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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미 Dec 08. 2021

부모는 언제나 자식을 기다리는 해바라기

“ㅇㅇㅇ할머니 딸인데 영상통화하려구요.”

엄마가 계신 병원에 영상통화 신청을 했다.

이틀 전부터 상태가 많이 안 좋단다.  

호흡도 더 힘들어졌고, 앞니가 빠져 빨리 발견하지 못했다면 위험할 뻔했다고.

어쩔 수 없이 틀니를 빼야 했던 엄마는 토끼 이빨처럼 앞니 두 개만 겨우 남았었는데 그마저도 빠져버린 모양이다.

“지혈이 잘 안돼 거즈를 물고 계시는데 상태가 별로 좋지 않으니 놀라지 마세요.”

“그러면 다음에… 다시 할게요.”

어차피 소통도 안되는데 보는 내 마음이 불편해 될 수 있음 미루고 싶었다.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그래도 살아 계실 때 한 번이라도 더 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간호사님의 배려 섞인 제의에 연륜이 묻어있다.


“엄마~ 나 알아보겠어요?"

피가 배어 나온 거즈를 입에 물고, 코에는 줄을 연결해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워 보이는 엄마는 힘겹게 겨우 눈꺼풀을 들어 올려 멍하니 허공을 응시한다.

본능적으로 찡그리는 모습이 무척 고통스러워 보인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고개를 들어보려고 애를 쓰지만 겨우 시늉만으로도 벅찬 모양이다.

‘어쩌면 엄마는 다 알고 계신 건 아닐까. 자식들이 얼른 와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쿵! 무너지는 가슴을 억누르고 더 큰 소리로 엄마를 불러본다.


전화를 끊고도 엄마의 잔상이 사라지지 않는다. 

손이라도 잡아 봤으면… 그러면 엄마가 촉감으로라도 알아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는 밤마다 꿈속에 엄마가 보였다. 아주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또는 파파 할머니 모습으로…


왠지 마지막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식구들 의견이 늦기 전에 한 번 뵙고 오는 게 좋겠다고, 아님 두고두고 후회할 거라는 말에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그나마 얼마 전부터 비대면 면회가 가능하다고 해서 엄마한테로 달려갔다.


병원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내내 사시나무처럼 온몸이 마구 떨렸다.

마음의 준비는 했었지만 그 마음이 아직 작동이 덜 된 모양이다.

하필 그날따라 비가 내렸고, 겨울비 치고는 많이도 내려 추워서 더 떨렸는지, 아님 예상보다 더 안 좋아졌을 엄마를 보는 게 두려워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엄마를 만나는데 왜 마음의 준비 씩이나 필요해졌는지…


저 멀리서 침대 하나가 걸어오더니 봉쇄된 유리창 앞에 섰다. 가림막이 너무 두껍다. 목소리라도 들려주면 엄마가 반응을 할지도 모르는데…

털 빠진 아기새 마냥 작고 왜소한 모습의 엄마가 깃털처럼 누워있다. 일인용 병상 침대가 더 커 보인다.

움푹 들어간 눈두덩 아래 살짝 쌍꺼풀 진 엄마의 눈이 하얀 마스크 위에서 새삼 예쁘게 보인다. 

‘엄마 눈이 참 예뻤구나’ 엉뚱한 생각을 잠시 했다.

예상했던 것보다는 좋아 보였다. 확실히 영상에서 보다는 괜찮아 보여 그제야 안도했다.


초점 맞추는 것조차도 힘에 부치는지 눈을 떼었다가 이내 감고 또 겨우 떠 보기를 반복하며 오빠 둘을 눈에 넣느라 안간힘을 쓴다.

‘엄마, 이쪽으로도 좀 봐줘요~’ 손바닥으로 유리창을 두드리고 손을 흔들어도 반응이 없다.  

침대 방향에서 언니랑 내가 서 있는 쪽은 사각지대라 그랬는지, 아님 엄마는 딸들보다 아들이 더 담아두고 싶었던 건지…

전에 시어머니도 그랬다. 가시기 얼마 전 아들. 손주 얼굴을 번갈아 보며 두 눈에 꼭꼭 담아 두느라 애를 쓰시던 모습.


일 년이 넘도록 엄마를 만나지 못했는데 고작 10여분, 손 한 번 잡아 보지도 못한 채 또 점점 멀어지는 침대만 바라보고 돌아서야 했다.

그래도 숙제 한 가지를 해결한 기분이다. 영영 못 보고 엄마를 보내는 건 아닐까 싶어 얼마나 조바심을 태웠던지…

앞으로 몇 차례나 더, 오늘처럼 자식들이 급히 소환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라도 가까이서 엄마 얼굴을 또 보게 된다면 오히려 나은 건지도 모를 일이다.




부산에 내려간 김에 아버지도 뵈러 갔다.

얼마 전 화장실 문턱에 걸려 넘어진 뒤로 기력이 많이 떨어지셨단다.

당당하고 꼬장꼬장한 아버지는 온데간데없고 눈과 볼이 움푹 파인 채로 허깨비처럼 누워 계시는 모습을 보니 반가움보다는 측은함에 눈물이 왈칵 치솟는다.  

워낙 무뚝뚝하고 권위적이라 부녀지간에 그리 살가운 편도  아니었는데… 

여전히 이 나이에도 아버지가 어려운데…

70 평생을 떠받들어 주시던 엄마가 옆에 없어 더 그래 보였을까...


노인네를 곁에서 모시는 큰오빠도 그새 노인이 다 되었다.

예전엔 그래도 덩치가 좋았는데 근육이 다 빠져 왜소해진 오빠를 보니 노인네 시중드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조금은 알 것 같아 애잔한 마음이 든다.

연로하신 부모님이 계시는 어느 가정이든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이지만, 아니 누구나 언젠가는 노인이 되겠지만 노인의 거취 문제는 참 어려운 숙제다.

나름대로 각자의 상황이 다르고 여건이 허락되지 않아 선뜻 ‘제가 모실게요.’가 안 되는 게 현실이다 보니 

별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것 같다.

장남이라는 이유로 머리카락이 하예진 큰오빠가 선뜻 아버지를 모셨다. 그래서 결국 노인이 노인을 모시는 악순환이 반복되나 보다.


“아버지, 저희 그만 가 볼게요~.”

“저기 책 있을낀데 그거 봐라.”

책꽂이에 꽂혀 있는 커다란 옛날 옛적 앨범 얘기다.

전에도 그랬듯이 자식들을 조금이라도 더 붙들어 두고 싶은 마음에, 앨범을 들춰보며 좀 더 놀다가 가란 뜻일 것이다.

그걸 모르지 않음에도 못 들은 척 비행기 시간을 핑계 대며 서둘러 방을 나왔다. 그때의 마음은 참 얄궂었다.

어쩌면 아버지를 보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은 아닐까. 요양병원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누워계시는 엄마보다 아버지가 먼저 가시는 건 아닐까…

뒤숭숭한 마음에 다시 신발 벗고 들어가 아버지 손이라도 잡아드렸어야 했는데, 그랬어야 했는데 그 순간 내 두 발은 이미 밖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큰 돌덩이 하나가 가슴에 박힌 듯 무거웠다. 

도망치듯 서둘러 나온 자신한테 막 화가 난다.

조금만 더 있다가 올 걸. 앨범 한 권이라도 들춰보고 올 걸. 손이라도 한 번 잡아드리고 올 걸…

이래서 형만한 아우 없다는 말이 생겼나 보다. 가까이서 매일 지켜봐야 하는 오빠 마음은 오죽할까.


고해성사하는 마음으로 남편한테 털어놨다. 그 마음 알 것 같다고…

“엄마 마음이 많이 안 좋겠네~. 할아버지 할머니 그렇게 금방 가시진 않을 거야. 또 뵈러 가면 되지.”

나는 그래도 나를 위로하는 남편도, 아들. 딸도 있는데…




고등학교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때는 엄마를 영영 보내야 했던 우리 엄마의 마음이 어땠을지 하나도 헤아리지 못했다.

그저 엄마가 집에 없는 내 불편함이 더 커 엄마가 빨리 왔으면 했던 부끄러운 기억이 난다. 정말 철없게도 나는 그랬었다.


한 번 더 엄마를 볼 수 있을까. 기적처럼 엄마가 우릴 알아보시고 떠나실까. 가시기 전에 한 번쯤은 기억이 돌아온다던데…

이젠 그것이 우리 남매들에게 유일한 희망이 되었다.


책상 앞 액자 속에서  흔들 밴치에 앉은 엄마가 환하게 웃고 있다.

아버지도 구부정한 자세로 딸들 사이에 끼어 어색한 미소를 짓고 계신다. 불과 2년 전의 모습이다.

‘언제 또 올 수나 있겄나..’ 예견이라도 한 듯 우리 집 문을 나서며 하셨던 엄마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귓전에 맴도는 것 같다,


‘… 언제 또 올 수나 있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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