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여우 혼자서 보내는 첫날밤, 여우는 잠에 들지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민들레 홀씨가 들어간 자리 옆에 누우니 금세 잠이 쏟아졌다. 빨리 내일 아침이 되어 싹이 나왔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렇게 여우는여러 날을 민들레를 기다리며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 지냈다. 그렇게 혼자 보내는 밤이 다섯 번이 넘어가니 여우는 조금씩 지쳐갔다.밤이 오면 여우는이러다 영영 혼자 남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몸을 떨며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민들레 홀씨가 들어간 자리를 확인해 보고 실망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래도 다음 날 아침이면 반드시 만날 수 있으리라 희망을 품었다. 그런 날들이 일곱 번 지나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도 작아지고 있었다. 여덟 번째 날 아침, 오늘도 기대했다 실망만 할 것 같아 눈은 떠졌지만 여우는 자리에서 한참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 뭔가가 자기를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에 획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없는 사이 잠꾸러기 됐구나. 아까부터 지켜보고 있었다고.”
아주 작은 싹으로 변한 민들레를 본 작은 여우는 활짝 웃었다.
“너야말로 게으름뱅이잖아. 얼마나 기다렸는데 인제야 나오면 어떻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작은 여우는 힘을 내 다시 세상에 나와준 민들레가 한없이 고맙고 반가웠다.
따뜻했던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기 시작했을 때 민들레와 여우는 경쟁이라도 하듯 하루가 다르게 자랐다. 바람에 날아다니던 씨앗이었던 민들레는 벌써 꽃대도 여러 개 올라오고 잎도 무성하게 변했다. 작은 여우도 더는 작은 여우가 아니었다. 털 색깔은 어두워지고 두터워졌고, 몸집도 제법 커졌기에 이제 혼자 다녀도 아무도 여우를 얕잡아 보지 않았다.
덩치가 커진 여우는 매일 민들레가 있는 나무에서 조금씩 더 멀리 탐험을 즐기게 되었지만, 밤이 되면 어김없이 민들레에게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민들레에게 오늘 본 것들을 얘기해 줬다. 여우의 얘기를 듣고 있으면 민들레는 이 시간이 하루 중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바다까지 갈 준비가 된 것 같아. 바다를 보고 와서 내게 얘기해 줘.”
흐뭇한 표정으로 여우를 바라보며 민들레가 말했다.
“말도 안 돼! 아직 먼 길을 갈 준비가 안 됐어. 이제 더 멀리도 못 가. 더 멀리 가면 해가 지기 전에 다시 못 돌아온다고.”
민들레의 말에 여우가 정색하며 말했다.
”그럼, 거기서 자고 오면 되잖아.”
민들레는 뭐가 문제냐는 듯이 말했다.
”절대 안 돼! 난 혼자는 무섭단 말이야.”
여우는 입술을 씰룩이며 정말 무서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알았다. 알았어. 하지만 언젠가 준비되면 꼭 나 대신 바다에 갔다 와야 해!”
민들레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여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우는 그런 민들레를 마주 봤다. 한참 동안 둘은 서로를 바라봤다. 캄캄한 밤, 이 넓고 고요한 들판 한가운데 이 둘은 서로밖에 없었다. 여우는 민들레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민들레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막상 여우가 떠나면 얼마나 외로울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그 둘의 또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