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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석 Jul 10. 2024

비전문화와 홈스쿨링 제도화 가능성

홈스쿨링 인구가 늘어나는 것은 20세기 후반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비전문화deprofessionalization 현상 혹은 DIY(do-it-yourself) 현상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근대적인 시스템이 자리를 잡는 과정에서 우리는 모든 것의 전문화를 겪었다. 간단한 집 안의 전기, 주방, 화장실 수리들에서부터, 우리의 건강이나 자녀의 교육 등의 것들까지. 그러던 것이 근래에는 다시 자기 손으로 되찾아오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것을 비전문화라고 일컫는다. 홈스쿨링 하는 가정들이 늘어나는 것은 자녀 교육의 비전문화라고 할 만하다. 그리고 그런 세대는 홈스쿨링 제도화를 요구할 수 있다.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의 시나리오인데, 그것은 사법기관이 간여하게 되는 경우다. 다른 경우가 좀 더 ‘아름다운’ 시나리오이기는 하다. 그것은 입법기관이나 행정기관에서 나서서 법을 만들거나 개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 그것이 확실하게 일어나지 않고 있어서, 다소 ‘아름답지 못한’ 시나리오가 현실에서 실제로 펼쳐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사법기관이 관여하게 되는 시나리오란 간단하게 말해서 행정소송을 거쳐 헌법소원까지 가는 경우를 말한다.


행정소송이 왜 시작될 수 있는가? 현행법상 학부모가 (학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학교에 안 보내겠다고 고집하면 학교는 법적인 제재를 (사법기관에 요청) 할 수 있다. 그런 법적 제재를 하는 것은 국가기관의 권한 안에 있다. 벌금 집행을 할 수 있고, 그 이상의 처벌이 내려질 수도 있다. 그러면 그 결정에 대하여 부모가 행정소송을 걸 수 있다. 그런데, 그 소송에서 원고(부모)는 질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왜냐면, 그게 현행법상 학교나 국가의 권한 안에 있는 행위라고 볼 수 있으니까.


행정소송을 원고가 지고나면 그 판단의 근거가 되는 법령이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저해한다는 뜻에서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다. 그리고 해당 법령이 헌법불일치 판정을 받을 상당한 가능성이 있다. 물론 원고가 반드시 이긴다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식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통해서 현행법이 바뀌는 과정을 겪는 일이 우리나라에도 많아지고 있다. 특히, 최근 10-20년 사이에 이런 경우들이 꽤 많이 쌓인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사회의 변화에 있어서 헌법재판소의 역할이 ‘평균적인’ 나라들에 비해서 큰 미국 같은 경우에는 이런 식으로 되는 경우가 꽤 많다. 그 결과 사회의 어떤 변화를 논의할 때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름(이를테면 임신중절에 관해서는 Roe. vs. Wade 1973)이 함께 언급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다. 우리나라는 헌법재판소가 법의 개정을 이끄는 경우가 적었으나, 최근에는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홈스쿨링 제도화도 그런 길을 가게 될 상당한 가능성이 있다.


사실 홈스쿨링의 제도화 필요성에 대해서는 교육행정관료들도 많이 알고 있고, 정치권에서도 분명 감지를 하고 있고 일부는 행동에 옮기고 있다. 예를 들어 2007년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가 제출한 ‘미래교육 비전과 전략 2030’ 안에는 이미 홈스쿨링제 도입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고, 2020년 말에 통과된 대안교육기관법이 기존(대략 2011~2015)에 논의 될 때, 홈스쿨링도 포함해서 논의되고는 했다. 그런데 홈스쿨링 하는 사람들이 정치적 조직화가 약해서 그런지 그 움직임이 힘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대안학교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2000년대에는 홈스쿨링 단체와도 함께 입법운동을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고 한다. 그 사이에 홈스쿨링 가정들이 대중매체에 많이 나와 홈스쿨링에 대한 이미지는 좋아졌을지 몰라도, 홈스쿨링 가정들 전체의 정치적 힘은 오히려 줄어든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 중요한 제도의 변화가 그다지 아름답지 못한 방식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 장에서 논의한 바는 사회적 혁신 사례로서의 홈스쿨링과 언스쿨링 인구의 등장과 증가이다. 더불어 약간의 미래 전망을 논의하였다. 그러나 이런 사회적 현상의 의미를 누구나 중요하게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부족하다. 자기주도교육이 미래교육이 될 수 있는 이유가 아직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다음 장의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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