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우연히 스쳐 지나가는 누군가에게서 향기로운 냄새가 내 코끝에 잠깐 머문다.
‘무슨 향수를 쓸까?’ 그랬던 적이 있었는데…
자전거 타고 달리다가 바람결에 향긋한 냄새가 훅 하고 들어온다.
‘뭐지, 이 향은?’ ‘맞다! 그때 그 기분 좋은 냄새’
주변을 둘러본다.
아, 바로 너였구나! 쥐똥나무.
그다지 화려함을 뽐내지도 않고 수수하게 차려입은 새내기 사회초년생처럼 초록 이파리 사이사이 하얀 꽃을 드러내고, 회색빛 도로가에 울타리로써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예쁘고 향기로운 꽃나무에 왜 하필 쥐똥나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찾아봤더니 가을에 까맣고 작은 열매가 꼭 쥐똥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단다.
좀 많이 억울하겠는 걸.
그러고 보니 꽃 중에 또 억울하겠다 싶은 이름을 가진 것들이 더러 있는 것 같다.
개망초가 그렇고, 노린재나무도 그렇다.
노린재 하면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곤충인데… 이름과 달리 하얀 꽃은 소박하게 아름답고 향기 또한 인위적인 비싼 향수도 못 따라갈 만큼 그윽하다.
나무를 불에 태우면 노란재가 남는다 하여 이름 붙었다는데 , 예부터 입으로 전해지다가 어디서 어긋났는지도 모르게 노란재가 노린재로 둔갑한 거란다.
북한에서는 노란재 나무라는 정확한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단다.
달리는 자전거 뒤로 6월의 싱그러움이 휙휙 지나간다.
작은 둔덕 위에 노란 코스모스처럼 생긴 금계국이 지칠 줄 모르고 피었다 지기를 반복한다.
지천에 널려 너무 흔한 나머지 천덕꾸러기 취급받을까 봐 부지런한 걸까? 5월 내내 노란 꽃밭을 만들어 놓더니 지금도 여전히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 준다. 어떤 꽃이든 꽃은 그 자체로 충분히 예쁜데…
자전거 타고 위에서 내려다본 꽃송이들이 3D 영상처럼 공중에 떠 있는 것 같다. 샛노란 무리들 속에 하얀 개망초 꽃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둘이 경쟁이라도 하는지… 함께 있는 곳은 유독 키가 웃자라 있다.
아니지, 또 인간의 관점에서 본 편견이다. 같이 어우러져 있음으로 해서 키도 더 크고, 각자의 색깔과 모양도 더 도드라져 보이는 시너지 효과 일 수도 있는데…
개망초꽃도 자세히 보면 참 예쁘다. 갈래갈래 하얀 테두리를 갖추고 한가운데에는 노란 동그라미를 오려 붙여 놓은 것 같다. 그 모양이 흡사 써니사이드업 상태의 계란 프라이처럼 생겼다고 해서 계란꽃이라 부르기도 한다.
파르라니 깎아놓은 언덕배기를 지나는데 방금 작업을 끝냈는지 풋풋한 풀냄새가 바람결에 묻어있다.
낯설지 않은 익숙한 냄새가 잠시 내 기억을 어린 시절 사골 마을로 데려간다.
다섯 살인지, 여섯 살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그 당시 국민학교 저학년이던 오빠를 오롯이 믿고 자전거 뒤에 타고 가다가 내리막길에서 그대로 꼬꾸라졌다.
오빠는 그때 , 무릎 밑에 살이 찢어져 (뼈가 보일 정도로 살이 벌어졌다고 하는데 다소 과장인 듯) 지금도 흉터가 남아있을 정도로 큰 상처가 났다고 한다.
어른들 말씀으로는, 나는 그때 다행스럽게도 논 가운데로 처박히는 바람에 크게 다친 데는 없었다고 했다.
그때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이후로 나는 자전거가 무서워 배울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피하고 살았다. 딱히 사는데 별 불편함이 없었으므로.
내가 아이패드를 만나고부터 남편은 귀여운? 불만을 토로한다. 한번 잡으면 몇 시간이고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고 ‘낚시 과부? 보다 더한 아이패드 홀아비?’ 라며.
심지어 밥을 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 밥상을 차려놓고 밥 먹으러 오라고 몇 번을 불러도 ‘잠깐만’을 외치며 번번이 그 잠깐만이 길어지기가 일쑤다.
“당신도 같이 해볼래? 진짜 재밌는데..”
어느 날, 남편은 자신도 다른 취미를 가져봐야겠다며 자전거 한 대를 구입했다.
동네 구석구석을 탐방하고, 공원 투어도 하고, 제법 멀리 있는 자동차로는 갈 수 없는 곳곳을 두루 다녔다.
자전거를 타 보니까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들을 혼자서만 즐기기엔 너무 안타깝다며 함께 하자고 제안을 했다.
내키지 않아 하는 나에게 이런저런 이유들을 나열하며 설득하느라 애쓰는 모습에, 특히나 나이 들면서 취미 생활도 함께 해야 의미 있는 거라는 말에
아이패드한테 우선순위를 빼앗겼던 남편이 살짝 마음에 걸리기도 해서 … 그래 볼까? 대답해 버렸다.
참, 나 자전거 트라우마 있는데…
“각자 할 일 하고 매일 두 시간 정도는 함께 라이딩하는 걸로, 어때?”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자전거 타기 집중 과외를 받았다.
일단 사람들이 없는 공원길을 돌기로 했다. 가장 무서운 적은 ‘두려움’이라는 말이 실감 났다.
몇 바퀴 구르기도 전에 브레이크부터 잡게 되고 발은 자전거 페달 위 보다 땅을 디디고 있는 횟수가 많다 보니 영 진도가 안 나갔다.
“저-기 저 꼬맹이들 좀 봐. 저 애 들도 하는데 … 당신도 할 수 있어! “
다리가 땅에 닿기 때문에 다칠 일은 없다며 안심시켰다.
자전거 타고 묘기?를 부리는 꼬맹이들이 부럽고, 대단해 보였다. 운전면허 취득할 때, 택시 기사님들이 얼마나 존경스러웠던가!
“손 놓지 마! 절대로. 꽉 잡고 있어~ “ 신신당부하며 그래도 못 미더워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본다.
“꽉 붙들고 있으니까 염려 말고 앞을 봐!”
자전거 배워주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거짓말쟁이가 되나 보다. 몰래 손 놓고도 절대 아니라고 시치미를 뗀다.
그 바람에 안심하고 몇 바퀴 돌다 보면 어느새 혼자서 달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혼자라는 사실을 확인한 바로 그 순간 ‘꽈당’ 넘어진다.
처음 자전거 배우는 사람들의 패턴이 거의 그렇더라.
나도 예외 없이 몇 번을 넘어지고 달리고 를 반복하다가 가까스로 남편이 주는 면허?를 취득했다.
살짝 거짓말 좀 보태자면, 그 순간은 자동차 면허 합격했을 때 보다 더 기쁘고 뿌듯했다.
드디어 트라우마 극복!
그렇게 해서 나는 57년 만에 초보 사이클리스트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