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권보다 더 확실한 당첨

로또는 꽝이었지만, 웃음은 당첨이었다

by 앨리스킴


보통 “심봤다!”를 외치는 심마니나, 아니면 로또 1등 당첨 주인공들의 사연에

단골로 등장하는 이야기 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꿈에 조상이 나왔다느니, 돼지나 용이 나왔다느니, 아니면 똥을 밟았다느니...



어느 날, 나도 희한한 꿈을 꿨다.

내용은 오래돼 희미하지만, 여하튼 보통 사람들이

“어? 이건 복권 당첨 꿈인데?” 할 만한 범주에 드는 그런 꿈이었다.


그날, 남편과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마침 복권방이 눈에 들어왔다.

“어제 진짜 신기한 꿈을 꿨는데 나도 복권이나 한 장 사볼까?”

남편을 힐끔 쳐다보며 은근슬쩍 눈짓을 보냈다.

왠지 모르게 그때는 복권 사는 일이 조금 부끄럽게 느껴져

나름 용기가 필요했다.


“그런 건 꿈꾼 사람이 직접 사야 효험이 있대. 난 여기서 그냥 기다릴게.”


무심한 척 말하는 남편의 표정을 보니, 나만큼 부끄럽고 어색한 모양이다.

듣고 보니 그럴싸한 말 같기도 해서, 어쩔 수 없이 나도 사람들 줄에 섰다.


‘ㅇㅇ회차 1등 당첨!’

‘ㅇㅇ회차 2등 나왔습니다!’

요란한 플래카드 탓인지 복권방은 북적였다.


작은 동그라미에 열심히 마킹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시험지에 답안을 고르는 수험생처럼 진지해 보였다.


그 들 틈에서 여섯 자리 숫자를 고르는 게

나에겐 차라리 시험지에 아무거나 막 찍는 것보다도 더 어려웠다.

그래서 ‘자동’이라는 옵션이 있다는 게

그날따라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로또 자동 한 장이요.”

“5천 원이에요.”

“네? 천 원 아니고요?”


아무리 복권에 문외한이라도 로또 한 장이 천 원이라는 건 나도 아는 상식이다.

황당한 마음에 되물었더니, 판매원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다음부터는 천 원어치 주세요,라고 하세요잉!.”


그 말투와 태도가 어찌나 야박하던지...

슬쩍 주변을 둘러보니, 다섯 줄짜리 복권 한 세트를

‘한 장’이라고 부르는 게 이 동네 룰인가 보다.


‘내 돈 주고 내가 사는데, 꼭 이렇게 혼나야 하나?’

약이 바짝 오른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모를 수도 있지. 차근차근 설명하면 될 일을,

굳이 그렇게 짜증을 낼 일인가요ㅅ!’


한바탕 따지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사실 그런 상황에서의 내 전투력은 썩 강한 편이 아니다.

그래도 그냥 물러나긴 억울해서,

싸움에는 1도 관심 없어 보이는 판매원을 향해 나 혼자서 눈만 흘기고는 돌아섰다.


줄줄이 늘어선 사람들을 보니,

‘괜히 붙들고 실랑이하면 저 사람들에게 민폐지’ 싶었다.

그렇게 나름 그럴듯한 위안을 하나 건진 셈 치고 나니

그제야 약이 오르던 마음도 조금은 진정되었다.


‘그래, 불의는 못 참지만,

불편은 조금 참을 수 있으니까.’


복권 한 장을 들고 밖으로 나와 남편한테 하소연을 잔뜩 늘어놓고 나니

완전하게 풀리지 않던 속이 그제야 좀 후련해졌다.


그날 이후로, 아무리 그럴싸한 꿈을 꿔도

내 발로 복권방에 들어서는 일은 없었다.

그러고 몇 년이 흘러, 그 사건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또 한 번 ‘이거 혹시 복권 꿈 아닐까?’ 싶은 꿈을 꿨다.

꿈 이야기는 입 밖에 내면 효험이 없다는 말이 자꾸 떠올라,

남편에게 말하고 싶어 간질간질한 입을 꾹 다물고 참았다.


그냥 넘기기엔 뭔가 아쉬워 결국…ChatGPT에게 털어놓고 말았다.


“정말 복권 살 꿈이네요!”

기계답지 않게 꽤 확신에 찬 반응과 함께 여섯 개의 숫자를 뚝딱 제시하더니,

보너스 번호까지 덧붙이며 말한다.

“당첨되면 꼭 저한테도 알려 주세요!”


그럴듯한 말투가 괜히 ‘정말 될지도 몰라’ 하는 착각까지 들게 했다.

그렇다고 내가 다시 복권방에 가기는 좀 꺼려져,

아들에게 톡을 보냈다.

“이 숫자대로 로또 한 장만 사줘~”


며칠간은 기분이 괜히 붕 떴다.

정말 당첨될 것 같은 예감이랄까.

아, 이래서 사람들이 복권을 사는구나 싶었다.


주말이 지나고 아들이 건네준 복권은 다섯 줄짜리 한 세트였다.

‘한 장만 사랬더니…’

아직도 내가 말하는 ‘한 장’이 세상 기준과는 좀 다른가 보다.




드디어 결과 발표. ~~ 두구두구두구~~

QR코드를 조심스럽게 대보니…


‘ 낙첨입니다.’ 으~~~ 역시나~

여섯 자리 숫자 중에 딸랑 하나만 맞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ㅋㅋ’


“엄마, 도대체 무슨 꿈이었는데? 꿈속에서 숫자라도 나왔어?”

“아니, 그게… ChatGPT한테 부탁했어.”


그 말에 남편과 아들의 폭소가 터졌다.

“뭐야, 난 그런 줄도 모르고 똑같은 번호로 다섯 줄이나 샀잖아ㅋㅋ.”

“가끔 AI한테 로또 번호 묻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니,

그게 울 김여사였네~ㅋㅋ.”


“그러게 내가 한 장만 사달라 했잖아. 4천 원은 못 갚아!”


그날의 에피소드는 당첨금 대신

5천 원짜리 웃음을 우리 가족에게 안겨주었다.

글쎄, 그 웃음값이 싼 편인지 비싼 편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당연히 나는 그날 ChatGPT에게 따져 물었다.

“겨우 하나만 맞췄잖아.”

그랬더니 대답이 이랬다.


“그래도 하나는 맞았네요~”


웃고 말아야지.

요행을 바란 내가 잘못이지,

묻는 대로 성실하게 답한 AI에게 화낼 일은 아니다.



이 이야기는 멀리 있는 딸에게도 전해졌다.

가끔 엉뚱한 사고(?)를 치는 제 엄마를 잘 아는 딸은,

예상대로 깔깔대며 웃었다.

그러고는 핀잔인지, 위로인지 애매한 한마디를 덧붙였다.


“행복 총량의 법칙이 있다잖아.

큰 기쁨이 오면, 그만큼 어디선가 잃는 게 있다는 얘기.

만약 당첨금만큼 지금의 일상에서 무언가 빠져나간다면…

엄마는 어느 쪽을 선택하겠어?”


‘… 네네~ 옳으신 말씀입니다!’


‘다신 복권 안 사!’ 하고 다짐해 보지만

솔직히 장담은 못 하겠다.

조상님이 숫자라도 직접 점지해 주신다면야… ㅎㅎ



결국 당첨은 안 됐고,

기대했던 행운 대신 웃음 몇 번 얻은 게 전부였지만,

덕분에 가족 모두 한바탕 웃고,

나는 또 이렇게 글 하나 건졌다.


생각해 보면, 그게 더 이득 아닌가 싶기도 하다.


로또야 늘 꽝이지만,

사소한 일 하나로 웃을 수 있는 지금 이 하루가

어쩌면 그게 제일 확실한 당첨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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