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55일차]
드디어 소문으로만 듣던 '야간조'로 편성되었다.
지금의 작업은 주간조와 야간조가 편성되어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중이었다. 알바생인 Y와 새로 온 알바생인 G가 그동안 야간조로 편성되어 있었는데, 이제 교대할 순간이 온 것이다.
야간조의 생활은 간단하다. 주간조의 일정에서 앞에 붙은 AM은 PM으로 바꾸고, PM은 AM으로 바꾸면 그것이 야간조의 일정이 된다. 나는 이제 저녁 여섯시에 일어나 출근을 해서, 아침 여섯시에 퇴근을 하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 물론 하루아침에 적응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잠을 잔듯 만듯 두세시간을 비몽사몽하게 보낸 상태로 일어나 피곤에 쩔은 얼굴로 출근을 한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어두운 길을 걸으며, 퇴근하는 주간조와 인사를 나누며, 점점 깊어가는 밤과 밝아지는 달을 보며, 지금 내가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를 고민한다. 퇴근에 맞춰진 몸의 리듬으로 출근을 하려니 아직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나와 팀을 맞춰 야간으로 가게 된 알바생은 U다. 전에도 말했듯이 U와 Y와 J는 오랜 친구사이로 U의 친척의 소개로 함께 이곳에 지원해서 왔다. 버럭버럭하는 성격이 있다고 해서 삼인조 사이에서 앵그리버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U는 꼼꼼한 성격이라 맏형이지만 허당인 나를 여기저기서 잘 챙겨준다.
관리자들이 퇴근한 사무실에 잠깐 들렀더니 창고양이 형제가 이곳까지 진출해 있다. 누가 안아서 데리고 온걸까, 아니면 호기심에 자기들이 스스로 불쑥 들어온 걸까. 이제는 제법 커서 새끼고양이 티를 조금씩 벗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배는 보드랍고 머리는 콩알만한, 아기고양이다. 바쁜 출근길이라도 만져주지 않고는 도저히 지나가질 못하겠다.
야간조로 교대를 하는 첫날부터 마침 날씨가 좋지 않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비도 조금씩 섞여 있다. 요즘 들어 기온도 확실히 떨어진 것 같아 입김도 나온다. 탑 꼭대기로 올라갔더니 바람이 옷 사이를 뚫고 들어온다. 두꺼운 걸로 네 겹이나 입었는데 아무런 소용이 없다.
야간에도 탑정의 윈치수(윈치 기계를 다루는 우리의 직책이다)들은 대기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지만, 이곳에서는 대기를 하는 것 자체가 보통 일이 아니다. 오히려 가만히 쇳바닥에 앉아 있기만 하기 때문에 식어있는 몸에 시시각각 추위가 누적된다.
그러므로 야간의 대부분의 일은 이 추위에 어떻게 저항하는지의 싸움이 된다.
일단 조금이라도 바람이 덜 들어오는 자리를 찾을 것. 기계와 조종 캐비넷 사이를 돌아다니며 그나마 바람이 약한 곳을 찾아본다. 두 면이 막힌 곳보단 세 면이 막힌 곳이 좋지만 그마저도 틈이 곳곳에 있어서 그 사이로 바람이 들어온다. 그곳에 쭈그려 앉아서 몸이 식지 않게 팔다리를 일부러 떨어가며 혼자서 스스로 최면을 건다. 이곳은 따뜻하다. 이곳은 따뜻하다. 적어도 바람을 직격으로 맞는 저 몇 발자국 앞보단 이곳이 따뜻하다.
가혹한 환경 속에서 비바람을 피할 자신의 작은 둥지를 찾을 때의 그 쾌감은 꽤나 중독적이다. 물건들 사이에 살짝 숨어 봤자 불어오는 바람을 거의 막지 못하지만 어째서인지 적절한 안식처를 찾았다는 플라시보 효과 때문에, 정말로 몸이 비교적 따뜻해진 것을 느낀다.
나는 성냥팔이 소녀가 된 것처럼, 작은 성냥불 하나를 켜듯이 '이곳은 따뜻하다는 최면'으로 신기루 같은 온기를 만들어 낸다. 생각이 멈추면 그 상상속의 온기는 금방 꺼지고, 나는 또 다른 적당한 장소를 찾아 그곳에서 몸을 떨며 '그래도 이곳은 그나마 따뜻하다'라는 또 다른 성냥불을 긋는다.
두 번째 날은 그마저도 통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한 시간 밖에 자지 못해 컨디션이 바닥을 친 상태로 출근을 했는데,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세차게 내린다. 이 정도 비면 일을 못 하지 않을까, 라는 희망을 감히 품어보았지만, 그런 건 없다. 바람 때문에 일을 못하는 날은 종종 있었지만 비 때문에 일을 접은 날은 들어보지 못했다.
이날은 그야말로 비를 쫄딱 맞으면서 일했다. 대학 다니던 시절에 그냥 입고 다녔던 숏패딩은 이미 비를 먹을 대로 먹어서, 비틀어 짜면 몇 바가지나 물이 떨어질 것만 같다. 탑 꼭대기라 바람도 엄청나게 세서 빗방울이 거의 180도는 누워서 내리는 것 같다. 그 와중에 빗방울을 뺨에 맞으니 따갑기까지 하다. 그냥 모든 것을 포기하고, 모든 바람과 빗방울을 친절하게 맞아주기로 마음을 먹으니 차라리 한편으로는 편하다.
6시 퇴근 배도 어쩐 일인지 늦어서 6시 20분이 되어서야 느릿느릿 다가온다. 그 20분은 내가 이곳에서 경험해 본 가장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어쩐지 지금이라면 코로나에 걸릴 수도 있겠어. 젖어서 으슬으슬하고 무거운 몸으로 그런 생각도 해본다.
과연 무사히 2주간의 야간조 생활을 잘 견뎌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