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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수아이 Jan 08. 2021

태양과 피자와 화장실

[69~71일차]



불타는 듯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나는 다시 주간조로 복귀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오히려 안심이 되던 야간근무와는 달리, 주간 근무를 하면 내가 지금 어느 정도의 높이에 올라와 있는지 확실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꽤 오랜 시간 내집처럼 탑 꼭대기에서 살아서 그런지 초기에 느껴지던 고소공포증은 신기하게도 이제 거의 사라져버렸다.


누군가 난간 너머로 담배를 쥔 손만 내밀어도 가슴이 벌렁벌렁하던 내가 이제는 줄을 잡고 이동하며 얼굴을 세차게 때리는 바람을 맞으면서도 그저 시원~하네, 정도의 생각 외에는 들지 않는다. 호이스트(엘리베이터)가 오고 있나 난간 너머로 얼굴을 내밀고 아래를 쳐다볼 정도로 나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일을 하면서 기분이 좋을 때는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줄 때다.


처음에는 반장님들에게도 우리는 그저 알바하러온 낯선 젊은 애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리저리 일을 하고 함께 밥을 먹고 하다 보니, 야, 어이, 거기 윈치수, 라고 하던 호칭에서 종종 내 이름을 부를 때가 늘어나고 있다.


전공과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인데다가 공사판에, 아니 제대로 된 일 자체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보는 나는 그저 이곳의 바닥에 굴러다니는 철사의 제대로 된 이름 하나 모르는 초보 중의 초보일 뿐이다. 그러나 두 달 넘게 반장님들과 함께 다니며 이것저것 물어보고 원래 주어진 내 역할도 해내면서 슬슬 이곳에서 나의 자리가 조금씩 보이게 되는 것이 느껴진다. 그것이 증명되는 것이 바로 이름으로, 이름을 불릴 만큼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느낌이 들어 나름 뿌듯한 기분도 든다. 함께 일을 하다가 어떤 순간에 필요로하는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사람, 그것이 다름 아닌 '나'라는 사실. 대체할 수 없는 무언가가 되었기 때문에(..사실은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지만) 그럴 때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다.


주간조로 복귀하여 간만에 U와 Y와 내가 같은 시간에 일을 하게 되었다.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한국의 터키 대사관에서의 첫만남에서부터, 함께 퇴근해서 호텔 로비에서 농담을 주고 받을 정도로 가까워진 지금의 모습을 보며,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스스로도 놀란다.


간만에 모인 기념인지는 몰라도 U와 Y는(둘의 조종석은 나와 약간 다른 위치에 있다) 위에서 쓰러진 오줌통의 세례를 맞게되는 사건도 겪었다. 마른 하늘에 물이 뚝뚝 떨어져서 비가 오나, 하고 하늘을 보며 정면으로 한참 그것을 스스로 맞았다는 자신에게 자괴감이 든다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직후에 비가 몹시 쏟아져서 그것을 대충 씻어 내린 것 같긴 하지만 둘은 냄새 때문에(수많은 사람의 그것이 한데 모였겠지) 한참을 구역질을 했단다.


크리스마스 때문인지 연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또 회식이 있었다.


호텔에 격리되어 한참을 바깥 구경을 못한 우리들에게,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면 조촐한 피자 파티가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은 꽤나 흥분되는 뉴스였다.


그러는 와중에 또 나만 홀로 남아 연장근무를 하게 되었는데, 밤늦게 돌아와보니 다른 알바생 동생들이 따로 내 몫을 챙겨두었다며 주섬주섬 피자와 치킨과 햄버거를 꺼내보였다. 로비 한편에는 여전히 많이 남은 치킨과 피자가 잔뜩 쌓여있었지만 분명 정성껏 따로 챙겨 한참을 기다려준 이것들보다는 맛있진 않으리라.


...라고 생각하고 먹었는데 다 식어서 그런지 피자는 무척 맛이 없었다. 말을 들어보니 정시퇴근을 하고 왔을 때도 이미 식어있었단다. 햄버거도 퍽퍽하고 싱거워서 별로였는데, 유일하게 치킨은 식어도 맛있었다.


그래도 간만에 기름칠해서 그런지 다음날 배가 아파서 지옥같은 주탑 화장실을 사용하게 되었다는 후문.


비위가 약한 분은 눈을 흐리게 뜨고 보시오.


주탑의 화장실은 내가 태어나서 본 화장실 중에 가장 끔찍한 화장실이다.


배 위의 환경이나 다름 없는 바다 위 주탑의 특성상 화장실 역시 배에 있을 법한 지저분한 화장실인데, 이곳은 오랫동안 묵은 암모니아 결정에서 나오는 지독한 냄새가 가득 차있어서 양치질을 하러 들어갈 때마다 종종 헛구역질을 하게 된다.


300미터 상공의 높이에는 적응을 했지만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이곳의 화장실에는 적응이 되질 않는다.


특히나 고통스러운 체험은 바로 배가 아플 때다. 기계 구동 중에 신호가 오면 작업을 중지해야 하거나 대타를 구해야 하는데, 일개 윈치수로서 작업을 중지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고, 마침 일이 없어 대기중인 알바생 중 한명을 아픈 배를 부여잡고 가까스로 찾아서 교체를 한 뒤에, 올라오고 내려오는 데 한참이 걸리는 호이스트(엘리베이터)를 전화로 불러서 발을 동동거리며 기다렸다가 탑 하부로 내려가야 한다. 그리고 내려가면 기다리는 곳이 바로 이곳, 주탑 화장실이다.


잠시만 머물러도 코가 마비될 것 같은 곳에서 큰일을 본다는 것은... 여기까지만 하겠다. 여태껏 세 번 정도 경험이 있었는데 그때 생각을 할 때마다 언제나 소름이 돋는다. 그리고 터키의 재래식 화장실에서는 물을 바가지에 직접 받아서 부어서 정리(...)를 해야 한다.


글을 쓰다 보니 또 소름이 돋는다.


어쨌든 이곳에서는 절대로, 배가 아프면 안 된다.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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