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한식이 먹고 싶었으나 아시안 레스토랑은 대부분 휴무 거나 늦은 오후에 문을 연다고 했다. 그렇게 배고픔에 시달리다 도착한 곳은 태국 음식점. 우리는 고민 끝에 팟타이와 나시고랭을 주문했다. “갑자기 그 동영상 생각난다. 너 울면서 김치볶음밥 먹은 거.” 그가 내뱉은 말을 시작으로 긴 대화를 나눴던 것 같다. 독일에 와서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이나 가장 생각나는 한국 음식, 앞으로 우리가 먹을 음식에 대해.







오후에는 브란덴부르크 게이트로 향했다. 프레첼을 들고 행복하게 웃는 여행객, 벤치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 그 위로 낮게 깔린 먹구름. 어떤 것을 보기 위해 찾아간 곳에서, 소박한 장면에 매료되어 넋을 잃고 말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이루려고 하는 수많은 가치는 계획하지 않은 순간 얻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독일의 해는 게으르다. 8시가 지나도 낮인지 밤인지 헷갈릴 정도로. 숙소에 돌아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방을 구경시켜 준 뒤, 창가에 있는 화단과 독일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멀리 있는 그녀는 부러운 눈빛을 보내며 그저 잘 지내다 오라고 말한다. “엄마, 드디어 밀가루가 아닌 쌀을 먹었어. 오빠가 베를린에 있는 동안, 맛있다고 소문난 가게만 찾아가기로 했어. 또 연락할게!”





매거진의 이전글 독일 날씨는 원래 이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