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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Me May 12. 2021

뼈에 새긴 실수

킥보드 타다 도랑에 빠지다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편의점은 어른 걸음으로 20분쯤 걸어야 나온다. 날씨가 좋을 때면 온 가족이 마을길을 따라 자전거 킥보드를 타고 편의점까지 산책을 가곤 했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남편과 아들은 자전거를 난 킥보드를 타고 편의점으로 산책을 가고 있었다. 킥보드를 타고 내리막을 신나게 내려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킥보드 손잡이가 쑥 하고 밑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내리막이라 속도가 붙었던 나는 그대로 앞으로 꼬구라져 버렸고 바로 옆 도랑에 빠져 버렸다.


 그 도랑은 어른 허리까지 오는 깊은 농수로였는데 다행히 물이 바닥에 잔잔하게 흐르고 있어 완충제가 되었는지 신기하게도 오른발이 조금 시큰거리는 것 말고는 괜찮은 것 같았다. 갑자기 앞에 가던 사람이 쑥 없어져 놀란 남편이 다가와 나를 잡아 올려주었는데 이상하게 오른발이 점점 더 아파왔다. 이상태로는 절대 걸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남편은 얼른 집에 가서 차를 가져오겠다고 아들과 함께 여기서 잠깐 기다리라며 자전거를 타고 갔다.


 당시 7살이었던 아들은 아픈 엄마가 걱정이 되어 어깨를 주물러주며 나를 위로해줬다. 발이 너무 아프고, 머리가 어질어질했지만, 내가 아프다고 하면 아들이 너무 놀란 것 같아 '엄마 괜찮아! 아빠가 금방 올 거야.' 하고 얘기하는데 시야가 점점 좁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길바닥이고 뭐고 바닥에 누워버리고 싶었지만 내가 여기 쓰러지면 아들 혼자 남을걸 생각하니 걱정되어 기를 쓰고 도망가려는 정신을 잡고 있었다.


 다행히 남편이 금방 차를 가져와 집으로 올 수 있었는데, 마침 집에 계시던 친정 부모님께서 보시더니 '뼈가 부러지면 발가락이 안움직인 다더라. 발가락을 한번 움직여봐라' 하시는 거다. 다행히 발가락이 다 움직여졌다. '거봐라! 그냥 삐었나 보다. 뼈가 부러지면 말도 못 하게 아프다더라. 넌 말도 하는 걸 보니 많이 다친 게 아닌가 보다.' 하고 우리끼리 결론을 내렸다. 우선 누워서 쉬라며 진통제를 하나 먹고 누웠는데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시간이 12시 전이라 아직 병원을 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만일 지금 안 가고 내일 너무 아프면 응급실 가야 하잖아. 지금 병원 갔다 와야겠다 싶어 남편에게 가까운 정형외과 갔다 오자 했다. 가서 엑스레이를 찍고 나니 의사가 정말 나를 이상한 눈으로 나를 봤다. '이거 엄청 아플 텐데 환자분 너무 멀쩡하네요. 진짜 이상하네. 뼈가 3개나 부러졌어요. 큰 병원 가보세요!'


  비로소 큰 병원 응급실에서 의사를 만나는 순간 나는 쇼크로 기절했다. 통증이 아주 심한 경우 그런 일이 발생다고 한다. 아마도 어린 아들에게 아픈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었던 듯싶다. 입원해 검사하니 다리뼈가 4개 부러졌고,  철심을 6개 박는 수술을 받았다.


 킥보드 손잡이가 갑자기 내려간 이유는 다른 사람이 한번 타보고 싶다고 해서 손잡이 높이를 조정해준다고 안전핀을 열었었는데 갑자기 안 타겠다며 그냥 가버리는 바람에 다시 안전핀을 닫는 걸 잊어버린 것이다. 그 사실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다치고 나서야 그 사실이 생각났다. 처음에는 타보고 싶다고 말했던 그 사람이 얼마나 원망스러웠는지 모른다. 꼭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이 고생을 하는 것만 같은 분노의 감정 때문에 이성적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 시간이 지날수록 원망하는 마음은 수그러들었다. 원망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나니 ,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현실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결국, 내 사소한 실수로 인해 이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난 당시 앞으로 꼬꾸라지면서 머리가 바닥 쪽으로 굴렀다. 도랑에 빠지지 않았다면 머리가 시멘트 바닥에 부딪쳐 더 크게 다칠 수도 있었다. 회복할 수 없게 다칠 수도 있을 상황이었다. 하지만 난 다행히 뼈만 부러졌고, 뼈는 시간이 지나 다 붙어주었다. 2년이 지난 지금은 멀쩡하게 걸어 다닌다. 물론 아직도 날이 안 좋으면 욱신거리고 피곤한 날은 뻐끈 하지만, 그런 느낌이 들 때마다 난 내 실수를 다시 한번 뼈에 새기며 생각하게 된다. 

그 작은 실수가 내 인생을 얼마나 바꿔 놀 수 있었을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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