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문에 걸린 이웃의 작은 나눔
추석의 풍속도가 달라졌다.
이제 추석은 더 이상 ‘명절’이라기보다 ‘연휴’의 의미가 훨씬 크게 다가온다.
고속도로 풍경도 귀성길보다는 여행길에 오른 차량들로 더 붐빈다.
예전처럼 집성촌이 모여 살던 모습은 사라지고,
고향을 지키던 어르신들마저 하나둘 떠나고 나면,
그리움 속의 고향은 점점 희미해진다.
그래서인지 요즘의 차례는 의례적인 제사보다는
가족 모임의 의미로 자리 잡아가는 듯하다.
나도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명절이 가까워오면 대목장을 보러 가시는 엄마를 동구 밖까지 배웅하고는
온종일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머리에 이고 두 손 가득 짐을 들고 돌아오시는 엄마의 고단함은 미처 헤아리지 못한 채,
나는 오로지 그 보따리 속에 들어 있을 추석빔에만 마음이 쏠려 있었다.
동네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하나둘씩 모여 새 옷을 자랑했다.
그 옷을 얻지 못한 아이들의 부러운 눈길이 은근히 기분 좋게 느껴지던 기억도 있다.
그 시절에는 물려입거나 고쳐 입는 것이 당연했다.
오히려 옷에 몸을 맞춰야 할 만큼 모든 것이 귀하던 때였다.
그래서 명절은 풍족한 음식과 새 옷을 선물받는 특별한 날이었고,
아이들에게는 일 년 내내 손꼽아 기다리는 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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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언제부턴가 명절에 선물상자를 들고 다니는 풍경은 사라졌다.
이제는 쿠폰이나 택배로 대신하는 것이 익숙하다.
편리함은 커졌지만, 그만큼 허전함도 깊어졌다.
아마도 어린 시절 추석을 기다리던 그 설렘이 아련히 떠올라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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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엄마, 친구한테서 추석 선물 왔어.”
아들이 내민 투명한 봉투 안에는 작은 과자 몇 개와 손편지가 들어 있었다.
“904호 아주머니께.
저희 집에 추석 간식이 있어서 같이 먹어요.
즐거운 추석 되세요.
맛있게 드세요.
예준 올림.”
아— 감동! 앞집 꼬마 예준이었다.
이번 추석,
이렇게 직접 건네받은 선물은 처음이었다.
순간, 어린 시절 새 추석빔을 받았을 때만큼이나 마음이 벅차고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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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도심 아파트에서 이웃과 무언가를 나누는 일은 참 드물다.
먼저 다가가기도 망설여지고, 배려라는 이름으로조차 눈치를 봐야 하는 세상이다.
특히 아파트는 독립적인 공간이라
이웃이 누군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거리는 가까워도 마음은 더 멀게만 느껴지는 게 요즘의 아파트 문화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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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예준이네가 새로 이사 왔을 때가 떠오른다.
작은 롤케이크 상자를 들고 꼬마를 앞세운 가족이 인사를 왔다.
예전에는 이사 떡을 돌리던 풍경이 자연스러웠지만,
요즘은 누가 이사 오든 말든 서로 관심 없는 분위기라 내심 반가웠다.
“인테리어 공사 소음 때문에 많이 불편하셨죠~”
그 한마디가 오히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불러왔다.
사실 공사 기간 내내 시끄러워 집을 비우면서 약간 투덜댔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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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나도 아이가 좋아할 만한 간식거리가 생기면 작은 봉투에 담아 예준이네 문 앞에 걸어두곤 했다.
“예준아,
아줌마네 집에 간식이 좀 많아서 나눠 먹자.
904호 아줌마가.”
그렇게 우리는 자연스럽게 ‘간식 친구’가 되었다.
가끔은 답례로, 예준이가 정성스레 쓴 편지와 함께 작은 봉투가 우리 집 문 앞에 놓여 있곤 했다.
어른들끼리 직접 대면하면 하찮아 보일까 조심스럽고, 자칫 부담이 되지 않을까 망설여지지만,
이렇게 문 앞에 걸어두는 방식은 오히려 더 정겹고 따뜻했다.
크지 않아도 좋습니다.
이웃끼리 나누는 작은 마음이 소통의 다리가 되고,
삭막한 도시에 풍요로운 정을 채워주는 보름달 같은 선물이 되지 않을까요?
이번 추석, 보름달보다 환한 선물 같은 미소로
가족과 함께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