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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Me Jul 30. 2021

트램펄린을 버리다

집도 아이와 함께 나이 들어간다

 거실 한가운데를 차지했던 트램펄린을 드디어 처분했다. 아들이 트램펄린에 누워 뒹굴거리는 걸 좋아해서 버리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이는 몸무게가 늘어가고 중고 받은 트램펄린은 늙어가면서 이제 뛸 때마다 바닥이 발에 닿게 되었다. 한 번은 트램펄린에서 구르다 무릎이 땅에 닿아 엄청 아프다고 울고불고 난리였다. 아픈 게 문제가 아니고 이러다 다칠 것 같아 '이제 트램펄린은 버릴 때가 된 것 같아'라고 말했다. 말하면서도 당연히 싫다고는 대답을 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이는 너무 쉽게 '그래'라고 말했다.


 아이 마음이 변할까 무서워 얼른 재활용으로 분리수거해버렸다. 트램펄린을 치우니 우리 집 거실이 얼마나 넓어 보이던지 아주 후련한 마음이 들었는데, 한편으로는 섭섭한 마음이 드는 건 왜 일까? 항상 보기 싫다고만 생각했는데 버리고 나서 섭섭한 마음은 왜 든단 말인가! 아마도 트램펄린이 없어 섭섭한 게 아니라 아이가 커가고 있다는 느낌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이 집을 처음 지었을 때는 남편과 나 둘밖에 없었다. 딱히 아이를 키우는 것을 고려해서 설계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아이가 생길지 안 생길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아이를 키우기 위한 집으로 설계하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그 당시 읽었던 '주거 해부 도감'이란 책의 내용을 따랐다. 집을 설계할 때는 평생의 삶을 고려하라고 했다. 처음에는 둘이 살다 아이가 생기고, 아이들이 키우면서 살아갈 집 그리고 언젠가 커서 집을 떠나 다시 둘이 되었을 때를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처음 집을 설계하려고 할 때는 뭔가 특징이 있는 특이한 형태로 짓고 싶었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전연령을 거쳐 살 것을 고려해서 아주 평범한 설계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도 후회하지는 않는다.  어느 한 연령층에 치우쳐 집을 설계했더라면 분명 후회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 책의 내용처럼 아이 태어나 커가면서 집은 같이 변해갔던 것 같다. 아이가 없던 집의 인테리어는 심플했는데 아이가 커서 기어 다니니 손에 잡히는 위험한 물건이 사라지고, 다음엔 거실에 TV가 없어졌다. 아이가 더 커갈수록 장난감은 끝도 없이 늘어만 갔다. 아이 장난감 동화책 때문에 거대한 수납장이 거실을 장악했다. 하지만, 올해는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장난감이 대폭 줄었다. 그리고 이번에 드디어 거실 한복판을 장악했던 트램펄린이 사라졌다. 자리를 크게 자치한 아이 장난감은 이제 큰집 미끄럼틀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 언젠가 이 미끄럼틀도 처분되겠지? 지금은 알록달록하고 덩치가 너무 커서 얼른 없애버리고 싶지만, 마지막 남은 큰 장난감을 처분할 때는 아들이 이 미끄럼틀에서 보낸 즐거운 시간들이 떠올라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날 것만도 같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이 집을 떠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집을 떠난다고 생각하면 십여 년 정도밖에 시간이 남지 않았다. 생각만 해도 마음 한속이 텅 비고 눈물이 주룩주룩 흐를 것만 같다. 이 아이는 언제나 즐겁고 행복에너지를 남편과 나에게 전해주는 존재이다. 깔깔 웃는 웃음소리 때로는 서글픈 울음소리로 이 집을 눈부신 빛들로 가득 채워주고 있다. 아이가 떠 집이 얼마나 허전할지 상상할 수도 없다.


 하지만 때가 되면 쿨하게 보내주리라 다짐해 본다. 이 아이가 미지의 세상을 훨훨 날아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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