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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Me Apr 28. 2021

영혼의 친구 커피

 내가 처음 맛본 커피는 달달한 인스턴스 커피이다. 그때가 중학생이었는지, 고등학생이었는지 기억은 가물가물한데 시험기간에 엄마가 허락해줘서 마시기 시작했던 게 생각난다. 졸릴 때 달달한 인스턴스 한잔 타 먹는 게 얼마나 즐거운 휴식이었는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러다 대학에 가서 자연스럽게 원두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처음에는 쓰기만 하고 무슨 맛인지 몰랐는데, 자꾸 마시니까 그 맛에 점점 빠지게 되었다. 용돈의 많은 부분을 커피 사 마시는데 썼으니 말이다. 친구들과 예쁜 카페에서 테이블마다 놓인 공짜 전화 쓰는 재미가 있었다. 지금은 휴대폰이 있었지만 내가 대학 다닐 시기에는 호출기를 가지고 다녀서 공중전화에 길게 줄을 서던 시절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기 시작할 무렵 스타벅스, 커피빈 등의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등장했다. 그때는 돈을 벌고 있는 직장인이라 점심 먹고 카페에서 커피 한잔 사 먹는 것이 사는 낙이었다. 당시 회사에서 좋은 머신에 원두를 공짜로 제공하고 있었지만, 카페에서 사 마시는 거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커피를 사기 위해 카페 걸어가는 것도 좋았고, 카페 문을 열면 훅 풍겨오는 커피 냄새는 너무 황홀했다. 친절한 카페 직원분과 주문하면서 조금씩 나누는 담소와 내가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며 카페 앉아 있는 사람들 구경하는 것도 소소한 재미였다.


 오랜 세월 커피를 마시면서 다녔던 회사와 집 근처 단골 카페가 생기면, 내가 주문하지 않아도 가면 늘 마시던 걸로 만들어 주시던 친했던 직원분들 얼굴도 아직 생생하다. 그중엔 너무 친해져서 카페를 그만두고도 개인적으로 수년째 연락을 주고받는 분도 계신다. 그분은 중년의 여성분이셨는데, 당시 갓난아이를 데리고 남편과 한번씩 카페에 갔었는데, 아이를 키우는 것 남편과의 관계 등 인생의 선배로서 주옥같은 조언을 많이 해주셨다. 커피가 맺어준 귀한 인연인 것이다.


 나의 첫 번째 해외여행은 캐나다 밴쿠버였다. 당시 밴쿠버에서 어학연수 중인 대학 선배와 렌터카를 빌려 시애틀로 여행을 갔었다. 그 여행은 오로지 내 사랑 스타벅스의 1호점에 가기 위해서였다. 거기 가면 1호점 기념컵을 꼭 가오리라 다짐했었는데, 실제로 가보고 너무 못생겨 실망해서 사 오지 않았다. 스타벅스 1호점은 특별점처럼 운영되지 않고 여느 스타벅스와 똑같이 운영되는 일반 카페였다. 특이하다면 간판 그림이 옛날 모양 그대로인 점과 스타벅스 1호점에서만 판매하는 기념컵을 판매한다는 정도였다. 그 후로 한 두 번 더 갈 일이 있었는데, 가기 전에 이번에는 꼭 사 와야지 결심하고 도착해서 살려고 집었다 너무 못생기고 비싼 가격에 내려놓고 말았다.   


못생긴 스타벅스 1호점 기념컵 ㅋ


 사십 대 중반인 내가 인생에서 마셨던 커피 중 가장 맛있었던 커피를 꼽자면 뉴욕에 있는 작은 원두 판매점 구석 테이크아웃코너에서 판매했던 아이스라테이다. 뉴욕으로 여행을 간다니 직장 동료가 자기 누나가 뉴욕에서 살고 있다며 소개해줘 만났었다. 그분과 뉴욕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점에서 입에서 살살 녹는 정말 맛있는 식사를 하면서 본인이 좋아하는 뉴욕의 여러곳 소개해주었다. 그 중 가장 좋아하는 곳이라며 그 원두 판매점을 소개해줬다. 원두 판매점 구석에 즉석에서 볶은 콩으로 내린 커피를 판매하는 작은 테이크아웃 전용 매장이 있었는데, 거기서 마셔본 커피를 잊을 수가 없다. 내가 무슨 차이냐고 물었더니 원두가 다르기도 하고, 우유와 물 때문에도 커피맛이 달라진다고 했다. 내가 이 원두를 사서 한국에 가더라도 그 맛을 똑같이 낼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여행을 갔던 쯤에는 회사생활이 너무 힘들었었는데, 힘든 와중에 짬을 내서 갔던 여행이어서 그랬는지, 즐거운 사람들과 같이 한 여행이어서 그랬는지 그때 마셨던 그 라테 한잔은 내 인생 최고의 커피였던 것 같다.


 이렇게 커피를 사랑하는 나도 2년 동안 커피를 끊은 적이 있었다. 임신과 수유기간이었다. 처음 하루 세잔 마시는 커피를 끊었을 때는 금단증상이 나타났는데, 심한 두통이 왔다. 한 이틀 정도 그러더니 언제 아팠냐는 듯이 괜찮아졌다. 그 후로는 금단증상은 없어졌지만, 그냥 커피를 마시고 싶은 충동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당시 디카페인을 파는 카페가 많지 않았는데, 디카페인 판매하는 곳을 지나가게 되면 꼭 들어가서 한잔씩 사 먹게 되었다. 나중에 디카페인 믹스커피를 파는 것을 발견하곤 인터넷에서 구매해서 하루 한잔씩 열심히 마셨었더랬다. 힘든 임신과 수유기간 동안 나를 달래준 디카페인 커피이다. 조리원에서 옆방 친구에게 디카페인 믹스커피 한잔 타 주자 그 친구도 오랜만에 마셔본 믹스커피에 얼마나 반색했는지 모른다. 그 옆방 친구도 육아 동지가 되어 그 후로도 친하게 지내고 있다. 요즘은 멀리 살아 가끔 만나는데 그 친구도 내가 건네준 디카페인 믹스커피가 아직도 생각난다고 말하곤 한다.


 지금 이 순간도 동네 단골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카페 사장님은 단골인 나를 항상 반색하며 맞아주시고, 로스팅 룸이 딸린 이 카페커피 볶는 냄새는 너무나 달콤하다. 이 공간에 앉아 업무를 보거나 글을 쓰는 순간은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이 공간과 커피가 있어 손이 느린 나도 브런치에 글을 하나씩 올릴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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