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91일차]
Suskun : 조용한
땅에 발을 붙이고, 본격적으로 앵커리지 생활이 시작되었다.
탑에서의 근무와 눈에 띄게 다른 점이 두 가지 있다면 첫 번째, 이곳 앵커리지에서는 터키인들과 직접적으로 교류하게 될 일이 많다는 것.
그냥 출퇴근할 때 인사나 주고 받는(그나마도 한두명 정도) 탑에서는, 내가 구동하는 윈치 기계(줄을 감거나 푸는 기계)가 있는 공간과 작업자인 터키인들과 반장님들이 일하는 공간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밥을 먹는 공간도 나뉘어져 있어서, 덕분에 그렇게 좁은 공간에서 부대끼며 나름 오랜 시간을 보냈더라도 그들과 이야기 한 번 제대로 섞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앵커리지는 좀 달랐다. 앵커리지에서는 아침 조회때부터 터키인과 한국인들이 함께 섞여 있다. 마치 인력소를 방불케하는 그 현장에서, 당일에 해야할 일에 따라 즉석으로 인원이 곳곳에 배정된다. 운이 좋으면 쉬운 일에 배정이 되고, 운이 나쁘면 안전벨트를 메고 높은 곳에 올라가 힘든 작업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곳에서 나는 주로 드라이브 윈치라는 기계를 다룬다. 이 기계는 스케일이 좀 커서, 비교적 근처의 짧은 거리의 줄만 감고 풀던 탑정의 윈치 기계와는 달리 아시아와 유럽 사이드 전체를 오가는 로프의 줄을 구동한다. 덕분에 작업 시간이 길고, 로프 굵기도 굵어서 로프를 풀거나 감을 때 제대로 감길 수 있도록 감시하는 보조 인원들이 필요하게 된다.
이 보조 인원들에 뽑힌 터키인들이 넷 있는데, 제밀과 메멧과 쥬루프와 사멧이다. 드라이브 윈치를 다루는 나와 G 두 사람과, 이를 보조하기 위한 이 네 명의 터키인을 '드라이브 윈치 팀'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다른 터키인들이나 반장님들과는 별개로 우리만의 드라이브 윈치 업무를 고정적으로 배정받아서 하는데(다른 터키 인부들에 비해 비교적 쉽고 한가로운 임무라 그들은 이 업무를 좋아한다), 그 덕분에 우리들 여섯사람은 거의 항상 식사와 일을 붙어서 함께 하기 때문에 가까워지지 않을래야 그럴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서로를 이래저리 부르게 될 일이 많이 생긴다. 처음엔 데면데면하게 서로를 대하던(그 중에서 나만 최근에 다른 곳에서 갑자기 흘러들어온 인원이다) 차에, 어느날부터인가 그들이 나를 특정한 별명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수스쿤, 수스쿤 아비(형)라고 부르길래, 무슨 뜻인가 하고 물었더니 터키어를 조금 할 줄 아는 G(그는 터키 여자친구와 약혼한 사이이다)가 '조용한'이라는 뜻이란다. 그러니까 터키에 와서 처음으로 생긴 내 별명은 바로 '조용한 친구'. 여기까지 와서도 또 이런 이미지라니. 뭔가 씁쓸하면서도, 그들이 정겹게 붙여준 이 별명이 나름대로 소중하기도 하다.
그리고 탑과 다른 두 번째 특징. 윈치수는 윈치수로서만, 이라는 암묵적인 룰에 따라 평소에는 작업이 없더라도 그냥 윈치 기계 앞에서 대기만 하는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탑과는 달리, 이곳 앵커리지에서는 만약 윈치를 쓸 일이 없다면 나는 또 한 명의(숙련도 낮은) 터키 인부가 된다. 대기시간을 주지 않고 철저하게 부려먹히는 이곳에서 본 업무 외에 자잘한 노가다 업무가 많이 늘어났다. 볼트를 조이고, 물건을 배달하고, 줄에 매달려서 힘껏 당기고.
물론 본 업무가 아닌데다가 숙련도가 터키 인부들에 비해서도 월등하게 낮아서, 알바생인 G와 나를 일손으로 써서 편해지기보다는 그렇게 쓰기 위해 알려줘야하는 수고가 더 많이 들어가는 걸 아시는 반장님들은 본격적인 업무를 시키지는 않는다. 반장님에 따라서는 그냥 들어가 쉬라고만 말해주는 고마운 분들도 계신다. 하지만 K팀장님의 날카로운 눈은 피해갈 수 없으니. 조금 앉아서 쉬는 눈치를 보이면 '야~ 너희들 그러면 안돼~'하며 주어지는 새로운 노가다 퀘스트. '일이 끝났으면 찾아다니면서 일을 받아서 해야지~'. 그 덕에 가끔 숨을 돌리며 떠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탑을 바라보다가 깊은 그리움이 생긴다. 저기 있을 때가 좋았지...
때로는 이렇게 캣워크 플로어(가교)에도 올라갈 때가 있다.
앞으로 돌아가지 못할 탑정을 보며 그리운 한숨을 쉬었더니 또 이렇게 직접 걸어서 올라갈 기회도 만들어졌다. 그물 형태의 바닥이라 아래가 훤히 보여서 무서울 법도 하건만, 그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고 그저 힘들고 지친다. 그냥 올라가도 힘들 판에 무거운 쇠줄을 옮겨가며 올라가야 한다.
올라간 김에 잠깐 이별했던 탑정 식구와도 만나고. 밥을 먹기 위해 식사시간에 맞춰 서둘러 앵커리지로 내려왔더니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렇게 기러기 신세인 나는 또 이렇게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적응을 해간다. 일을 한지 3개월 째, 탑정에서 이제 막 내 이름을 불러주기 시작했는데. 새롭게 들어온 앵커리지에서 나는 다시 이름을 잃고 반장님들에게 그저 '어이, 드라이브 윈치'라고 불리기 시작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장난기 많은 터키 친구들이 '수스쿤 아비~'하고 불러줄 때면 속으로(속으로만) 웃으며 그래, 만약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이런 별명을 얻지도 못했겠지, 라고 위안삼는다. 피곤하긴 하지만 지나고 나면 좋은 추억이려니. 지나고 나면, 못 한 건 후회가 남겠지만, 새롭게 했던 것들은 적어도 후회가 남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출근을 하며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나는 아시아 앵커리지의 수스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