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분에 있는 식물 하나가 며칠 전부터 시들시들 영 힘이 없어 보인다.
흙을 만져 보니 물이 부족한 것 같지는 않은데 … 일단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두고 지켜보자 했다.
그래도 여전히 기운을 못 차려 혹시나 해서 물을 줘 봤지만 오히려 더 아프다고 신음하는 것 같아 안쓰럽다.
스킨답서스 , 누구네 집 할 것 없이 하나 정도는 집 안에 둘 만큼 흔한 식물이다.
물 조절만 잘해 주면 꾸준히 잘 자라는데, 대부분의 경우 물을 너무 많이 주어 탈이 난다고 한다.
너무 지나침도 부족함도 없는 ‘중용’의 도가 생활 곳곳에 적용되나 보다.
아무래도 물 빠짐이 안돼 혈관? 이 막혀 탈이 난 것 같아 급하게 흙을 다시 사다가 소생술을 시도했다.
꼭 살아나야 할 텐데… 마음이 쓰인다.
그래서 식물이건 반려 동물이건 살아 있는 생물을 더 이상 길들이지 않겠노라고 다짐했었는데…
책임감 때문이라면 그건 쉬운 일이라 문제도 아니지만 무엇과의 이별은 내 의지가 아니라서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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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길들인다는 말이 무슨 뜻이야?”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누군가를 길들이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있어야 해.”
“사람들은 이 진리를 잊어버렸어. 하지만 넌 이것을 잊으면 안 돼.
너는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어. 넌 네 장미꽃에 대해 책임이 있어….”
“너의 장미꽃을 그토록 소중한 존재로 만드는 건 그 꽃을 위해 네가 보낸 시간이야.”
<어린 왕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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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우리는 크고 작은 숱한 이별과 마주 하게 된다.
친구와의 이별, 연인과의 이별, 부모님과의 이별, 그리고 소중한 무엇과의 이별 들…
이 나이 먹도록 아직도 나는 이별이 어렵다.
누구든 연습한 이별 일지라도 이별에 익숙한 사람이 있을까 마는,
평균적으로 내 나이 정도 되면 연로하신 부모님을 떠나보냈거나 가까운 사람을 잃어 본 경험이 더러 있을 텐데
운이 좋게도 나는 양쪽 부모님 중에 아직 세 분이 옆에 계신다.
언젠가 한 번은 겪게 될 일이지만 이별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나면 예행연습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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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반려견 ‘꼬미’를 보내고,
꼬미와 함께 했던 세월만큼이나 힘든 시간을 보냈다.
식구대로 식음을 전폐하고 맥없이 처져 있었는데,
우리도 이런 반응을 보이게 될 줄 키워보기 전에는 상상조차 못 한 일이었다.
그 전엔 나도 그랬었다.
‘저런 정성을 부모한테는 쏟을까?’ 라며 강아지를 얼르고 안고 다니는 사람을 보며
뒤에서 빈정대던 일부 어르신들의 오지랖에 어느 정도 공감을 했던 터라.
오래전 어느 날,
아무 ‘개’ 였던 강아지 한 마리가 우리 집에 오게 되었고 ‘꼬미’라는 이름을 갖게 되면서 서로에게 길들여졌고,
그렇게 점차 우리 가족의 구성원이 되어갔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자기 할 나름이라고, 녀석은 예쁨 받을 짓만 골라 가며 했다.
심지어 화장실에도 노크를 하며 차례를 기다리는 센스도 있었다.
우리 집 서열 순위를 눈치챈 꼬미는 내가 엄마인 줄 어떻게 알고는 특히 나를 잘 따랐다.
그전부터 개 라면 무서워 멀리 피하던 내가 어느새 꼬미의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아들. 딸은 이미 재롱부릴 나이가 한참 지나 버렸고, 막내둥이 꼬미의 재롱은 우리 가족의 일상에 활력소가 돼 주었다.
그래서 더 녀석과의 이별은
아픈 기억으로 오래 남아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커다란 구멍을 남겨 놓았다.
세월이 약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정말로 시간은 우리 가족에게 약이 되어 주었고 이제는,
아픈 기억보다 서랍 속에 차곡차곡 쌓아 둔 꼬미와의 추억을 덜 춰보며 웃음 지을 수 있는 여유를 가져다주었다.
***
자전거 타고 산책을 하고 있는데 하얀색 승용차 한 대가 옆으로 다가와 가던 길을 멈추게 했다
“저- 혹시 라이딩하시다가 흰색 강아지 ‘백구’못 보셨나요?
코의 검은색 부분이 약간 까여 분홍색을 띠고, 귀 안쪽 털이 갈색이에요.”
여자 아이를 태운 젊은 엄마가 자동차 창문을 내리고 다급한 어조로 말을 걸어왔다.
그 순간 그 엄마의 눈빛이 어찌나 간절하고 애달파 보이던지 나도 모르게 내 눈에도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다.
“아이구- 어쩌면 좋아요? 얼마나 됐나요? 어쩌다가…”
여느 때처럼 산책을 하고 집에 있었는데 잠깐 사이 나갔었나 보다고,
주변을 둘러보고 큰소리로 찾아다녀도 안 보인다고,
백구랑 산책 다녔던 곳을 몇 바퀴씩 돌아보는데 찾을 수가 없다고,
근처였다면 집을 찾아 올 수도 있었을 텐데…
상황을 설명하던 젊은 엄마의 눈에 눈물이 그렁했다.
두 눈 크게 뜨고 찾아보겠다고, 꼭 돌아오기를 바란다는 말을 인사차 건네고,
그 길로 남편과 나는 백구가 갈 만하다 싶은 곳곳을 자전거로 갈 수 있는 한 헤집고 다녀 봤다.
가장 먼저 우리 ‘꼬미’ 얼굴이 떠올라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일부러 코스를 바꿔가며 돌아봤지만 애석하게도 ‘백구’ 같아 보이는 녀석을 만나지는 못했다.
맘 카페에 사연이 그대로 올려져 있는 걸 보면 아직 만나지 못했나 보다.
그 이별이 그들에겐 또 얼마나 큰 아픔으로 다가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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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누군가와 함께 보낸 시간과 비례한다.'
일상에서 누리는 작은 기쁨. 설렘. 즐거움 들을 차곡차곡 저축해 두자.
삶이 조금 고달프다고 느껴질 때 추억은 분명 비타민처럼 회복탄력성이 될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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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스킨답서스는 소생술을 끝내고 회복 중이다.
아침에 보니 이파리 몇 개 에서 ‘일액 현상’ 이 눈에 띄었다.
*일액 현상 - 뿌리압에 의해 위쪽으로 상승한 물방울이 잎맥의 끝에서 맺히는 현상으로 일부 키 작은 식물종에 나타난다.
‘아, 이제 살겠구나! 다행이다. 살아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