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낭만과 일 사이의 불편함
우리 아파트에는 나무가 많다.
아파트 뒤에 산이 있고 건물 사이사이에도 나무가 많아 공기도 좋다. 가격이 많이 오른다는 근처 신도시의 새 아파트를 마다하고 이 집을 산 이유도 나무가 많고 공기가 좋아서이다. 돈보다 좋은 환경을 선택하였다.
봄이면 벚꽃으로 출퇴근길을 화사하게 해 준다.
바람이라도 불어 꽃눈이 날리는 날은 음악이 없어도 벚꽃엔딩의 감성이 살아난다.
여름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나무의 잎이 아치가 되어 초록 지붕을 만든다. 그 아래 그늘진 길은 시원할 뿐 아니라 아늑함을 느끼게 하여 출퇴근길에 안정감을 준다.
“우리 아파트의 여름은 정말 좋아”를 매일 반복하며 산다.
가을은 말 그대로 가을이다.
색색의 단풍이 들고 감이나 모과, 구기자, 밤 등이 익어가는 모습을 보는 소소한 재미도 있다. 가끔은 센스 있는 경비아저씨가 낙엽으로 꾸며놓은 예술작품도 산책길에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떨어지는 낙엽을 치우느라 고생하시는 경비아저씨들을 뵐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긴 하다. 보는 사람에게는 낭만이지만 치워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힘들고 귀찮은 일인 것도 불편한 사실이다.
겨울은 눈으로 덮인 그 순간만 예쁘다.
아침 출근길, 신호대기 중에 나뭇잎이 바람에 날리며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이상했다. 바람이 부는 것도 아닌데 일정하게 한 방향으로만 떨어진다. 고개를 들어 나무를 쳐다보았다.
어머나!!!!
나무 위에서 아저씨가 나뭇잎을 쥐어짜서 훑어내고 있다.
그것도 어떤 기계차를 이용해 올려놓은 받침대 위에서 안전한 자세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옆의 나무는 이미 휩쓸고 간 뒤라 앙상하니 가지만 남아있다. 사람들이 많이 보는 아침에 기계까지 설치하고 저런 짓을 하다니 보통 간 큰 사람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어쩜 저럴 수가 있지 혼자서 씩씩거렸다.
아무리 낙엽 치우기가 힘들어도 초등학생들이 등교하는 시간인데, 아이들이 그 상황을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이 되었다. 자연보호나 환경교육은 말이 아닌 실천으로 보여주어야 하는데 나뭇잎을 쥐어뜯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다니 화도 났다.
신호대기 중인 잠깐의 시간이라 전후 사정을 알 수도 없고 얼른 사진을 찍었다.
직장에 도착하여 사진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나뭇잎을 쥐어뜯는 장면은 내가 직접 보았지만, 그 외의 상황은 보지 않았으니 사진에서 그 이유를 찾아보고 싶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기계차 옆에 주차콘까지 비치한 것으로 보아 관리실에서 한 일 같다.
아하!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하기 위해 낙엽을 정리했다고 한다.
그럼 그렇지 다행이다.
이제 마음이 놓인다.
우리 아파트 경비 아저씨들이 얼마나 부지런하고 좋으신 분들인데, 귀찮다고 그런 짓을 할 분들이 아닌데, 걱정도 내려놓았다.
트리플 A형인 나는 다른 걱정이 생겼다.
관리실에서 낙엽 털었다고 전화하는 이상한 아줌마, 오지라퍼라고 하지 않을까?
난 평소에 오지라퍼가 아니다.
마음을 써야 할 때, 다른 사람을 위해 챙겨야 할 때도, 내가 정한 그리고 보통의 사람들이 그럴만하다고 하는 그 수준에서만 할 뿐 그 선을 넘지 않는다. 내가 인정하지 않은 사람이 내 울타리에 들어오거나 선을 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나 또한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낙엽을 지키려다 오지라퍼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할 수 없다.
나는 정의감이 발동한 아침으로 생각하련다.
퇴근길이 기다려진다.
낙엽이 굴러다니는 소리에도 깔깔 웃던 그 시절은 이미 오래전이지만 낙엽을 보고 흐뭇하게 웃을 것이다.
겨울의 멋진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면 너희의 희생을 생각하겠다고,
잠시 너희를 지켜주려 애썼다고,
그래서 내가 팔자에 없는 오지라퍼가 되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