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기분에 시 한 편,

시는 때때로 별이 되고, 가시가 된다

by 앨리스킴


시는 때때로 별이 되고, 가시가 된다.


같은 책도, 같은 시도

읽는 마음결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까만 글자들이 반짝반짝 별이 되어 마음속에 총총 박히는가 하면,

어떤 날엔 가시처럼 꼭꼭 찔러오기도 한다.


노래도 그렇다.

사랑으로 마음이 가득할 땐

노랫말 하나하나가 달콤한 속삭임처럼 들리고,

이별의 아픔 속에선

모든 가사가 내 이야기처럼 가슴을 울린다.


그렇게 책이나 노래처럼,

시는 내 마음의 풍경에 따라 전혀 다른 빛깔로 내려앉는다.

조용히 펼쳐든 시 한 편이,

기억 저 편에 감춰둔 빛바랜 추억 하나 꺼내

가슴 설레게도 하고,

어떤 날엔 아물지 않은 상처 하나 살짝 건드려

마음을 눌러오기도 한다.

또 어떤 날엔

한 겨울 담요처럼 포근하게 나를 감싸주기도 한다.

마음이 버거운 날엔, 아무 말 없이 등을 토닥여주는 사람처럼 말이다.


노랫말이 감정을 흔드는 파도라면,

시는 잔잔한 호수 위의 작은 파문 같다.

그렇게 천천히, 마음 깊은 곳까지 번져든다.



얼마 전, 책장 깊숙한 곳에서

오래된 시집 한 권을 우연히 꺼냈다.

밑줄과 메모가 빼곡히 남겨진 페이지들이

희미한 기억의 안갯속으로 나를 데려갔다.

‘오늘은 청량한 햇살, 또 어느 날은 세찬 바람, 주룩주룩 비…’

그 시절, 페이지 한쪽에 조심스레 적어 둔 감정의 날씨였다.


그때의 나는 이런 마음이었구나.

조금 유치하지만 제법 진지했던 시절.

그 시절의 나를 다시 만나는 일은 의외로 괜찮은 기분이었다.



그날 이후, 한 권씩 시집을 꺼내 보기 시작했다.

지하철 안에서도, 산책길 벤치에서도,

자전거를 타다 쉬는 오르막 쉼터에서도.


그중에서도 지하철에 들고 다니기 딱 좋다.

책이 얇아 가방이 가볍고,

굳이 어디까지 읽었는지 표시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아무 페이지나 펼쳐 한 편 읽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산책길에서는 풍경과 어울리는 시를 찾아 읽는 재미가 있다.

하늘빛,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 들려오는 바람 소리까지,

그날의 느낌에 맞는 시 한 편을 만나면,

마치 마음과 계절이 맞닿은 듯한 기분이 든다.


가끔은 발걸음이 자전거 페달로 바뀌기도 한다.

그렇게 달리다 만난 바람결에 시 한 수를 슬쩍 날려 보내면

“아, 행복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청포도 – 이육사>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


‘청포도’ 시를 읽다가 문득 남편에게 물었다.

“이 시, 기억나?”

“당연하지. 아직도 외우고 있는 걸.”

그러면서 우리는 각자 다른 학교 교실에서 국어수업을 받던 학생으로 돌아갔다.


“우리 선생님은 말이지~”

나는 신이 나서 이야기를 꺼냈다.

국어 수업이 있는 날, 자신의 번호 끝자리가 그날 날짜와 겹치면

영락없이 지목당할 확률이 99%였다.

이를테면 6일이면, 6번, 16번, 26번, … 이런 식.

그날 해당 되면, 하는 수 없이 시를 달달 외워야 했고,

그게 또 왜 그렇게 안 외워지던지…


내 말이 끝나자 남편도 까까머리 시절로 돌아가 웃으며 말했다.

“우린 말이지~ 그런 날엔 누가 슬쩍 대신 일어나 주기도 했어.

외운 애가 눈치껏 벌떡 일어나 암송하면 선생님도 그냥 모르고 넘어가셨지.

그 정도의 의리는 있었어, 우리 남학생들은.”


그 말을 듣고 나니

‘우린 왜 그걸 몰랐지…’ 하는 억울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런데 진짜 운 나쁜 경우도 있었어.”

“어떤 경우?”

“국어 선생님이 담임인 반은 말이지… 그 전략이 전혀 통하지 않았거든.

누가 누구인지 다 알고 계시니까, 딱 걸려.”

“아… 그런 반전이…”



시는 이런 기억들을 불쑥 꺼내는 힘이 있다.

직접 시를 써본 적은 없지만,

읽는 순간만큼은 그 안에서 충분히 머물 수 있다.

정해진 길도, 꼭 들어맞아야 할 해석도 없다.

그냥 눈으로, 마음으로,

그 순간의 감정이 닿는 대로 읽으면 된다.


시를 읽다 보면,

어느 날엔 별처럼 반짝이고,

또 어떤 날엔 구름처럼 무겁고,

어떤 시는 콕콕 마음을 찌르기도 한다.

그게 바로 시를 읽는 기쁨이고,

시를 읽는 사람만의 특권일지도 모른다.


우리 세대의 학창 시절엔,

시는 주로 ‘시험문제의 대상’이었다.

시어를 해부하고, 주제를 분석하고, 시인의 의도를 외우느라

정작 시가 얼마나 깊고도 따뜻한지

느낄 새도 없이 지나쳐버렸다.

돌이켜보면, 그건 시에게 조금은 가혹한 방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시인이 직접 나서서

“이건 이렇게 읽어야 해요. 여기에 이런 뜻이 숨어 있어요.”

하고 알려준다면 또 그 나름의 재미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방식으로 시를 풀어주는 사람들의 글도 즐겁게 읽는다.


하지만 나에겐,

해석보다 감정에 따라 읽는 시가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정답 대신 피어나는 각자의 해석,

읽는 순간의 감정과 상황이 곧 답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억지로 의미를 짚어내기보다,

그저 ‘내 느낌대로’ 읽는 자유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시는,

어느 날 불쑥 오래된 기억을 꺼내주기도 한다.

그 안에는 웃음도 있고,

잊고 있던 추억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내가

한 장의 시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시를 읽는다는 건,

지금 이 순간의 나를 가장 솔직하게 마주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오늘은 별빛이고, 내일은 흐린 구름,

또 어떤 날은 보랏빛 상처처럼 스며들기도 하니까.


그저, 그런 시 한 편을 마음에 품고 오늘 하루를 걷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니, 충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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