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했다 얘들아
융통성이 없는 나는 노는 것을 잘못한다. 어떤 계획이나 짜인 시간표대로 실행하는 것이 훨씬 편하고 안정적인 느낌이다. 그대로 하지 않으면 왠지 농땡이를 치는 것 같은~~~
한창 호기심이 많을 나이인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남들 다 가는 빵집이나 극장을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 선생님이 가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선생님들께서도 주어진 선으로만 다녀야 한다고 규칙을 정한다면 김 OO 혼자만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김 OO은 다른 친구들의 공공의 적이 되었고 왕재수였을 것이다. 그 김 OO이 바로 나다.
그런데 그건 나한테만 그랬어야 했다.
1986년 대구의 어느 초등학교 5학년 2반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수업 중 해야 할 것을 못 한 친구가 있으면 난 그 꼴을 보지 못해 그 아일 붙잡고 늘어졌다.
게다가 수업 시작 5분 전에 아이들을 자리에 앉게 하고 교과서와 준비물이 펼쳐져 있는지 확인하였다. 그러니 아이들은 화장실도 제대도 못 갔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남몰래 오줌 지린 아이도 있었을 것 같다.
가장 큰 잘못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알고 있는 것과 교사용 지도서에 나오는 모든 지식을 아이들에게 다 가르치려 욕심을 부린 것이다. 차시별 성취목표와 성취기준에 맞추어 가르치면 될 것을 난 교과서와 지도서가 닳도록 학교로 집으로 들고 다니며 공부해서 가르쳤다. 아이들이 이해하기에는 용량 및 수준이 넘치게 오버되었다.
게다가 우리 반은 시험만 치면 학년에서 꼴등이었다. 난 억울했다. 나는 내가 가르친 것은 아이들이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였다. 왜냐면 내가 그렇게 열심히 가르쳤는데 모를 리가 없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다른 선생님들은 어떻게 가르치는지 그때 배웠어야 하는데 나는 오만하게도 그 선생님들을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학기 말이나 학년 말이 되면 다른 반은 간식을 만들어 먹거나 장기자랑 시간을 가지며 아이들이 즐겁게 지내는 시간을 가졌다. 어떤 반은 그 당시 유행하던 만화영화 같은 것을 비디오테이프를 빌려서 보여주곤 했는데 난 그것도 용납이 되지 않아 주야장천 단원 복습이나 정리 시험을 치며 아이들을 괴롭혔다. 학교에서 놀다니~ 나로서는 이해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아직 어렸던 신규 교사 시절에 나는 나의 반 아이들을 나와 동일시하여 너무나 많은 잘못을 저질렀음을 한참을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열심히 잘한다고 한 짓이 아이들을 힘들게 했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을 뿐 아니라 심지어 난 참 잘하고 있다고 굳게 믿었다. 게다가 선배 선생님들의 여유 있는 노하우를 타성에 젖은 게으름으로 치부해버리는 어리석음도 저질렀다. 감히 그 마음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선배님들은 알아차리셨더라도 신규의 어리석은 열정을 귀엽게 봐주신 듯하다.
너무 늦었지만 지금은 40대 중반의 어른이 되어있을 그 친구들에게 한마디 해본다
“미안했다 얘들아, 다행히 나 말고 다른 훌륭한 선생님들이 계셨으니 훌륭히 잘 자랐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