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지금 행복한 방식으로 살고 배우면서도 미래 지향적인 성장을 할 수 있다. 특히 초등 단계에서 그렇다. 미래에도 행복할 수 있도록 “자기계발”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이 자라나는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 더 나은 자신이 되는 것을 자연스럽게 지향한다. 심지어 청소년 시기 전의 초등 단계의 아이들은 “의식적인” 노력 없이도 상당 부분 그게 된다. 말하자면, 거의 ‘충동’에 가까운 자연스러운 욕구와 욕망을 신뢰해도 된다는 것이다. 물론, 주변의 어른들이 옆에서 관찰하고 때때로 도움을 주면, 특히 ‘요청할 때’ 도와주면, 아주 잘 발전할 수 있다.
왜 그럴까? 대략 만 6세에서 12세까지의 아동들은 청소년(만 13세에서 18세)과 어떻게 달라서 그러는 것일까? 다른 점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학습자로서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동기motivation를 갖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특히 만 15세 정도 되면 인생의 목표 같은 것을 세울 수 있다. 더 어린 아이들도 ‘꿈’ 얘기를 하지만 그건 아마도 어른들이 직간접적으로 물어보기 때문에 생긴 것이지, 자신의 가슴과 머리로 정한 ‘목표’는 아닐 터이다. 물론 예외는 있겠다. 그러나 만 15세쯤 되면 대체로 자신이 세운 목표를 향해 ‘의식적인’ 노력이 가능하다. 공자의 지학志學처럼 우리 삶에 대한 오랜 성찰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고, 근래의 뇌과학도 그렇게 말해주고 있다. 그런 목표를 세운 학습자는 ‘훈련의 시간’도 기꺼이 해낼 수 있다. 그런 방식의 의식적인 노력이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그 전 시기에는 아이들이 대체로 ‘의식적인’ 노력이란 게 잘되지 않는다. 물론 전혀 안 된다거나 훈련의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우리 사회는 그런 문화적인 행동규범-“공부는 학생의 일”-의 힘이 자꾸 더 커지고 있다. 쉽게 말해 초등학생들에게 중고등학생들에게 하는 것처럼, 기대하고 ‘공부시키는’ 그런 어른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그런데 만 6세에서 11세 정도의 아이들에게는 부모나 선생이 의식적인 노력을 강조할 필요가 매우 적다. 그 아이들에게는 ‘의식적인 노력’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바로 자기 주변의 세상을 배우려는 본능적인 욕구이다. 노력이라는 ‘문화’보다 욕구라는 ‘자연’이 힘이 센 시기가 만 12세 전의 시기인 것이다.
훈련보다는 본능, 문화보다는 자연, 노력보다는 욕구를 충실히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아이에게 없는 동기를 부모가 채워줄 수 없고, 있는 동기 방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없는 동기를 채워주려 하다 보면 오히려 수동성만 키우게 될 것이다. 그러지 말고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동기, 이걸 방해 안 하는 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