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기만 했던 나무에 낙엽이 하나둘 생기더니 첫서리가 내렸다. 민들레가 먼저 일어나 자는 여우 몸에 내려앉은 서리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여우는 민들레가 추울까 봐 온몸으로 민들레를 감싸고 있었다.
“언제 일어난 거야?”
잠에서 깬 여우가 몸을 털며 말했다. 민들레는 슬픈 표정을 들킬까 봐 목소리를 높여 얘기했다.
“난 누구처럼 게으름뱅이가 아니라고.”
“내가 왜 게으름뱅이야?”
“더 추워지기 전에 보금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잖아.”
“아니야. 난 괜찮아. 네 옆에서 잘 수 있다면 추위 따위는 견딜 수 있어.”
“이 바보야! 겨울이 오면 난 다시 땅속에서 잠을 자야 해. 겨울을 견딜 수 없는 건 네가 아니라 나라고.”
민들레의 말에 여우의 심장이 뚝 떨어졌다. 민들레와 다시 헤어질 거라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말이 없는 여우 대신 민들레가 계속 말했다.
“내가 생각해 봤는데, 겨울에 내가 땅속에 있는 동안 바다로 여행을 갔다 오는 게 어때? 어차피 언젠가 가려고 했잖아.”
민들레의 말에도 여우는 대답이 없었다. 그의 얼굴에는 슬픔이 한가득 있었다. 그날 아침은 첫눈이 내릴 것같이 하늘이 잔뜩 흐렸다. 민들레의 이파리들은 다 시들어 버린 지 오래였다.
”오늘은 진짜 눈이 내릴 것 같아.”
민들레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아주 작은 목소리로 여우에게 속삭였다. 민들레는 마지막 기운을 쥐어짜서 얘기하고 있다는 걸 여우는 알았다.
“사실 말이야. 나 처음 여기 내려앉았을 때 너무 슬펐어. 바다까지 날아가고 싶었거든. 하지만 내가 여기 뿌리를 내린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 같아. 너를 만나려고 그랬나 봐. 난 여기서 너랑 같이 지내며 행복했어. 여우야, 해가 뜨는 방향으로 가면 돼. 그것만 기억해! 봄이 오면 다시 만나자. 그때는 꼭 바다 얘기를 들려줘야 해.”
민들레의 말을 가만 듣고만 있던 여우가 힘들게 입을 열었다.
“너한테 아직 하지 못한 말도 있는데.”
여우의 말에 민들레의 꽃대가 갸우뚱거린다.
"매일 얘기했는데도 못한 말이 있어? 얼른 해봐!"
여우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다시 고개를 저으며 결심한 듯 말했다.
"아니야, 우리 봄에 꼭 다시 만나. 그때 얘기해 줄게."
여우는 마지막으로 민들레를 한번 바라보고, 뒤 돌아 나무 아래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다시 뒤돌아섰다. 여우의 눈빛은 슬퍼 보였지만 그의 뒷모습은 단호해 보였다. 해가 뜨는 방향으로 달려가는 여우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