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방, 조용한 식사'
일본여행을 하던 때의 일이었다. 여행객이 많은 관광지였고 먹을 것과 기념품들을 파는 가게들이 줄지어 붙어 있는 시끌벅적한 거리였다. 나는 가족과 함께 어느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가기 전에 혼자 식탁에서 일어나 화장실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발견했다.
차마 계단을 올라가지는 못하고 두 칸 정도 위에 발을 하나 걸친 채로, 나는 짙은 나무색의 계단이 인도하는 불이 꺼진 2층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한낮의 햇빛이 가까스로 닿는 그곳은 생기가 넘치는 1층과는 전혀 다른 공간이었다. 아무런 무늬도 없는 오래된 하얀 벽지와 짙은 색 나무기둥이 보였고, 보이지 않는 곳으로 뻗은 복도에는 한낮에도 어둠과 적막으로 가득했다. 그 묘한 차분함이, 한낮의 어둠이, 나는 진짜라고 생각했다. 밖에서는 볼 수 없는 진짜 일본. 바깥을 걸어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끄러운 풍경도 이곳까지는 닿지 않고, 맨들맨들한 저 나무 복도를 걸으면 틀림없이, 설령 맨발일지라도 내 발자국 소리만 선명하게 들릴 것이다.
주변엔 아무도 없었고, 나는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그 계단을 올라 2층의 나머지 모습을 확인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때 내 걸음을 막은 것은 물론 다른 사람의 가정의 공간에 침입해서는 안 된다는 기본적인 예의에 의한 것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그 복도의 가려진 공간을 확인하면 사라지고 말 그 상상과 기분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꽤 한참 그렇게 있다가 두 칸 올랐던 계단에서 내려왔다. 다시 올 일은 없겠지만, 그때 나는 뭔가 '다음'이란 것을 기약했다.
그 '다음'의 공간, 조용한 한낮의 어두운 일본이 <리틀 포레스트>에 있었다. 구름이 낀 어둡고 습한 여름의 한낮, 습기를 물리치기 위한 장작불 화로와, 혼자 쓰기엔 넓고 아기자기한 집, 고요. 그리고 자신을 위한, 아주 오래 걸리고, 금방 먹어버리는 그런 요리.
보기 위해 보는
가끔 이렇게 순도 95%의 질감만을 위한 영화가 있다. 5%의 서사는 최소한의 이야기의 형태를 유지하거나 인물들의 사정을 아주 살짝 암시할 뿐이고, 그마저도 다 설명하지 않고 2편으로 넘겨버렸다. 일본 특유의 부담스럽게 따라오는 교훈주의도 덕분에 한발 물러섰고, 이거 요리 레시피 방송이랑 차이가 뭔가 싶을 정도로 본격적으로 요리 그자체에 탐닉한다.
<리틀 포레스트>의 질감은 소설과 닮았다. 그것도 제대로 된 이야기가 진행되기 전, 이야기 자체와 크게 상관없을 것 같은 초반의 묘사들. 시선을 따라 사소한 생각이 고이는 풍경, 어떤 전화가 걸려오기 전 혼자 차려먹는 식사, 두 번 다시 등장하지 않을 사람이 지나가며 던진 말 한 마디. 그런 것들이 소설의 살을 찌우고, 어쩌면 우리는 주제니 메시지니 그런 거창한 것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소설의 '살' 그 자체인 그런 것들을 눈으로 만지작거리기 위해서 소설을 읽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종종 한다.
<리틀 포레스트>는 그런 것들이 전면에 등장하는 영화다. 가끔 그저 '읽기' 위해 무언가를 읽는 것처럼, 이 영화는 한 95% 정도 철저하게 감각의 자극만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본 영화에서 어떤 '기분좋음'을 위해 욕심처럼 흔히 끼워넣는 장면들이 여기선 주제나 마찬가지다. 이 영화를 보고 좀 '심심했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뭔가 다른 것을 기대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우리는 밥을 먹으면서 무심코 읽는 3분요리 포장의 성분표 같은 것에서 무언가 '재미' 같은 것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지루한' 것은 아니다. 거기엔 분명 어떤 이유와 만족이 있으니까. 그런 종류의 기대, 그러니까 눈이 잠깐(이라고 하기에 2시간은 좀 길 수도 있지만) 멈추는 곳에서 감각을 자극하는 사물들과 기분을 음미하는 그런 쾌감을 즐길 수 있다면, 그것도 분명 어떤 장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 영화는 즐겁다. 서사와 메시지의 억압을 받을 때에는 파고들기 어려운 디테일을 마음껏 탐닉할 수 있다. 눈이 머무는 곳도 제한이 없다. 그곳에 중얼거릴 수 있는 한 마디의 말이 있기만 하다면. 더구나 거기에 있는 것이 정갈하고 소중하게 만든 음식이라면 더할 나위 없지 않을까. 지금은 약간 조용해진 것 같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 TV에서 음식 붐이 일었던 적이 있었다. 거의 모든 채널을 음식들이 점령했고, 백종원은 그 움직임의 정점에 있는 '마왕'이었다. 리모콘을 돌리며 투덜거리는 사람도 있긴 했지만 나는 그 움직임이 새삼스럽지도 않았고 질리지도 않았다. '음식'은 결코 쇠하지 않는 인간(이기 이전에 동물의)의 가장 매력적인 관심사이다. 그것은 언제나 효과적이고, 또 즐거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