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에 남는 하나'
하고 싶은 것, 하기 싫은 것
그녀에겐 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사진을 찍는 것. 기차를 타고 멀리 여행을 떠나는 것(은 그저 짐작). 좋아하는 사람과 사랑을 하는 것. 하기 싫은 것들도 있다. 리차드를 따라 프랑스에 가는 것. 크리스마스 기간이라고 모자를 쓰고 일해야하는 것. 그러나 또 좋아하는 것들이 있다. 싫어하는 크리스마스 모자를 쓴 것을 캐롤이 좋다고 말해주는 것. 리차드와 헤어지기는 싫은 것(일단은). 그리고 캐롤.
하고 싶은 것은 하고,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으면 될 텐데,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언제나 그런 것들은 일목요연하게 따로 구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서 함께 다닌다. 좋아하는 것을 가지기 위해, 싫은 것을 하거나 좋아하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 그 딜레마 때문에 테레즈는 누군가에게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고, 무언가를 얻는다고 해서 결코 행복해지거나 충족되지도 않는다.
캐롤은 더욱 직접적인 딜레마와 갈등하고 있다. 그녀는 딸을 원한다. 딸의 삶이 복잡해지길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남편인 하지와 함께 살고 싶지는 않다. 이것은 법적인 문제를 동반한다. 그 와중에 자신의 삶은 '도덕적'으로 지탄 받는다. 또한 그녀는 애니와 함께 있는 것을 원하면서도, 테레즈와 사랑을 나누길 원한다. 그녀는 모든 것을 가진 세계(이것은 욕심이라기보다, 그저 그녀가 바라는 자신의 모습일 뿐이다)를 원하지만, 세상에 그런 것은 없다(이를 두고 무언가를 얻으려면 무언가를 잃어야 한다는 지엄한 현실의 격언을 알려줄 필요는 없다). 우아했던 그녀는 털이 뽑힌 공작새처럼 상처입고 바들바들 떨며 결국 만들어낸 타협안을 하지에게 제시한다. 딸의 양육권을 넘기고, 그녀는 딸을 종종 본다. 많은 것을 잃었지만, 그녀는 그래도 가지려는 것을 가진다. 딜레마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하지만 무언가 결정되었다. 단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발버둥. "우리가 추악한 사람들은 아니잖아, 하지?"
(남자들도 딜레마에 빠진 건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들은 약간 더 비겁하고 약간 더 걱정이 없는 것처럼 묘사된다. 남자들은 그런 딜레마에서 당연하게, 그녀들이 자신들이 정한 계획과 의견을 따를 것으로 가정하고 행동하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리라 상상하지 않으며,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그저 분노하며, 그리고 쿨(?)하게 새로운 사랑에 빠지는 등 대안을 찾는다. 새로운 사랑에 빠진 것은 테레즈나 캐롤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그녀들이 마지막에 자신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 하나를 얻기 위해서, 많은 것들이 (포기했다기보단)떨어져 나갔다. 마지막에 남은 것이 정말로 원하는 하나인지도 모호하다. 다른 것들도 정말로 원했던 것들이니까. 그러나 버릴 수 없는 것들을 잃어가며 얻어낸 그 하나가 찬란하게 빛나는 것은 분명한 진실이다. 영화 마지막에 나온 캐롤의 미소처럼.
퀴어? 멜로? 사랑?
내가 영화의 끝에 이르기까지 몰입할만 한 요소를 결국 찾지 못했던 것에 의아함이 생겼다. 영화의 분위기는 분명 영화적으로 '고급졌'고 나는 그런 분위기를 좋아한다. 발자국 소리를 죽이는 카펫이 깔린 호텔의 계단. 식욕을 돋우는 포크와 접시의 깨끗한 소리. 맛있게 태우는 담배와 영화 초반 테레즈가 양칫물을 뱉는 장면에서 느껴지던 그 겨울 아침의 냄새. 질감도 분명 매력적으로 살아났다. 그런데 왜 몰입할 수 없었을까. 퀴어에 공감하지 못해서? 일종의 멜로 영화이기 때문에? 큰 관심이 없긴 하지만, 퀴어에 특별히 반감이 있는 것도 아니다. '멜로'라는 장르는 항상 약점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겉도는 기분은 무엇 때문일까.
굳이 결론을 내리자니, 좀 어이없는 결론이었지만, 아마도 그저 캐롤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분명 누군가에게 매력적이고 카리스마와 관능, 여림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지닌 그 캐릭터가, 내 세계와 너무나 접점이 없었다. 그런 사람이 내 눈 앞에 있다면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녀는 내게 말을 걸기나 할까. 캐롤과 나는 영화 초반에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그냥 자연스럽게 서로를 지나갔고, 그래서 별 이야기는 생기지 않았다. 아마 그녀는 다른 누군가와 만났을 것이다. 그걸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