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부침개로 피자를 만들면 생기는 일

피자가 되고 싶었던 부침개, 결국 라자냐가 되어버린 어느 주말의 기록

by 앨리스킴


“오늘 감자부침개 어때?”

아들이 간곡한 눈빛을 보낸다.

이 삼복더위에 웬 부침개냐고 한 소리 들을 걸 알면서도,

슬쩍 눈치를 보며 꺼낸 말일 테다.


“아님 피자라도 시켜 먹을까?” 한다.

평소 제 엄마가 배달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 텐데...

왠지 협박 비슷하게 들리는 건, 내 지나친 해석일까.


내가 아들을 모르나.

감자부침개라면 환장을 하는 녀석이다.

얼마 전엔 무거운 감자 한 박스를 땀 뻘뻘 흘리며 직접 들고 오기까지 했다.

나 같으면 그냥 안 먹고 말지 싶은데… 그 정성엔 나도 살짝 감탄했다.


그러니까 오늘 아들의 본심은

‘감자부침개 vs 피자’의 선택이 아니라,

백이십 퍼센트, 감자부침개가 먹고 싶다는 뜻이었다.


물론, 너무 덥다.

숨만 쉬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에 부침개를 부치는 건 거의 형벌이다.

그런데도 자식들이 부탁하면 댕강 거절하지 못하는 엄마들의 약점을 어쩜 그리 잘 아는지.


‘그래, 어차피 집에만 있을 거 뭐라도 해보자.’

마음을 다잡았다. 마침 뱃속도 심심해질 타이밍이었다.


남편과 아들은 무언의 눈빛 교환을 하다 내 눈에 딱 걸렸다.

“막걸리 있나?”

“(두 손으로 X 자를 만들어 보이며) 없어.”

“그럼 빨리 사와.”


이게 오고 간 대화였겠지.


‘남들은 호캉스 하는데, 우리는 집캉스라도 해보자.’

요즘은 바캉스 대신 집콕이 대세라더라.

에어컨 틀고, 배달음식 먹고, 영화 보고, 책 읽으며 편히 쉬는 것.

합리적인 소비라지만 관광지 자영업자들이 들으면 살짝 서운할지도 모르겠다.


“그래, 감자부침개도 부치고, 피자도 만들어 먹자!”

큰맘 먹고 외쳤다.

“조오~치!”

광대 승천한 두 남자.

혹시 내 마음이 바뀔까 봐 아들은 쏜살같이 마트로,

남편은 부엌을 기웃거리며 “도와줄 일 없어?” 묻는다.



“오늘은 종일 에어컨 켜두자.”

내가 좋아할 만한 최적의 제안이라 생각했던지 남편이 덧붙인다.


“창문 닫아야 하는데 기름 냄새는 어쩌지?” 말했더니,

‘오케이’라고 알아듣고 얼른 리모컨을 누른다.


사실 나는 더위보다 추위를 더 탄다.

에어컨 없이도 웬만한 더위는 잘 버티는 편이다.

그런데 오늘은 집 안이 벌써 30도. 부침개 부치다 내가 먼저 익을 판이다.


이왕 불 앞에 선 김에, 그리고 피자 얘기도 나왔으니

감자부침개로 도우를 대신해 피자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었다.

마침 스파게티 소스도 남아 있고, 토핑 재료도 있으니 딱이다.


계획은 이랬다:

한 장은 오븐에, 한 장은 팬에.

바삭한 부침개 도우 위에 소스, 토핑, 치즈를 얹고.

한 입 베어 물면 치즈가 죽죽 늘어나는 피자 조각,... 상상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1차로 감자부침개에 막걸리 한 잔으로 속을 채운 후,

야심 찬 2차전을 준비했다.


도우 위에 소스를 바르고,

토핑으로 볶은 버섯·양파·베이컨, 그리고 파프리카와 올리브까지.


“앗, 모짜렐라 치즈가 없네?”

냉동실에 있을 줄 알았는데, 안 보인다.

치즈 없는 피자라니... 이건 말이 안 된다.


마침 딱, 막걸리를 들고 들어온 아들과 눈이 마주쳤다.

땀범벅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말은 안 해도, “진짜 더워요… 못 나가요”가 다 보이는 표정이다.


뭐, 없는 대로 하자.

다행히 샌드위치용 네모난 치즈가 있어 그걸로 대신했다.




드디어 알림이 울리고, 오븐에서 피자를 꺼냈다.

비주얼은 제법 그럴싸했다.


“맛 어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물었다.

남편은 언제나처럼 일단 엄지부터 치켜세운다.


나름 미식가를 자처하는 아들의 평점은 5점 만점에 4점.

“간은 완벽해. 그런데 도우가 좀 눅눅한 게...‘옥에 티’ 랄까? “


아들의 표정을 살피니,

아마 3점 줬다간 ‘다시는 안 해!’ 할까 봐 한 점 얹은 눈치다.

‘모를 줄 아나… 엄마는 다 안다. ㅋㅋ’



다음은 팬 피자.

이번엔 파프리카를 제일 위에 얹고, 뚜껑을 덮어 약불에 익혔다.


잠시 후, 타는 냄새가 났다.

뚜껑을 열자 치즈가 흘러내려 바닥에서 지글지글 끓고 있었다.

이미 한 번 익힌 재료들이라 치즈만 녹으면 충분했기에, 얼른 불을 껐다.

비주얼은 그럴듯했다. 맛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데 한 입 베어무는 순간… ‘허물허물’.



“어… 피자가 왜 이래?”

팬에 구우면 더 바삭하겠지 싶었던 내 예상은 야무지게 빗나갔다.

촉촉을 넘어서 축축, 바삭은커녕 흐느적거리기까지ㅜㅜ.

결국 이 피자는 피자인 듯 피자 아닌, 정체불명의 피자가 되어버렸다.


기껏 땀 흘려 만든 결과물이 이렇다니, 살짝 짜증이 올라왔다.

그걸 눈치챈 아들이 슬쩍 웃으며 위로랍시고 말한다.

“리조또 같기도 하고… 라자냐 느낌도 나고… 맛은 진짜 좋아!”


“뚜껑을 닫은 게 실수였나? 수분을 날렸어야 하나?”

괜히 고민하다 ‘배달시킬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남편과 아들은 허물어진 팬 피자를 안주 삼아 맥주를 꺼내온다.

“피자엔 막걸리보다 맥주지.”

막걸리에 이어 맥주까지 챙긴 남편은 그저 싱글벙글이다.

결국 우리는 그걸 다 해치웠고… 이미 뱃속은 한계치에 도달했다.


“느끼하지? 이럴 땐 컵라면 국물이 딱인데.”

그 말에 또 속는 셈 치고 젓가락을 들었다.




창문까지 꼭꼭 닫은 집 안엔

부침개와 피자 냄새가 빠져나갈 틈 없이 구석구석 들러붙었다.

참기 힘들 정도로 가득 찬 배 속은 이제 냄새조차 받아들일 여유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하는 수 없이 에어컨은 켜 둔 채, 창문을 활짝 열어 냄새를 내쫓았다.


바람 한 점 없는 날.

냄새가 쉽게 빠져나갈 것 같지는 않았다.


“이러다 전기세 폭탄 맞는 거 아냐?”

“껐다 켜는 게 더 전기 많이 먹어.”

나도 그렇게 들은 적 있으므로, 이번엔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우리의 집캉스는

기름과 치즈, 라면 국물 냄새를 잔뜩 품은 채 끝이 났다.


5점 만점에 3점.

이 정도면 괜찮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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