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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May 25. 2019

그는 함부르크로, 나는 체코로 떠났다

베를린에 아쉬움과 사랑을 남기고, 안녕 독일!

독일에서 맞는 마지막 날 아침, 4인실을 독채로 사용하며 매일 베를린 돔과 정원을 다녔던 날들이 희미하게 스친다. 이제 겨우 구글맵 없이 돌아다닐 수 있게 됐는데, 벌써 떠나야 한다니. 하지만 마지막 날까지 좋은 날씨를 선물해주는 이 도시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베를린에 머무는 동안 먹은 음식을 나열했다. 조식으로 먹었던 요플레와 바나나, 태국 팟타이와 인도네시아 나시고렝, 멕시코 퀘사디아, 인도 커리, 터키 케밥, 스페인 가게 파스타, 독일 슈바인스학세. 전 세계 음식을 먹자고 결심을 한 것도 아닌데, 어쩌다 보니 각국의 나라 음식을 먹으러 다녔던 우리. 그리고 작은 깨달음을 얻는다. 파스타가 맛있긴 해도 역시 한국 음식이 최고라는 사실 같은.






점심을 먹고 몽비쥬 공원으로 향한다. 횡단 열차에서 남겨온 셰메츠키를 까먹으며 한가로운 시간을 즐긴다. 누드 비치인지 캠핑장인지 알 수 없는 공원, 나무 그늘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을 받고 활력을 얻는다. 그러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독일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인데, 산책이나 할까?”






일기 예보에서 본 번개는 단 한 번도 치지 않고 뜨거운 날씨만 이어지던 오후, 벤치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우리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던 길이었는지, 아니면 트램을 타러 가는 길이었는지 까맣게 잊은 채. 예쁜 네 사람의 뒷모습에 초록빛이 넘쳤다. 타는 듯한 태양 속에도 환하게 빛나는 그들의 이야기가 언제나 행복했으면 하고 바랐다.






매일 도보여행을 하다 1일권 티켓을 끊은 오빠와 나. 지하철을 타고 필하모니가 있는 곳을 찾아 나섰다. 11번 출구로 나오자, 뜨거운 여름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생각지 못한 이스트 사이드를 지나 도착한 베를린 필하모니. 악기 소리를 따라 건물 바깥으로 나갔다. 야외 공연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과 그 틈을 가득 채운 오케스트라의 음악. 그 순간을 오롯이 느끼기 위해 눈을 감았다.


“원래 베를린에 온 이유는 베를린 필하모니였는데.”
“근데 떠나기 전날 쉬어가기 식으로 오네.”






필하모니에서 브란덴부르크까지 이어지는 넓은 정원을 걸었다. 그러는 동안, 베를린에서 보낸 시간을 천천히 곱씹었다. 함부르크 유학생에게 배운 케밥 주문 방법,  탄산수와 물을 구분하는 방법, 무슨 음식을 먹을지, 어떤 공원에 갈지 고민한 날들과 오빠와 나눈 소소한 대화들. 우리는 각자 선택한 고독 안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성숙해지고 있었고 그런 서로의 모습에 고요한 응원을 보내기도 했다. 체코로 가는 버스에 올라 함부르크와 체코 사이의 모든 시간들이 평화롭고 따뜻하기를 바랐다.






긴 항해에 나선 지 2주가 흘렀다. 어깨에 내성이 생긴 걸까? 이제 배낭을 멘 채 양치질을 하거나 화장실을 가는데도 별 무리가 없다. 내 한계를 넘어 더 단단한 세상에 부딪칠 수 있게 됐다. 독일에서 멀어져 가는 버스 안. 지도의 작은 부분이 따뜻한 색으로 채워지고, 그와 함께한 순간 또한 얇은 종이에 잘 녹아들겠지.

Tschüss germ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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