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들의 교육, 즉 그들의 학습과 성장에는 본능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예시가 있다. 발달 심리학자 피터 그레이Peter Gray는 특히 세 가지 본능-호기심, 놀려는 마음playfulness, 그리고 사람들과 어울리려는 마음sociability-을 지적하는데, 그런 본능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수가타 미트라Sugata Mitra는 1999년에 인도 뉴델리의 IT회사 과학디렉터였다. 그가 그해 1월에 실험 하나를 시작한다. 이 실험은 회사의 실험실에서 하는 것이 아니고, 회사 건물 바깥의 거리에서 하는 그런 특이한 것이었다. 건물이 위치한 거리는 빈민가였다. 그곳에 컴퓨터 한 대를 설치했다. 빈민가의 아이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컴퓨터를 처음 본 아이들이었다. 그런 그들 앞에서 컴퓨터를 설치한 어른이 전원을 켜 보이고는 자리를 떠났다.
한 달이 지났다. 어떻게 되었을까? 한 달 전만 해도 컴퓨터를 처음 봤던 아이들이 이제 컴퓨터를 사용할 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스스로 배운 것이다. 클릭하고 드래그하고 윈도우 창을 열고 닫고, 파일을 띄우고 저장하고, 또 게임도 하고, 인터넷 열어서 서핑하고, 심지어 이메일 계정을 만들어 사용하는 아이들까지 있었다. 이게 어찌된 일일까? 이 만 6세에서 13세의 아동들은 어떻게 스스로 배운 것일까?
컴퓨터를 가지고 놀다보니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구 하나가 새로운 것을 깨우치게 되면 친구들에게 알려준다. 그렇게 배운 것이다. 이곳만이 아니었다. 인도 내에서 총 26번 반복된 실험에서, 그리고 다른 나라들(캄보디아, 이집트, 남아프리카)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컴퓨터를 설치하고 3개월쯤 지나면 그 모든 곳에서 아이들은 컴퓨터 조작법을 스스로 터득하고 공유한 것이다.
피터 그레이Peter Gray는 학습과 관련된 세 가지 본능적인 욕구로 이 현상을 설명한다. 첫째와 둘째는 호기심과 놀려는 마음playfulness이다. 이 정체 모를 물건이 무엇일까 궁금한 마음, 그리고 ‘이렇게 하면 되나? 저렇게 하면 되나?’ 자신의 궁금한 마음을 행동에 적용해보는 놀이욕구가 그들로 하여금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보게 한다. 결국 누군가는 깨치게 된다. 그리고 세 번째 본능이 사람들과 어울리려는 성향sociability이다. 이것 때문에 아이들은 새로운 것을 알게 되면 친구들과 공유한다. 그게 혼자만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재밌기 때문이다.
이 실험 결과는 아동의 교육을 어떻게 구성해야할지 우리에게 힌트를 주고 있다. 호기심, 놀이 욕구, 사람들과 어울리려는 욕구, 이 세 가지 본능을 잘 활용하라고 말해주고 있다. 이런 본능을 아동들의 교육에 적용하는 것이 언스쿨링이고 자기주도교육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고 그곳에 익숙해질 때쯤부터 잃어버리거나 손상되는 것이 생긴다. 바로 ‘자기주도’의 습관이다. 아이들은 학교를 오래 다닌 결과로 ‘자기주도’ 습관이 없어지기 전까지는 모두 자기주도의 달인들이다. 만 4~5세의 아이들을 떠올려보면 된다. 말을 배우고 책을 읽어 달라고 하고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은 자기가 관심 있는 것에 몰두하며 배우고 익히고 창작한다. 자라나는 풀만 봐도 신기해하며, 지렁이만 봐도 질문을 한다.
학습적인 기능을 하는 본능들이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초등학교에 들어간다고 바로 없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초등학교는 그 자기주도적인 배움을 장려하는가 아니면 억제하는가? 전보다는 학생 개개인에게 민감한 선생님들이 많아졌지만, 여전히 학교라는 체제는 아이들을 학교에 ‘적응’시키기에 바쁘다. 아이들이 보여주는 자기주도 본능은 학교를 통한 교육방식에는 걸림돌로 인식되기 일쑤다. 그래서 그것들을 ‘단체생활’이나 ‘사회화’를 대의로 하여 억누른다.
물론, 어떤 아이들은 학교를 오래 다녀도 ‘자기주도’의 습관이 남아 있다. 그러나 누구도 아무 손상 없이 그 과정을 통과하지 못한다. 수동성을 키우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다들 그 점을 공유하기 때문에 그런 상태를 특별하게 취급하지 않을 뿐이다. 문화적인 힘이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은 아닌데 자연스럽게 하는 힘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문화를 말하고 있는가? 학습자들이 ‘지금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지 않을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문화를 말한다. 이런 자유는 우리에게 부족한 자유 중에 하나이다. 한국은 법으로, 또 규범으로 하고 싶지 않은 것도 하게 만드는 정도가 강한 사회들 중에 하나다. 그것이 항상 나쁜 결과를 내지는 않는다. 일례로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상황에서는 그것이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냈다. 마스크를 쓰고 싶지 않아도 규정도 생겼고, 그 전부터 눈치가 보여서 쓰게 된다. 그것이 감염병에 매우 성공적으로 대처해낸 한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교육 분야로 가면 그 특성이 매우 부정적인 효과를 낸다. 간명하게 말해서 수포자들에게 수학을 영포자들에게 영어를 계속 하게 만드는 공교육 시스템이다. 고문이 따로 없다. 적성에 맞지 않는 것은 건너뛸 자유 같은 것은 한국 초중고에 없다. 심지어 때를 기다렸다가 할 수 있는 자유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면 당연히 누구에게나 뒤처지는 부분이 있고, 그걸 채우려고 학원으로 과외로 돈은 돈대로 쓰고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지쳐간다. 학습은 거의 전적으로 노동이 된다, 입시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