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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수아이 Mar 25. 2021

눈사람의 실존주의-3

[125일차]




'녹아서 사라지는 눈사람은 없다.'


i가 그런 말을 한 것은 어느 여름의 한가운데였다.


찌는 듯한 더위로 대학의 교정은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이 텅텅 비어 있었다. 에어컨 바람이 싫다고 열람실을 뛰쳐나와 놓고, i는 기어코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벤치에 앉았다. 아이스크림은 금방 녹았다. i의 손을 타고 흘러내리는 달콤한 액체를 보며, 아이스크림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건가했다.


'녹기 전에 어떻게든 부숴버리거든. 사람들이.'


완전히 녹아서 사라지는 눈사람은 사탕을 마지막까지 녹여 먹는 사람만큼이나 보기 힘들다고 i는 말했다. 그런 눈사람은 오히려 불행할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만들어 놓고는 끝까지 정말 한 사람도 찾지 않았다는 이야기니까.


어느 게 더 불행할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가 문득 왜 눈사람 이야기를 하고 있는거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i는 종종 그랬다. 혼자서 몇 계단이나 건너간 생각을 혼자서 하고 있다가, 불쑥 그걸 옆에 있는 사람에게 던졌다. ..뭔 말이야, 하고 있는 동안 또 혼자 생각에 빠진다. 바로 지금처럼.


손을 팔랑거리며 부채질하고 있으려니 그 움직임 때문에 또 땀이 났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도 한참 벤치에 버티고 앉아 있는 i를 보며, 그냥 혼자 일어설까 고민을 했다. i는 아이스크림 포장 껍질에 쓰인 글을 한창 읽고 있었다. 슬그머니 일어서려는 눈치를 주며 몸을 들썩였더니 i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i는 그만 열람실로 돌아가자, 라는 말 대신 이렇게 중얼거렸다.


'..사탕은 은근히 많을지도.'



i를 문득 생각한 건 i라는 알파벳이 눈사람을 닮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눈을 잃은 눈사람은 인사를 할 수 있었을까.


움직임을 인사로 생각하던 눈사람에게, 인사가 사라진 세계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는 눈사람이 명랑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마도 눈사람은 좌절하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인사의 의미를 좀 더 확대시켰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눈사람의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자신이 보아온 움직이는 것들의 환영이 돌아다니고 있었을 것이다. 겨우 하루 반나절 세상을 본 눈사람에겐, 눈으로 본 것과 머릿속에서 보이는 것들 중 어떤 것이 진짜 현실이었을까. 멀리서 떠가는 구름과,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내며 다가와 발치를 핥는 혀의 촉감 중 어떤 것이 진짜 인사였을까. 물론 눈사람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 모든 것들을 다 인사로 여겼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순간 갑자기 자신에게 날아든 그 강렬한 충격 또한 그저 '인사'라고 여기진 않았을지 모르겠다.


그것은 그에게 다가온 수많은 친절 중 단 한 번 있었던 어떤 악의였다. 아니, 어쩌면 악의라고 할 수 있는 건지도 모호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그건 '악한' 일이라고 할 수 없을 수도 있으니까. '순수함'이라고 할 수도 있고, '무심함'이라고 할 수도 있다. 어쨌든 그 단 한번의 의도로 인한 타격은 눈사람이 가지고 있었던 대부분의 것들을 빼앗아가 버렸다.


눈사람은 '유쾌함'을 잃었다.


실은 그것은 내게 보이는 '유쾌함'일 뿐이었다. 텅 빈 눈기둥이 여전히 '눈사람'인 것처럼, 어벙하면서 조금 슬픈 표정과 어긋나게 박힌 팔을 잃었지만, 내가 관찰하지 못하는 어느 채널에서 눈사람은 여전히 유쾌하게 무언가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눈사람의 성격이 조금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울퉁불퉁한 그의 굴곡이, 더 이상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무언가 골똘하게 생각하기 위한 편한 자세처럼 보였으므로.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도 알 것 같았다.


아마도 그것 또한 인사,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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