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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선택한 길

결혼, 그 예상밖의 행복

by 서진

정말이지, 결혼은! 단 1도! 내 계획에 없었다.


빚에 묶여있다 풀려난 해방감은 말로 다하지 못할 정도로 나를 들뜨게 했다. ‘드디어 나도 골드미스의 길에 들어설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골드미스’를 네이버에 검색하면 이렇게 나온다.

‘30대 중반 이상의 미혼 여성 가운데 학력이 높고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여성을 이르는 말’ 그 당시에는 미드 ‘섹스앤더시티’의 영향으로 골드미스란 말이 유행처럼 번졌었다. 나도 골드미스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비록 학력도 높지 않고 아직 경제적 여유도 없었지만, 빚이 없으니 금방 골드미스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월급날, 통장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월급은 나를 행복하게 했다. 퇴근 후에는 문화센터에서 그림을 배우거나 요가를 하며, 처음으로 워라밸이 있는 삶을 살게 됐다. 조금만 저축하면 20대에 못해본 친구와의 여행도 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한마디로 숨통 트이게 살 수 있겠다 싶었다. 나는 혼자서도 반짝거리며 잘 살 자신이 있었다. 드디어 나만을 위한 삶이라니. 그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벅차오르고, 세상이 내 편이 된 것 같아 기뻤다. 그가 끼어들기 전까지는.


그는 같은 회사, 다른 부서인 구매부 대리였다. 예전에 내가 어음발행 실수를 도와준 사람이기도 해서, 늘 고마운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2년 넘게 회사동료일 뿐이었다. 나는 남자친구가 있었고, 그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땐 관심밖의 사람이었으니까. 전 남자친구가 다단계에 빠져 이별한 뒤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연말이었고 회사의 전체 회식이 있던 날이었다. 술에 취한 상무님이 그와 나를 자신의 양옆에 앉히더니, 느닷없이 말했다.


“ 둘 다 좋은 사람들이고, 짝도 없으니 잘해봐. ”


웬 오지랖인가 싶어, 한쪽 귀로 흘려듣고 있었다. 상무님이 자리를 뜬 뒤, 그 역시 취한 얼굴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


“ 저는... 그쪽이 좋은 거 같아요 ”


술기운이 섞인 고백이었지만, 날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에 사람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 그는 어제 일을 기억하냐고 물었고, 그 대화는 곧 비밀 연애의 시작이 되었다. 2년 동안 보아온 그는 성실했고, 능력도 있었고, 교제를 시작한 후로도 그 인상은 변함이 없었다. 한쪽 바지를 살짝 걷고 담배를 피우며 회사 마당을 가로지르는 뒤통수를 보고 있노라면 괜히 귀엽게 느껴져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다정하진 않았지만, 모난 구석도 없었다. 그래서 싸울 일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조용히, 그에게 스며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그날 우리는 처음으로 크게 다퉜다. 결혼에 대한 생각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그는 결혼 생활이 주는 안정과 행복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결혼은 훨씬 더 현실적이었다. 모아놓은 돈 없이 시작하려면 또 빚을 져야 했다. 내가 평생 한 남자를 사랑하며 살 수 있다는 확신도 없었다. 아기가 생기면 지금까지 쌓아온 커리어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혼에 대한 비관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무엇보다, 나는 그 시절 내 삶에 만족하고 있었다. ‘지금 이대로도 좋은데 굳이 결혼을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컸다. 그런 나에게 그는 이별이라는 초강수를 두었다. 그리고 난 그 싸움에서 졌다. 어느 순간 정신 차려보니, 아빠 손을 잡고 식장에 들어서고 있었다.


‘나는 왜 그를 선택했을까?’


그때 나는 싸움에서 이길 수도 있었다. 이별을 택했다면 끝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결국, 내가 졌다. 왜였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그에게 믿음 혹은 본능 같은 확신을 느꼈던 게 아닌가 싶다. 그가 나에게 보였던 성실함에서 가정에 충실할 그를 보았다. 감정기복이 심한 나와는 달리, 그는 늘 평정심을 유지했고 우리가 함께하면 생활도 안정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둘 다 가난했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지만, 이 사람이라면 둘이 알콩달콩 저축해 가며 살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진 것이다. 내가 꿈꾸던 자유는 사라진 게 아니었다. 단지 그 자유 안에 그가 함께하게 된 것뿐이었다.


그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지금 우리는 13년 차 부부이다. 그 시절 뜨거웠던 감정은 사그라들고, 대신 익숙함과 편안함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그는 여전히 꽃 한 송이 사지 않는다. “먹지도 못하는 걸 왜 사”라는 사람이니까. 걸을 때 손을 잡아주는 다정한 남자도 아니다. 그렇다고 아내가 싫어하는 일을 굳이 하며 속 썩이는 남편도 아니다. 밥을 먹고 나면 말없이 내 물컵에 물을 따라놓는다. 치킨을 시키면 닭가슴살을 골라 내 접시 위에 올려준다. 출근하거나 퇴근할 때도 포옹을 잊지 않는다. 말도 많지 않다. 여행을 하자 하면 응! 하고 따라나섰고, 내가 무언가 요구할 때도 안돼! 가 없었다. 때로는 ‘나랑 뭘 하고 싶은 생각이 없나’ 싶은 생각에 이런 성격이 싫었던 적도 많았다. 남들 다 받아보는 꽃과 깜짝 선물도 받아보고 싶었다. 눈만 마주쳐도 웃음이 나오는 다정함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가끔 이런 일로 혼자 토라지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알게 됐다.


‘이게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구나 이건 그냥 이 사람의 성격이구나’


그는 나의 단점을 지적하지 않는다. 사사건건 간섭하거나 통제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는 나를 믿고 그 나름대로의 사랑의 표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내 감정과 싸우는 대신 그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이 사람과 늙어 죽을 때까지 손잡고 살아야 한다면 인정하고 마음 편하게 살자 싶었다. 그러자 놀랍도록 마음에 여유와 평화가 찾아왔다. 이렇게 우린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며 살아가고 있다. 그는 여전히 내 인생에 선물 같은 사람이다.


결혼은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맞다. 그래서 더 신중해야 했다. 13년 차 결혼생활이 늘 평탄했던 것은 아니지만, 후회는 없다. 나의 선택은 ‘버티는 삶’을 ‘살아가는 삶’으로 바꿔주었고, 그 변화는 결국, 나 자신을 구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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