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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BJ Jul 17. 2021

엄마의 미완성 그림

마지막 페이지

해당화 열매가 빨간 과일처럼 탐스럽게  익어가는 7월.

때늦게 피어난 분홍꽃 한 송이가 ‘내가 바로 해당화 꽃이에요’ 라며  자신의 존재를 굳이 알려 주는 것 같다.

꽃과 열매를 한꺼번에 보지 않았다면 서로 연결 짓기가 어려운 조합이다. 

해당화 꽃 위로 엄마의 주름진 얼굴이 겹쳐진다.



“내 죽기 전에 언제 또 오겄나?”


구순인 엄마는 서울 올라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았건만 빨리 집에 가자고 재촉하시는 아버지의 성화에 못내 아쉬워하며 막내딸 집을 나섰다


“내년에 또 오시면 되지”

“내년 봄에 우리가 모시고 올게요.” 함께 왔던 언니들이 거든다.


엄마의 뒷모습이 영락없는 노인네다. 엄마만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함인지 노인 보행차도, 지팡이도 한사코 마다 하셨다.

우리 엄마가 어느새… 마음이… 아린다.


재작년 딱 이맘때쯤 엄마는 모처럼의 서울 나들이에 소풍 온 아이 마냥 좋아라 하셨다.

뉴스에서만 봤던 인천공항에 가보고 싶다고 하셔서 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해변도로에 곱게 피어있는 해당화 꽃을 보시고는 섬 쪽에서만 볼 수 있는 꽃 이라며 분홍색 꽃잎을 입에 물고 소녀처럼 해맑게 웃으셨다.


별나게 꽃을 좋아하시던 엄마는 예전 시골에서 농사일을 하시면서도 꽃밭 가꾸는 일에 정성을 쏟으셨다.

어렴풋한 내 기억 속에도 어린 시절 우리 집 앞마당에는 사시사철 꽃이 있었고, 추운 겨울에도 마른 장미덩굴 위에 빨간 장미가 늘 피어 있었다.

요즘처럼 진짜 같은 조화가 아니라 누가 봐도 조화인 게 티 나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장미를 걸어두고는 꽃피는 봄이 얼른 오기를 기다렸던 것 같다.  


또 하나의 기억은, 집 마당에서 보리타작을 끝내고 엄마가 제일 먼저 했던 일이,

장독대를 둘러싼 노란 키다리 꽃과 우물가에 빙 둘러앉은 주황색 금잔화 위를 뽀얗게 뒤집어쓴 보릿대의 잔해들을 털어내는 일이었다.


딸아이는 꽃을 좋아하시는 외할머니께 종종 꽃을 보내 드리곤 하는데, 재작년 89세 생신 선물로는 치매예방에 도움이 된다며 어른용 컬러링북

 <조해너 배스포드>의 그림책 시리즈 (꽃그림이 많다) 몇 권을 사드렸다.

책을 들춰보니 꽃과 식물 그림이 꽤나 복잡하고 자잘해서 색연필로 채워나가는 게 힘들 것 같았다.

더군다나 연세가 있어서 눈도 침침 하실 텐데… 바꿔드려야 하나? 고민하다 소일거리나 하시라고 그냥 보내드렸다.


그리고는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엄마 한테서 전화가 왔다.

“ 초록색 하고 연두색 색연필을 다 써서 몽당연필이 됐는데 어데서 사면되노?

벌써? 보내드린 지 두 달도 채 안됐는데… 나도 잘 몰랐는데 엄마는 유독 초록 계열을 좋아하셨던 모양이다.


종종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엄마는 그림책 색칠하는 재미에 푹 빠져 밥 드시는 시간도 아까울 만큼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를 정도라고 한다.

“엄마, 너무 오랜 시간 앉아 있음 오히려 건강에 해로워요! 쉬엄쉬엄 하세요.”

“너무 재미난다!  잘라꼬 (자려고) 누우면 천장에 그림이 둥둥 떠 다니네. 완성되면 어떤 느낌일지 기대도 되고 설레기도 한다.”

그 연세에 엄마는 ‘몰입의 경이’를 경험하신 듯했다.


밤낮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그림 그리기에 집중하셨던지 불과 몇 달 만에 책 한 권을 완성하셨다.

색연필을 잡은 엄마의 가운뎃손가락 끝마디에 베인 굳은살이 그동안의 시간과 노력을 말해주는 듯했다.

"아거(이거) 부엉이 긋나? (같나?)"

나뭇가지 위에 올라앉은 부엉이를 가리키며 스스로도 꽤나 만족스러운 듯 자랑을 하신다.



우리 모두 그림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꽃송이 하나하나, 이파리 하나하나 빈데 없이 여러 가지 색으로 꼼꼼하게 채워진 그림은 환상적인 엄마만의 꽃밭으로 가꾸어 놓았다. 시골집의 그때 그 꽃밭처럼.  

그림 그릴 때가 제일 행복하다는 말씀이 빈말이 아니었구나. 딸아이의 기특한 선물이 새삼 더 고맙게 여겨진다.



“한 페이지 완성하는데 얼마나 걸려요?”

“작은 꽃이 많은 건 하루 꼬박 걸릴 때도 있고… 대중이 없어. 재미나서 자꾸 하게 되네.”


나도 안다 그 마음. 마치 시간을 도둑맞기라도 한 것처럼 아침이 어느새 한낮이 되어 있고 금세 저녁나절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그림 한 페이지 색칠하는 데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특히 선 바깥으로 삐져 나가지 않도록 색칠하기 위해선 신경을 바짝 써야 한다는 것도 알겠기에 구순을 눈앞에 두고 있는 엄마가 더 대단해 보였다.


 


완성된 엄마의 그림을 액자 속에 넣어 놓고 보니 근사한 작품이 되었다.

여러 개를 만들어 자식들, 손주들, 지인들 한테 선물로 나눠 드렸더니 다들 좋아라 했다. 

그때 엄마의 표정은 진짜 화가 같았다.


엄마의 그림은 색채가 밝고 화사해서 보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무뚝뚝하기로 소문난 아버지도 엄마의 그림을 보고는 흐뭇한 미소를 자으시며 “ㅇㅇ아파트 사는 친구한테도 하나 주지 그래.” 하신다.

엄마는 다른 무엇보다 칭찬에 인색한 아버지께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더없이 좋으신 눈치다.


 ‘띠리라리~~ ‘ 오랜만에 큰오빠 한테서 전화가 오길래 직감적으로  ‘쎄-‘한 느낌이 들었다.

“너무 놀라지 말고 들어. 엄마가… 좀 아프시다… 병원에 모셨는데 여러 가지 검사를 해야 한다는구나.”


1 년 전, 뜨거운 햇볕이 쨍하고 내리쬐던 7월 어느 날 날벼락같은 소식을 전해 들었다.

엄마는 점심식사를 끝내고 여느 때처럼 침대 위 앉은뱅이책상에 앉아 그림을 그리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셨단다.

이미 구순을 몇 해 넘기신 아버지가 뒤늦게 발견하고 연락을 취해 병원으로 옮겼지만 골든타임이 지났고, 연세가 있어서 전망이 좋지 않다고…

엄마의 병명은 뇌졸중이란다. 하필 그토록 우려하셨던 뇌졸중 이라니.

평소 엄마는 입버릇처럼 ‘제발 자는 잠에 가야 할 텐데… 자식들 한테 짐이 되면 안 되는데…’ 하시며 어디서 전해 들은 속설을 믿고 닭고기도 안 드시고 늘 소식을 하며 나름 당신만의 방식대로 건강관리를 해오던 터였다.


그 전날 아침 일찍부터 엄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청력 상태가 좋지 않아 내가 전화할 때 말고는 엄마가 먼저 전화하는 일이 잘 없는데… 그래서 ‘무슨 일 있어요?’  라며  확인부터 하게 된다.

“무슨 일은… 그냥 막내 목소리 들을라고. 별일 없제? “

평상시 보다 더 밝고 힘 있는 목소리가 듣기 좋아서 “우리 엄마 오늘 좋은 일 있나베?” 했다. 그저 예사롭게.


두 분 다 연로하시지만 병원도 다니고, 가까이 있는 오빠 언니들이 건강상태를 늘 체크하고 있어서 막연한 걱정은 했었지만 이런 날이 금방 올 거라는 생각은 안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의 무의식은 어쩌면 다음날 일어날 일을 이미 감지했던 건 아니었을까?


 ‘그래도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일 하시다 그랬으니 …’  그나마 위안받고 싶어 애써 달래 보지만, 오히려 자책만 들었다.

그림책 때문에 너무 무리하신 건 아닐까… 별 생각이 다 든다.


며칠이 지나고 언니들과 엄마 방 청소라도 해야겠다 싶어 집에 가보니 옷장이며 서랍장 속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미리 예견이라도 한 듯이.


서랍 한구석에 숨어있던 엄마의 일기장이 삐뚤한 글씨체를 담고서 주인을 대신해 말을 건네고 있는 것 같았다.  

잠자는 동안 곱게 데려가 주십사 하는 주문들, 아버지의 멋없는 말투 때문에 속상했던 일, 이미 어른이 된 자식들 걱정이 띄엄띄엄 적혀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앉아 계셨던  작은 책상 위에는 그림책과 색연필들이 마구 흩어져 있고, 그리다 만 마지막 페이지의 꽃그림이 펼쳐져 있었다.


순간 울컥! 뜨거운 눈물이 마구 솟아올랐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엄마는 쓰러지기 직전까지도 꽃을 색칠하기 위해 색을 바꿔가며 안간힘을 쓰셨던 모양이다. 희미하게 의식은 있는데 손이 말을 안 들었던지 삐뚤삐뚤한 선들이 어지럽게 낙서처럼 칠해져 있었다.  아, 엄마….


사실, 자연의 섭리대로 라면 엄마의 연세에 이런 일은 충분히 예견된 일일 텐데… 그래도 자꾸 욕심이 생긴다. 내 엄마니까.


“엄마! 나 막내. 알아보겠어요?”

영상 속의 엄마는 코에 호스를 끼고 틀니마저 빼버려 우리 엄마가 아닌 것 같은 낯선 노인의 모습으로 병원 침대에 누워 눈만 꿈뻑꿈뻑하며 옆에 있는

간호사 선생님만 쳐다보신다.  마치 ‘저 사람이 누구예요?’ 묻고 있는 것 같다.

엄마의 기억 속엔 우리는 없는 모양이다. 매일 보는 간호사 선생님을 쳐다보며 가끔 어색한 미소도 보내시는 엄마의 모습에 철없이 서운함이 스친다.


“엄마! 사랑해요. 엄마가 우리 엄마라서 참 좋았어요!”

양손으로 커다란 하트를 그리며 평소엔 어색해서 하지 못했던 말을 용기 내어 외쳐도 엄마의 눈은 자꾸 딴 데 만 바라보고 계신다.


엄마의 기억은 어디쯤 머물러 있을까?  

비록 지금은 길을 잃고 헤매고 있지만 언젠가는 희미하게나마 등대를 발견하게 되는 날이 올 지도 모른다는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가져 보련다.


‘엄마. 아무도 모르는 엄마만의 세상에서라도 아프지 말고 부디 행복하세요.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만나 뵐 수 있겠지요. 우리를 못 알아보셔도 괜찮아요. 우리 엄마인 거 우리가 아니까요. 그때까지 기다려 주실 거죠?’


영어로 이름을 적어드린 우리 엄마의 컬러링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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