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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수아이 Dec 20. 2020

다가오는 코로나

[41일차]


새벽에 일어나 출근 차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출근하지 말라는 연락이 온다. 어지간해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 일인데(휴일에 출근하라는 연락이 왔으면 왔지) 무슨일인가 싶다.


어쨌든 공짜로 주어진 휴일 아닌 휴일이니 감사히 받고, 간만에 휴식을 취하기로 한다.


얼마만에 맞이하는 한가로운 숙소에서의 휴식인가.


휴일이 되더라도 힘껏 돌아다니기 바빴지 이렇게 온전하게 쉰 일은 없었다. 그간 밀렸던 글도 좀 정리하고, 낮잠도 자고, 여유를 부려본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어째서 숙소대기를 하게 되었는지 소문이 돌아 자연스럽게 이유를 알게 된다. 아니나다를까, 현장의 작업을 이렇게 멈춰세울만한 이슈라면 역시 코로나밖에 없다.


가끔 사무실과 현장에서 마주치던 터키인 회사 직원인 볼칸이 코로나 확진이 떴다는 소식이다. 얼마 전에도 스쳐지나갔던 친구고, 매일 같이 어울리는 알바생들 중에는 볼칸과 현장에서 자주 접촉하던 친구도 둘이나 있다.


정말 코앞까지 성큼 다가온 코로나의 위협. 한국 같았으면 이미 나는 격리 대상자였을 텐데, 숙소에서 오늘 하루 대기하라는 말 외에는 딱히 이야기가 없다. 검사를 받는 사람들도 볼칸과 같은 현장에서 근무하는 반장님들과 직접 접촉한 알바생 둘뿐이다.


순간 한손에 커피를 들고 다니며 약간 거만한 태도로 여기저기 시시껄렁한 소재로 말을 걸며 현장을 누비고다니던 볼칸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 사교성(?) 있는 성격이 코로나 감염에 있어서는 오히려 악영향이 되었다. 정말로 그와 접촉한 적이 있는 사람들을 검사해야한다면, 거의 현장 사람들 전원을 대상으로 해야할 텐데.


어찌됐든 이후로 별 다른 소식 없이 시간은 흘러간다.


간만에 잔 낮잠은 오랫동안 피로가 쌓인 몸의 컨디션을 한번에 끌어올린다. '휴식'을 하는 여행을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내게 있어 여행이란 쉬는 것이 아니라 발품을 팔아 하나라도 더 새롭고 낯선 것을 보려는 모험이었다. 동남아에 가서 한곳에 머무르며 느긋하게 수영이나 하는 그런 휴양 여행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사실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수영을 한 시간 이상 하진 않을 거고, 남는 무료한 시간을 무얼로 버티지? 펜션을 잡고 하는 여행, 스키 여행, 그런 느긋한 여행이 나는 좀처럼 여행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의 휴식에도 초조한 기분만 든다. 이 시간에 밖에 나간다면 하나라도 더 보고 하나라도 더 먹을 수 있을 텐데. 만약 강제로 숙소에서 대기하라는 지시가 없었더라면 나는 이미 랍세키 마을의 어딘가에서 초르바(수프)와 빵을 먹고 있었겠지.


휴양이 아니라 모험을 바라고 있다는 사실은, 그래도 내가 아직은 에너지란 것을 가지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한 가지 불안하게 들려온 소문은 현장 봉쇄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 그러니까 모든 인부와 직원들의 외출을 통제하고, 오직 숙소와 공사현장만 왔다갔다하며 일하는 조치가 시행될 것이라는 말인데, 그 말을 듣고는 설마 했지만 한편으로는 불안감을 감출 수도 없었다.


제대로 된 여가 시간이 없어서, 하루하루 퇴근 후에 터키식 식사를 하고 터키식 카페에서 글이나 쓰려는 내 꿈이 박살난 것도 모자라, 간신히 마련한 휴일에 지친 몸을 이끌고 억지로라도 밖으로 나가 나들이를 하는 내 작은 낙조차 없애버릴 셈인가.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정말로 내가 공사현장과 숙소만 오가는 삶을 나머지 5개월동안 살아야 한다면, 그나마 남아 있던 정신이 바싹 타버릴지도 모른다.


코로나가 그 마지막 남은 희망마저 부수려하고 있다. 이미 식당에서 음식을 먹는 것도 금지라 테이크 아웃 박스에 받아서 으슥한 공원에서 찬바람 맞으면서 식은 밥을 먹는 것도 억울한 상황인데, 그마저도 못하게 생겼으니.


현재 터키의 코로나 일일 확진자는 33000명이다. 330명을 잘못 적은 것도 아니고, 누적 확진자를 적은 것도 아니다. 정말로, 여기서는 하루에 33000명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 이 정도면 그냥 코로나 바이러스에 이미 몇 번이나 노출되었다고 생각하는 게 편할 것 같다. 그저 내 몸의 면역력(별로 좋았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만 믿고 갈 뿐.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당장 내일의 출근부터). 그저 무슨 일이 벌어져도 오래 가지 않기를. 케밥과 나들이라는 내 작은 희망마저 빼앗기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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