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는 그 하늘거림을 보자마자 엄마의 허락이라도 떨어진 듯 언덕 아래로 순식간에 달려 나갔다. 같은 자세로 오래 누워있어 다리가 저렸지만 달리고 싶은 마음이 더 강했다.
순식간에 냇가로 도착해 냇물에 얼굴을 넣고 물을 들이켰다. 냇가에 있는 물을 모두 마셔버릴 기세였다. 여우는 냇물이 정말 시원하고 맛있다고 생각했다. 이 냇가는 전에도 엄마와 자주 왔었지만, 냇물이 맛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 없었다. 따뜻한 햇살에 살짝 더워졌기 때문인지, 달려오느라 땀이 나서 그런지 지금 마신 이 냇물은 정말 시원하고 맛있었다.
물을 마셨을 뿐인데 작은 여우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던 자신을 조금 잊을 수 있었다. 물만 마시고 다시 민들레 홀씨 한 테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물을 마시고 나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작은 여우는 자신이 무척 배가 고프고, 더 이상 허기를 참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운도 따랐다. 냇가 반대편에 물을 마시고 있는 들쥐가 보였다. 다음 순간 작은 여우의 입안에는 들쥐가 물려있었다.
작은 여우는 어깨가 축 처져 터벅터벅 언덕을 다시 올라갔다. 왠지 엄마를 배신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배가 부르고 나니 자연스럽게 기분이 좋아졌다. 기분이 좋아진 자신이 싫었다. 언덕 위에 엄마가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 보일 듯 말 듯 하늘거리는 작은 민들레 홀씨도 있었다.
“어이! 한참 동안 안 와서 걱정했다고.”
풀죽은 작은 여우는 민들레 홀씨 앞에 덥석 엎드렸다. 작은 여우는 민들레 홀씨도 겨우 들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바다가 뭔지 말해줘.”
민들레 홀씨는 작은 여우를 보며 다시 솜털을 하늘거리며 말했다.
“내가 아직 꽃에 매달려 있었을 때 말이야. 옆에 작은 나무가 있었거든. 그 나뭇가지에 새들이 많이 와서 쉬었다 갔어. 내가 웃으며 인사를 하면 새들은 나에게 자기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본 신기한 세상 얘기를 들려줬어. 그중에 가장 신기한 이야기가 바다였지.”
민들레 홀씨는 그때가 떠올랐는지 말을 잠깐 멈추고 새를 찾는지 하늘을 봐라 봤다.
“네가 마시고 온 냇물 있지? 그 물이 흘러 어디로 가는지 생각해 본 적 있니?”
작은 여우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눈으로 보이는 대로만 받아들였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서는 한 번도 궁금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없는데.”
작은 여우는 민들레 홀씨가 한 질문을 다시 생각했다. 한 번도 궁금해 본 적은 없었지만, 일단 듣고 나니 그 많은 물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너무 궁금했다.
”모든 물은 흘러 흘러 바다로 간데. 마치 아기들이 엄마 품을 찾아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이야. 세상 모든 물이 모여 어마어마하게 넓은 물이 되는데 그게 바다라는 거야. 눈이 아플 정도로 아주 파란색 이래.”
민들레 홀씨는 새에게서 들은 바다를 상상하는지 꿈을 꾸는듯한 표정이 되었다. 한참을 생각하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 바다 너머는 아무것도 없데. 물밖에 안 보인다는 거야. 그래서 바닷가에서는 해가 물 위에서 뜬다더군. 직접 보기 전까지는 믿기 힘든 이야기야. 꼭 한번 내 눈으로 보고 싶었지.”
작은 여우는 그 얘기를 듣자마자 바다라는 곳에 매료됐다. 작은 여우 자신도 파란 바다를 직접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냇물처럼 엄마 품을 찾아가고 싶었다. 작은 여우는 혼잣말처럼 말했다.
“나도 바다에 가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