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주방에서 도라지 까는 시아버지를 본 충격

친정아버지보다 더 편안한 시아버지

by 앨리스킴


시아버지는 올해 여든다섯이시다.

흰머리가 드문드문 보이지만 염색을 한 번도

하지 않으셨고, 머리숱은 남편보다 더 풍성하다.


그래서일까, 나는 종종 아버님의 연세가

이미 여든을 훌쩍 넘으셨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아마도 내가 어린 시절 경험했던

‘아버지상’과는 너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님의 젊음의 비결은

학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삶에서 체득한 지혜를 실천하는 데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음식을 드실 때마다 “아이고, 맛나다” 하시고,

작은 선물에도 “아이고, 고맙네” 하신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괜찮으니 너희 좋을 대로 해라” 하시며

웃으시는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품 또한 큰 몫을 차지했으리라 짐작된다.


결혼 후 33년 동안, 아버님께서는 단 한 번도

“물 한 잔 갖다 다오”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다.


손주들에게도 늘

“내 발로 걸을 수 있을 때는 내가 해야지.

작은 움직임도 다 운동이 된다”

하시며 스스로 움직이신다.


그런 작은 습관들이 쌓이고 쌓여

아버님의 젊음을 지켜온 게 아닐까 싶다.




나는 7남매의 막내로 자랐고,

남편은 5남매의 맏이다.


결혼을 결심했을 때, 주변에서는

“맏며느리 노릇이 힘들지 않겠냐”는 걱정을 건넸다.


솔직히 나 역시 마음 한켠에 두려움이 있었다.


내가 자라온 엄격한 가풍에 비추어 볼 때,

맏이라는 자리가 지닌 무게감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 친정아버지는 1929년생이셨다.

양반가의 사대부 정신을 깊이 간직한 세대로,

항상 엄격했고 유교적인 법도를 중시하셨다.


우리 남매에게 아버지는

사랑이 없으셨던 것이 아니라,

그 표현 방식이 조선시대식이 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늘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운,

거역할 수 없는 큰 산 같은 존재였다.



남편 집안은 달랐다.


첫인사드리던 날, 시아버지와 딸이 스스럼없이

농담을 주고받으며 장난치는 모습을 보고 나는 그저 낯설고 어색했다.


내 기준에서는 오히려 딸들의 행동이 조금 버릇없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때 깨달았다.

‘아버지와 자식은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

는 고지식함이 내 안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음을.




결혼 후 처음 맞은 명절.


긴 귀성길을 버텨 도착한 시가의 부엌에서,

나는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음식 준비로 부산한 부엌 한쪽,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도라지를 까고 있는 시아버지.


쌉싸름하면서도 상큼한 도라지 향이 부엌 곳곳에

퍼져 명절 분위기를 한층 돋우고 있었다.


집안일은 결코 남자의 몫이 아니라고 여기셨던 친정아버지와는 정반대였다.

우리 아버지였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명절이 아닐 때도 아버님은 빨래를 널고 잔심부름을 도맡아 하셨다.


그제야 알았다.

집안일을 함께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남편의 태도가 바로 아버님에게서 배운 것임을.




15년 전,

시어머니께서 당뇨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그 무렵 아버님은 요양보호사자격증까지 따시며 극진히 간호하셨다.

칠십을 바라보던 연세에 환자를 돌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병실 주변에 소문이 날 정도로 헌신적이셨다.


“할 만큼 했으니 여한 없다” 담담히 말씀하시던

모습은 자식들에게 큰 울림이 되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몇 년 동안

매일같이 외곽에 있는 납골당에 다녀오셨다.


손주들은 할아버지 팔순잔치에서 감사패를 드리며

“이 시대의 진정한 사랑꾼”이라 불렀을 정도였다.



“함께한 50년도 짧더라.

너희도 아낌없이 사랑하며 살아라.”


그 말씀이 귓가에 맴도는 오늘은

시어머니의 기일이다.

멀리서 굳이 서울까지 올라오신 것도,

아마 그 그리움 때문이리라.



제사상 앞에 앉아 묵묵히 바라보시던

아버님의 뒷모습이 오늘따라 유난히 쓸쓸해 보였다.


밤이 깊도록 잠 못 드시는 기척이 들렸다.

반세기를 함께한 아내와의 이별을

아직도 힘겹게 느끼고 계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가을 햇살은 따갑지만

바람은 서늘하게 불고 있었다.


“아버님, 소풍 가요. 우리~.”


저만치 앞서 걷는 시아버지의 걸음걸이에서

예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노인의 모습이 문득 비쳤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새삼 떠올라,

괜스레 마음이 짠해졌다.



“칠십에는 70kg만큼, 팔십에는 80kg만큼의 짐을 지고 가는 게 인생이라더라.

나이 들면 몸이 점점 더 무거워지는 건 당연하지.”


아버님 말씀에 나는 살짝 다가가 팔짱을 끼었다.


친정아버지 생전에는 차마 부려보지 못했던

그 어리광을 이제야 아버님께 부려본 것이다.



나에게 시아버지는,

친정아버지보다 더 편안한 아빠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나는 시아버지를 통해 알게 되었다.


진정한 존경은

권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사랑과 헌신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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