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세키->이스탄불
오후 일곱 시경, 나는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나를 태우고 온 밴의 운전기사는 차의 뒷문을 열고 내 커다란 캐리어를 꺼내 이스탄불의 보도블록 위에 놓았다. 오늘 점심때 랍세키의 호텔 앞에서 처음 만났던 그의 얼굴은 밝고 친절해 보였지만 아직도 여전히 낯설었다.
켄디네 이이 박.
차가 떠나기 전에 그는 작별 인사를 하며 손을 흔들었다.
켄디네 이이 박.
나 역시 그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실은 그가 아니라 다른 것에. 지나온 곳에 두고 온 많은 것들과 사람들에게. 시동을 끄지 않았던 밴은 곧 출발했고, 왔던 길을 향해 부드럽게 U턴을 했다. 수많은 자동차들 사이에서 오직 그 밴의 타이어 소리만이 들렸다. 시야에서 차가 사라지자, 나는 마지막 실이 끊어진 것을 느꼈다.
도로변에 새카만 캐리어와 함께 우두커니 선 나는 잠깐 그 자리에서 지나온 다섯 시간의 여행을 돌이켜보았다. 랍세키에서 이스탄불까지. 유난히 흰 뭉게구름이 낮은 산 위에 걸쳐 있었고, 밴의 운전기사는 구름이 무척 아름답다며 핸들 너머로 그것을 가리켰다. 낮게 자란 풀이 가득한 초원과 밭. 바다가 있는 마을을 지날 때 내리던 소나기.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던 와이퍼. 차 유리에 맺힌 물방울들. 언젠가 들어본 기억이 있지만 여전히 뜻을 알 수 없는 터키 가수의 노래. 구름을 따돌리자 다시 쏟아지던 햇빛.
그런 것들이 앨범 속 사진처럼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맑고 비현실적인 이미지들. 그것들이 겨우 다섯 시간의 여행 동안 내 머릿속을 충분히 닦아내었을까? 회사에서 제공해 준 밴을 타고 이스탄불로 오는 내내, 나는 일부러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바깥의 풍경을 눈으로 좇았다. 그동안 있었던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그저 발걸음 가벼운 한 사람의 여행자의 기분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지난 여섯 달 동안, 나는 터키 랍세키의 현수교 공사장에서 일했다. 그곳에서 겪었던 수많은 일들과 아직도 내 몸에 배어 있을 관성들을 이제는 잊어야 했다. 형광색 옷과 안전화, 초록색 헬멧을 쓰고 출근하던 나는 어제까지만 존재했다. 6개월 전 비행기에서 내려 터키 땅을 막 밟았던 어수룩했던 그 사람처럼, 지금의 나는 후드티를 입고 운동화를 신은 평범한 관광객 한 명일 뿐이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다시 두고 온 사람들의 얼굴들이 떠올랐다. 유쾌했던 동료들과 착하고 순박했던 터키 노동자 친구들. '했던'이라고? 이제 과거형을 써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 그 사람들은 여전히 랍세키의 공사 현장에 존재할 텐데. 겨우 다섯 시간 차에 들어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는 것 말고는 내게 일어난 변화라고는 아무것도 없는데. 내일 아침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랍세키의 작은 호텔에서 일어나 공사장으로 출근하면, 제밀 아저씨가 내 오른쪽 뒤에 서서 왼쪽 어깨를 쿡쿡 찌르고는 돌아보면 일부러 모른척할 것이고, 내가 쓰던 5톤 기계를 이젠 제법 능숙하게 다루게 된 키 큰 메멧이 썩은 앞니를 한껏 드러내 보이며 엄지를 척 올리고 싱긋 웃을 텐데.
6개월 만에 자유의 몸이 되어, 그토록 원하던 터키 여행을 시작하려는 이 순간, 나는 조금 우울하다. 그보단 쓸쓸하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주변에 항상 있었던 누군가의 목소리와 기계의 모터 소리가 모두 사라지고, 이제 내 주위를 채운 것은 평범하면서도 낯선 도시의 소리들이다. 떠나온 그곳에서 내가 나누었던 언어들은 일상적이고, 어쩌면 친근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언어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는 거의 쉬지 않고 옆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했었다. 오늘 점심 도시락으로 나온 고등어와 요즘 통 보이지 않는 초콜릿 잼 같은 것들에 대하여.
그러나 혼자 불쑥 떠나와 덩그러니 이스탄불에 도착한 나의 입에서는 이제 말이 끊겼다. 내 옆에는 함께 여행할 누군가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나는 딱히 혼잣말을 입 밖으로 소리 내어 하는 성격도 아니었다. 대신 만나게 된 것은 이전의 것들과는 전혀 다른 언어였다. 내 생각의 목소리. 내 머릿속에는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내가, 혼자 있는 나에게 하는 말. 물에 떨어뜨린 물감 한 방울처럼 머릿속에서 퍼져나가다가 희미하게 사라져버리는 내레이션. 어쩌면 '언어'라기보다 언어가 되기 이전의 어떤 기분의 덩어리 같은 것.
그것은 내가 정말로 혼자가 되었다는 증거였다.
한숨을 한번 후, 쉬고 캐리어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그런 기분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일단 예약했던 호텔을 찾아가야 했다. 숙소에 가서 뜨거운 물로 몸을 씻어내고 나면 새로운 기분이 들 것이다. 항상 그래 왔으니까. 이전의 장소에서 묻었던 먼지를 물과 함께 씻어버리고 나면, 내 몸은 새로운 곳의 공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곤 했다. 무언가가 한층 벗겨진 내 피부에 닿는 새로운 도시의 공기는 언제나 상쾌하고 좋았다. 그래야만 새로운 여행을 제대로 시작할 수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생각보다 문을 연 가게들이 많았다. 걱정했던 것은 코로나 봉쇄로 인한 상점 제한과 라마단(이슬람의 금식절) 기간이 겹쳐버린 지금의 터키 상황이다. 아침부터 해가 지기 전까지 음식을 먹지 않는(그리하여 음식점도 열지 않는) 라마단과, 해가 진 이후로 사람들의 외출을 통제하는 코로나 봉쇄가 겹친 지금은 분명 터키 여행을 하기에 유례없는 최악의 조건일 것이다.
그래도 이스탄불이라면, 이라는 기대를 하고 그냥 몸을 던지며 시작한 여행이었다. 세계에서 이름난 관광지 중의 하나인데, 설마 문을 연 음식점이 없을까. 다행히도 사람이 사는 곳이면 으레 그렇듯 이곳에도 예외가 있었다. 드문드문 문을 열어 놓은 햄버거 가게나 토스트집 같은 것들을 보면서 그래도 먹고 살 수는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안심한 나는 숙소를 향해 캐리어를 끌었다. 드르륵 드르륵, 울퉁불퉁한 이스탄불의 보도블록 위를 구르며 플라스틱 바퀴가 본격적으로 소리를 냈다. 누가 봐도 요란한 여행자의 소리였다.
구글 지도를 보고 숙소를 찾아 언덕을 오르고 있으려니, 풍경이 점점 터프해졌다. 인터넷으로 착한 가격과 깔끔한 인테리어 두 가지를 모두 가진 호텔을 검색하다 보니 관광지와는 동떨어진 묘한 위치의 호텔이 선정되었다. 발품을 조금 더 팔면 되지 않겠냐고 생각해서 그 호텔로 예약을 했었다. 그러나 거의 폐허 수준의 건물들로 이루어진 그 동네의 풍경과 직접 마주치자, 사진으로만 보았던 호텔의 모습에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정말 내가 예약한 숙소가 지금 눈에 보이는 이 건물들과 차이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곳의 건물들은 '낡았다'라는 표현을 써주기도 민망할 정도였다. 벽도 창문도 뜯겨 나가서 폐가가 된 것이 분명해 보이는 건물과 바로 붙은 옆 건물 베란다에는 오늘 널린 것 같은 누군가의 빨래가 널려 있었다. 유령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동네. 그런 느낌이 들었다. 문득 돌아본 으슥한 골목에는 닫혀버린 셔터들 사이로 건장해 보이는 한 남자가 손을 주머니에 넣고 가만히 서 있다가 이쪽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지도 몰랐지만, 나는 숙소를 향해 발걸음을 빨리했다. 이곳이 정말 내가 알던 이스탄불인가. 모스크와 케밥 굽는 냄새와 선글라스 낀 관광객들로 가득하던 그 도시가 맞을까. 영 엉뚱한 곳에 불시착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런 느낌이 즐겁기도 했다.이스탄불을 여행하면서 누구도 이곳을 지나가지는 않았을 거야, 라고 생각하자 특별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도 해 본 적 없는 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 이곳은 관광도시 이스탄불의 뒷면이었다.
나는 관광을 하러 온 것이 아니라 마치 숨어든 사람처럼, 이스탄불을 걷고 있었다.
6개월 동안 생활했던 짐이 들어있어서 내 커다란 캐리어는 크기만큼이나 무척 무거웠다. 오르막길을 오르며 사람을 끌어올리는 게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거기엔 지난겨울 공사장에서 지내면서 입었던 옷들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여행 기간 동안 잊고 싶어도 도무지 잊을 수가 없는 공사장의 기억들 같았다. 이렇게 무거운 것을 들고 여행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어.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가방을 말하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기억을 말하는 것이었을까.
다행히도 너무 지치지는 않을 정도의 타이밍에 내가 지낼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호텔의 외관은 사진으로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여전히 폐허 같은 주변의 세계 속에서 혼자만 비현실적이게 예뻤다. 그 기이한 모습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거짓말은 아닌 말'처럼, 내가 선택한 호텔은 사진으로 했던 약속은 지켰다. 그저 그런 공간에 그런 식으로 존재할 줄은 몰랐을 뿐.
열려있던 호텔 문으로 들어가자 한 평 정도의 공간에 카운터 탁자를 두고 앉아 있던 남자가 뭔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맞아주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정말로 올 줄은 몰랐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그는 컴퓨터를 다시 보면서 발음하기 어려운 이 이름이 내 이름이 맞는지 확인했다. 나는 그렇다고 했다. 그가 건네는 영어가 뭔가 낯설게 느껴졌다.
공사장에서는 영어를 쓰는 터키인을 만날 일이 거의 없었다. 그들은 영어보다는 차라리 한국어를 더 잘했다. 그들과 조금이라도 더 이야기해보기 위해서 나름대로 기초적인 터키어를 틈틈이 공부했었는데, 카운터에서 유창하게 영어로 말을 걸어오는 남자를 보면서 어쩐지 맥이 조금 빠졌다. 그래, 여기는 이스탄불이지.
여권을 받아들고 간단하게 체크인 과정을 끝낸 남자가 나를 방으로 안내했다. 그를 따라 계단을 올라가면서 나는 표정으로 드러나지 않는 환호성을 속으로 질렀다. 주황빛 전등과 벽돌, 매끈매끈한 나무로 된 계단. 마치 오래된 종탑을 올라가는 것 같은 좁은 계단실. 내가 사진을 보며 기대했던 그대로였다. 그저 하얗고 모던한 느낌의 정갈한 숙소와는 다른 숙소를 원했다. 추리소설에라도 나올 법한, 비밀이나 사연이 있어 보이는 인테리어. 남자는 내게 이 건물이 백 년도 더 된 건물이라고 말했다. 대신 최근에 리모델링을 해서 무척 깔끔할 거라고.
삐그덕 거리는 나무 계단을 밟아 올라가며, 나는 어떤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중세의 느낌이 나는 벽과 나선형으로 올라가는 좁은 계단, 낯선 도시에 막 발을 들인 여행자와 그를 이제부터 지낼 방으로 안내하는 안내자. 흔한 소설 도입부의 클리셰였다. 그러나 서점에서 무심코 들고 읽었을 때 우두커니 서서 읽게 만드는 그런 뻔하지만 흡입력 있는 소설처럼, 나는 내 여행의 도입부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도착한 방은 내 생각보다 훨씬 깔끔했다. 바닥이 진짜 나무라는 것과, 천장이 힘껏 뛰어도 닿을 수 없을 만큼 높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동굴 같은 느낌이 드는 서늘한 화장실도, 그 화장실에 뚫린 작은 창문으로 바깥바람이 들어오는 것도 좋았다. 한껏 뜨거운 물로 씻으면서 낯선 도시의 차가운 바깥바람을 맞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테니.
방을 안내한 남자는 자신이 소개한 방과 호텔이 작다는 것에 신경을 쓰는 눈치였지만 랍세키의 여인숙 같은 낡은 방에서 이제 막 탈출한 내게는 이곳이 궁전같이 느껴진다는 걸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는 방의 열쇠를 내게 건네주고 자신의 일을 하러 내려갔다. 호텔 일을 하기 위해 언제나 대기 중인 종업원의 느낌이 아니라, 그냥 자기 일을 하다가 가끔씩 누군가 부르면 호텔 일을 하러 카운터로 내려오는 느낌의 남자였다. 그것은 나태함이라기보다 여유로움처럼 보였는데,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드물게 손님이 오는 외진 호텔의 여유로움.
짐을 대충 내려놓다가 문득 화장대에 딸린 거울을 보았다. 나는 이곳이 터닝 포인트라는 것을 알았다. 여행을 하기 위한 아주 길었던 여행이, 이제 막 끝났다. 나는 발걸음을 돌려 다시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해야 한다. 나는 혼자 웃어보았다.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좀 더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어. 나는 혼자 생각했다.
바깥나들이를 시작하기 전 장롱 옆에 있는 창문을 열었다. 앞으로 걸어 다녀야 할 이스탄불의 풍경을 보기 위해서였다. 꽤나 무거운 나무로 된 창문이라서 두 손으로 힘껏 들어 올려야 했다. 창밖으로 보인 풍경은 어쩐지 낯익어 보였다. 분명 어디서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피아니스트>였던가, <에너미 앳 더 게이트>였던가. 전쟁 중 폭격이라도 맞은 것 같은 폐허가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이차 세계대전 뷰에 실망감이 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두근거렸다. 영화 속에라도 불쑥 들어온 것 같은 몰입감 때문이었다. 폐허가 된 도시 으슥한 곳에 자리 잡은 시계탑 다락같은 내 숙소. 그제야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이번 여행에서 얻고 싶었던 것이 관광이나 쾌적한 휴양이 아니라, '이야기'였다고.
나는 필사적으로 이야기를 찾고 있었구나.
내 눈앞에 보이는 이스탄불의 이면에는 이야기가 가득했다. 해골의 눈처럼 퀭하게 뚫려 있는 폐가의 창문 구멍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다. 먼지와 잔해를 밟으며 어두운 실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십수 년 전에 발간된 잡지 한 권쯤 발견할 수도 있겠지.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이 도시를 떠나려고 집을 비우던 청년이 마지막 이삿짐을 옮기다 실수로 떨어뜨리고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두고 가버린 잡지. 그러다 어느 날 문득 퇴근길에 밤하늘을 무심코 올려보다가, 자신이 어딘가에 두고 왔던 천문학에 대한 꿈을 가만히 돌이켜보게 되지는 않을까.
혹은 골목에서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사교성 좋은 까만 고양이도 한 마리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이스탄불에 머무는 동안 숙소로 돌아오며 녀석이 먹을 고양이밥을 하나씩 챙겨오게 될지도 모르지. 이스탄불을 떠나는 마지막 날에는 정이 들었던 그 녀석은 얼굴을 비추지 않을 것이다. 나는 고양이란 생물의 무심함에 혼자 실망하며 버스를 탈 것이고, 마지막으로 샀던 고양이밥은 버스 정류장에서 어슬렁거리다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는 덩치 큰 개에게 주고 말겠지. 그러면 나는 생각하게 될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택하는 것과,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택하는 것.
머릿속에서는 쓸데없는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혼자 오지 않았다면 떠오르지 않았을 생각들. 조금씩 고조되는 설레는 마음으로, 나는 숙소를 나섰다.
잠깐 호텔에 들렀다 나왔을 뿐인데도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닫고 셔터를 내린 상태였다. 나는 이 가게들이 그저 시간이 늦어 영업을 종료한 가게들이길 바랐다. 내일 아침이 되어도 여전히 닫혀있지 않기를. 모든 것이 닫혀버린 것 같은 이 모습이 이스탄불이 아니기를.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빵집이었다. 숙소에서 몇 발자국 되지 않는 근처에 빵집이 있다는 것은 좋은 정보였다. 코로나 봉쇄와 라마단 때문에 문을 연 음식점을 찾지 못하게 되었을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터키의 빵은 맛있기로 유명하니까, 그저 빵만 먹어도 괜찮은 식사가 된다. 다른 가게들이 문을 닫았어도 끈질기게 장사를 하는 곳 같았다. 나는 빵집의 위치를 머릿속에 새겨두었다. 내 숙소로 가는 골목길을 찾기 위한 이정표 역할로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 더 걷자 광장이 보였다. 불현듯 기시감이 찾아왔다. 나는 7년 전의 여행을 떠올렸다. 실은 내게 이스탄불은 구면이었다. 그때는 M과 함께였다. 모든 것이 신기했고, 새로운 곳에 가기 위해서 지도와 가이드북을 펼치고 열심히 볼거리를 찾아다녔다. 생전 처음 보던 이스탄불의 거리와 하늘에서 울려 퍼지던 기도 방송 소리. 돔 지붕과 첨탑을 보느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던 당시의 나는 관광객이라고 할 만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뭘까.
나는 내 눈에 보이는 것을 생각했다.
광장에는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다. 사람이 사라져 한산해진 이 도시에서 유독 이곳에만.
내가 지금 여행하고 있는 방식은 소설 속의 서술자와 닮아 있었다.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으면서, 보거나 들었던 이야기를, 누구에겐가로 전달하는 화자. 모든 사물과 이야기들은 말하고 있는 그 누군가를 투명하게 통과해서,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로 가닿는다. 습관적인 과거 시제를 동원해가며, 마치 정말로 그 사람이 '있었다'는 듯이. 왜 굳이 그 사람을 거쳐서 사건과 마주해야 하는지는 누구도 모르지만, 그러나 누구도 의심을 품지 않고 어느샌가 익숙해져 버린, '말하는 사람'.
그들은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의 긴 행렬이 시작되는 곳에는 작은 천막이 있었고, 거기서 사람들에게 종이봉투에 담긴 무언가를 나눠주고 있었다. 턱을 살짝 들고 봉투를 내려다보는 것으로 그것이 무엇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빵과 마실 것. 코로나 봉쇄와 라마단으로 인해 낮 동안 식사를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을 위하여 식사를 배급해 주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 능청스럽게 줄을 서면 마찬가지로 그 식사 봉투를 받을 수 있을 것도 같았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봉투를 받을 때쯤이면 이미 해가 완전히 져버리고 구경할 게 아무것도 없어질 것 같았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나는 발걸음이 닿는 곳으로 무작정 걸었다. 지도는 켜지도 않은 채로.
광장을 지나 도착한 상점가 역시 한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많던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이스탄불이라고 하면 365일 낮밤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끊임없이 북적거리는 세계에서 손 꼽히는 관광도시일 텐데, 이곳 역시 코로나의 영향을 피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이스탄불은 고요했다. 멈추지 않고 돌아가던 도시의 스위치를 누군가 내려버린 것처럼. 코로나는 세계의 풍경을 직접적으로 바꿔버렸다. 빈 거리는 공허해 보였지만, 어떻게 보면 길거리가 워낙 한적해서 돌아다니기에 오히려 걱정이 없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 나는 가끔씩 마스크를 살짝 내려 도시의 냄새를 맡았다. 이스탄불은 내게 '향'으로 기억되던 도시였다. 그러나 마스크를 마치 피부처럼 달고 다녀야 하는 지금의 여행에서, 냄새가 사라진 이스탄불은 무채색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공간과 시간은 때때로 냄새로 추억된다.
이번 여행에는 그런 것이 없을 거라 생각하니 몹시 아쉬웠다. 종종 보이는 불 켜진 카페나 디저트 가게의 유리 너머에는 마스크를 낀 종업원만 멀뚱멀뚱 서서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런 가게들을 스쳐 지나가며 하나씩 머릿속에 기억했다. 문을 연 식당을 결국 찾지 못하게 되면 먹게 될 간식거리들 사이에 우선순위를 매기면서.
어느덧 주변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슬슬 발걸음을 돌려서 돌아가야 하나 생각하던 순간 멀리서 빛이 보였다. 하나의 빛이 아니라 여러 개의 화려한 빛이었다. 규칙적인 간격으로 빛나는 가로등과 각진 건물의 불빛이 아니라, 불규칙한 은하처럼 아무렇게나 모여 있는 '생기 있는' 불빛들이었다. 나는 그곳에 먹을 것이 있다는 걸 직감했다.
도착한 곳은 밤에도 환하게 불을 켜놓은 먹자골목이었다. 사람들은 야외 테이블과 실내 테이블을 가리지 않고 앉아서 먹고 마시고 있었다. 그것은 뭐랄까, 좀 거짓말 같았다. 코로나도 라마단 금식(오늘의 금식 시간은 끝났지만)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부산스러우면서 여유로운 식사 시간. 지니고 있는 모든 전구를 빠짐없이 켜기라도 한 듯 이곳의 식당들은 서로서로 눈부시게 빛났다. 덕분에 거리는 실내처럼 밝았다. 나는 이곳에 도착하기 전까지 잠든 이스탄불의 머릿속을 걸어왔다. 닫힌 셔터들과 드문드문 그림자처럼 스쳐 지나가던 어두운 옷의 사람들. 그런 풍경들을 지나 마침내 도달한 곳은 이스탄불이 꾸는 꿈이었다. 빛과 음식의 연기가 닿는 곳까지만, 유쾌하지만 경계선이 분명한 꿈.
배가 고팠던 나는 물론 홀리듯이 그곳으로 끌려갔다. 유리 너머로 보이는 것은 세로가 아니라 가로로 누워서 돌아가며 구워지고 있는 고깃덩어리였다. 언젠가 공사장에서 일을 하면서 유튜브에서 봤던 이스탄불의 유명하다는 현지 맛집에서도 그런 식으로 케밥을 구워 팔았다. 고깃덩어리의 겉면에 꼬챙이부터 끼워 넣은 다음 잘 드는 칼로 슥슥 베어 꼬치를 만드는 장면을 보며 얼마나 군침을 삼켰는지. 언젠가 일이 끝나고 이스탄불에 가면 꼭 먹어보겠다고 다짐했던 그 집. 뭔가 묘한 기분이 들어 인터넷으로 찾아봤더니, 그 집이 바로 여기였다.
체급을 맞추기 위해 식단을 조절해 감량하고, 끝없는 연습과 스파링을 통해 준비한 다음 마침내 링에 올라 본격적으로 파이팅을 시작하기 전에 내질러본 잽에 상대가 K.O로 뻗어버리게 된다면 이런 기분일까. 내일 제대로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요기나 하러 슬쩍 나와 동네 구경을 하다가, 별안간 이루게 되어버린 내 버킷리스트.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
마음의 준비가 됐건 아니건, 나는 가게로 얼른 들어갔다. 가게는 무척이나 좁고 붐볐다. 손님이 오는지 마는지 체크할 겨를도 없이 바빠 보이는 종업원은 그저 손가락으로 2층을 가리켰다. 2층의 좁은 1인용 식탁에 어깨를 움츠리고 앉아서 나는 케밥을 1인분 주문했다(터키에서 케밥이라고 하면 그냥 '구운 고기' 정도의 의미이다. 이곳처럼 가로로 굽는 방식으로 하면 자으 케밥이라고 하는 것 같다).
몸집이 매우 거대한 이들 셋이 너도밤나무 장작으로 커다란 모닥불을 피우고 둘러앉아서 긴 나무꼬챙이에 양고기를 구우며 손가락에 묻은 고기 기름을 핥아먹고 있었다.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겼다. 그들은 좋은 술이 담긴 술통을 옆에 두고 큰 잔으로 마시고 있었다.
………
"어제도 양고기, 오늘도 양고기, 제기랄, 내일도 또 양고기겠지."
-J.R.R. 톨킨, <호빗>-
나는 양고기를 먹을 때마다 톨킨의 <호빗>에 나오는 유명하고 사랑스러운 한 장면을 떠올리곤 했다. 그것은 내게 있어 양고기를 가장 먹음직스럽게 묘사한 텍스트였다. 사람 고기를 못 먹고 양고기만 먹는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하는 트롤들의 대사였지만, 나는 반대로 생각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양고기라면, 분명 살찌고 행복하겠지.
단일 메뉴로 승부하는 맛집답게, 이곳의 양고기 케밥은 맛있었다. 바삭한 겉면과 육즙으로 촉촉한 속, 기분 좋게 진한 양고기의 육향과 적절하게 붙은 기름. 그것을 또띠아 같은 이집 특유의 종이처럼 얇은 라바쉬 빵에 양파와 함게 싸서 먹었다. 씹기 딱 좋게 결 반대로 잘린 양고기와, 숯불에 그슬린 양고기 기름을 머금은 새하얀 라바쉬의 그 맛. 딱히 덧붙일 말 없이 완벽했다.
배불리 먹고 돌아가는 길은 여전히 어두운 이스탄불의 그 거리였다. 왁자지껄한 먹자골목의 생기는 모퉁이를 하나 도는 순간 어둠과 고요 속에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마치 꿈을 꿨던 것처럼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입술에 남아 반들거리는 양고기 기름만 빼면.
조금 더 구경해보기 위해 왔던 길과는 다른 길로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어떤 탁 트인 교차로에 도착한 순간, 나는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섰다.
기시감일까? 아니었다. 기시감이 아니라, 분명하고 선명한 기억. 완전히 잊고 있었던, 그러나 내 뇌가 머리의 구석진 곳 어딘가에 고이 간직하고 있었던 기억이 갑자기 되살아났다. 나는 이곳을 알고 있었다. 확신을 가지고 돌아본 곳에는 내 생각대로 로쿰(터키식 젤리)을 팔던 그 디저트 가게가 보였다.
나는 7년 전 M과 왔었던 터키 여행을 기억했다. 보름간 터키만 돌았던 그 여행 경험에도 불구하고, 다시 찾아온 이스탄불의 모습은 낯설기만 했다. 정말 내가 이스탄불을 여행했던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공교롭게도 사진을 저장했던 노트북이 고장 나버려서, 그때 찍었던 사진은 한 장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 어둡고 조용한 밤의 교차로에 들어서자마자 내 머릿속에 어떤 장면이 사진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나는 M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가기 직전 마지막 일정으로 디저트 가게로 유명한 이곳에 와서 가족에게 나눠줄 기념품으로 로쿰을 구입하고 있었다. 남은 예산과 짐의 무게, 가방의 빈자리 등을 열심히 계산해가면서. 여행의 설렘은 거의 다 사라지고, 그저 한국에 있는 집의 침대 위에 벌렁 누웠으면 하는 나른한 소망만을 가진 채. 그것은 그 여행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그로부터 7년이 흐른 뒤 나는 똑같은 장소에서 이제 막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나는 주변의 풍경이 나를 중심으로 뱅글뱅글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먼 시간의 고리를 넘어 나는 다시 이곳으로 떨어졌다. 그때의 그 마지막 순간부터 다시 시작된 여행. 그러나 이번에는 혼자서다.
이것은 그 여행의 외전일까. 나는 묘한 아이러니를 느꼈다. '만약에 그때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나 홀로 터키에 남아 여행을 좀 더 했었더라면'과 같은 선택지가 실현된 것은 아닐까. 나는 내 상상에 몰입했다. 그것은 꽤나 그럴싸했다. 그때의 나에 비하면 지금의 나는 몹시 자유로웠다. 기념품이 든 봉투 하나 없이, 양쪽 주머니에 지갑과 핸드폰 하나만 달랑 넣은 채로 그저 마음이 가는 길로 쭉쭉 걸어나가면 그만이었다. 잠시 숨을 쉬는 걸 잊었던 나는 정차해있던 택시가 슬그머니 움직이는 것을 보고 정신이 들어 다시 걸음을 옮겼다. 예전과는 달리, 쭉쭉.
갈 때와는 다르게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금방이었다. 저녁 식사를 위한 잠깐의 나들이였을 뿐인데도 뭔가 아주 먼 곳까지 여행을 하다 온 느낌이었다. 나는 내 방의 문을 열다가 내가 받은 열쇠가 얼마나 '열쇠' 같이 생겼는지를 깨닫고는 즐거워했다. 내 방의 열쇠는 내가 처음 '열쇠'라는 단어를 배웠을 때 머릿속에 떠올렸던 그 열쇠와 정말 똑같이 생겼다. 기다란 쇠기둥 끝에 유심칩 크기 정도 되는 쇠판이 덩그러니 붙어 있는, 부루마블의 황금열쇠와 같은 바로 그 모양. 처음에는 세상의 모든 열쇠는 그렇게 생겼으리라 생각했었고, 시간이 지난 뒤 세상에는 그런 열쇠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살아오다가, 이렇게 상상 속의 그 열쇠가 실은 세상의 어디엔가 존재했다는 사실과 마주하게 되다니. 내가 생각했던 그 방식대로 열쇠를 꽂아 돌리니 철그럭, 방문이 열렸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내 방이 마음에 들었다.
뜨거운 물에 몸을 씻고 개운해진 마음으로 침대에 누웠다. 여전히, 내 마음은 불과 어제까지 있었던 랍세키의 공사장과, 7년 전 M과 했던 터키 여행의 시간대에 머물러 있었다. 불을 끄고 침대에 엎드려서, 핸드폰으로 공사장 터키 노동자 친구들이 내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장면이 찍힌 동영상을 몇 번이나 재생해보았다. 바이-바이. 수스쿤. 바이-바이. 아련한 그 목소리가 비행구름처럼 내 머릿속에 길게 남았다. 함께 현재의 시간을 공유하며 이야기할 대상이 없으니, 내 마음은 끝없이 과거의 문을 두드렸다. 자고 일어나면 내일은 여행에 집중할 수 있겠지. 나는 애써 잠을 청했다. 간헐적으로 나무바닥이 삐그덕거리며 누군가가 걸어다니는 소리가 났다. 옆에서, 혹은 위에서. 나는 곧 잠에 빠져들었다.
여행의 첫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