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준비를 하다 보면 단골 질문 리스트를 뽑아서 어느 정도 답변을 미리 구성해둔다. 이중 "평소에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하나요?"라는 물음에 나는 항상 "달리기요"라고 답했다. 구조화된 답변 목록은 으레 과장과 날조의 장이기 마련이나, 달리기로 스트레스를 이겨낸다는 나의 말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긴 했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말이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한 때는 영화 「아워바디」를 본 날 저녁이었다. 「아워바디」의 주인공 자영은 8년 동안 행정고시에 사활을 걸었으나, 그녀에게 남은 것은 애인의 외면과 8년동안 방치된 자신의 청춘을 마주하는 일 뿐이었다. 꿈이 크면 그 부서진 조각 마저도 크다는 말이 있다. 자영을 응원하던 가족들의 기대와 자영 스스로가 꿈꿨던 시험 합격 후의 미래는 찬란했던 만큼 처참히 붕괴해 끝이 보이지 않는 죄책감과 절망감으로 자영을 짓누른다.
출처 :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자영이 그러했듯 내게도 찬란하게 깨어진 꿈의 조각들이 하루하루 커다란 비수가 되어 나의 몸과 마음을 잔인하게 파고들었다. 대형 광고 회사에서 전도유망한 신입사원으로서 때로는 드라마 미생의 안영이처럼, 때로는 만화 슬램덩크의 강백호처럼 모두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성장하는 슈퍼루키로 생활 하게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현실에 기다리고 있던 것은 4년이나 준비했던 대형 광고회사를 줄줄이 낙방하고 경영기획이라는 다소 생경한 직무로 시작된 신입시절이었다. 나는 도무지 익숙해질 수 없을 듯한 용어와 업무를 접하며 역량 부족의 늪에서 허덕이기 바쁜 천덕꾸러기 막내사원일 뿐이었다. 역량 미달의 신입사원이라는 꼬리표까지 달게 된다면 정말 그 시간을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아 야근과 업무 공부를 병행하며 근근이 버텼던 1년이었다. 어딘가 답답하고 억울했다. 그렇다고 악을 쓰며 표현하기엔 나에겐 그럴 만한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잿더미 같은 자영의 일상에 다시금 숨을 불어 넣은 것은 현주와의 달리기였다. 현주는 자영과는 정 반대의 8년을 살아온 인물이다. 남들이 쉽사리 선택하기 어려운 작가라는 길을 택해 걸어가는 한편, 밤에는 크루들과의 조깅을 통해 탄탄하고 건강한 몸을 가꾸어 온 생기가 넘치는 인물이다. 자영은 이러한 현주의 모습에 홀린듯 그녀와의 달리는 삶을 시작하게 된다.
무작정 앞을 향해 팔을 휘두르고 앞뒤로 발을 뻥뻥 차고 있으면 숨이 턱끝까지 차오른다. 밀려오는 숨은 머릿 속을 채우던 고민이 남아있을 자리를 날려버린다. 자영은 인생 첫 달리기 끝에 악에 받쳐 울부짖는다. 고시에 실패한 장수생으로서의 절망감과 남들은 모두 사회에서 자리를 잡았을 때 홀로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다는 두려움이 몸 밖으로 밀려나오는듯해, 보고 있는 나마저 후련했다.
자영이 현주에 홀렸듯, 저 장면을 보고 자영에 홀려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몇 년을 쏟아부은 꿈이 한 순간에 모래성처럼 스러질 때에도. 9 to 6 법적으로 정해진 시간의 바깥에서 숨죽이며 타자를 치고 긴장하는 야근의 연속되며 일상이 전복될 위기에 처할 때에도. 달리기는 나의 유일한 탈출구이자 구원자가 되어주었다.
뒷발을 차며 동료와 상사의 시선에 대한 부담감을 뻥하고 날려버리고, 팔꿈치로 날렵하게 허공을 가르며 미숙한 나 스스로를 마주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베어버렸다. 내가 1의 실수를 하면 100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벗어던졌다. 가벼울 수 없었던 나날을 적어도 있는 그대로보다 무겁지 않게 잘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고민의 자리를 남겨두지 않는 달리기 덕분이었다.
한편, 거친 숨을 뱉어 내던 자영의 모습이 기억 속에서 흐릿해질 무렵 달리기에 대한 열정이 잠시 사그라든 적이 있다. 그무렵 조금은 회사 생활에 익숙해지며 예전 만큼 커리어와 내가 처한 현실에 대해 비관하지 않게 된 것도 한몫 했다. 상사들이 시키거나 나에게 기대되는 무언가를 조금씩 해내고 있으면 한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월급이 들어오는 삶. 어디에도 '나'라는 것이 없는 이 조직 속에서, 마음 한구석이 찝찝하지만 나쁠 것은 없는 일상 속에서 달리기를 차일피일 미루게 됐다.
현주를 좇아 달리던 자영에게도 위기는 찾아왔다. 현주가 등단에 실패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돌연 세상을 등지며, 자영의 일상을 지탱하던 달리기에 목표가 사라졌다. 홀로 남은 자영은 현주가 살아생전 이야기해준 그녀가 가진 욕망의 발자취 좇다가 끝내는 방황하는 모습을 보인다.
나와 자영은 혼자서 뛰어보려 했지만 정처없이 떠도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렇듯 계속되던 달리기와의 권태기는 뜻밖에도 자영과 내가 '욕망'을 고민하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막을 내렸다.
홀로 달리기를 이어 가면서도 위태롭게 떠돌던 자영은 '그럼 내가 갈망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에 다다른다. 줄곧 엄마나 사회적 시선에 의해 주입된, 혹은 타인이 없으면 완성될 수 없는 수동적인 목표만을 바라보던 자영은 처음으로 혼자서 줄곧 상상만 하던 고급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자신의 욕망을 분출한다. 처음으로 마주한 욕망에 어떠한 영감이라도 받은 듯, 그녀는 달리는 목표를 회복한다.
주변 지인과 가족의 기대치에 맞추어 좋은 연봉과 복리후생 조건에 맞춘 대형 광고회사로만 취직을 고직했던 나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실패 후 다시 주변의 기대에 맞추어 적당한 기업에 취업을 하고 그 속에서 눈치껏 연차에 주어지는 과업들을 수행하며 굳이 달리기까지 하면서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태풍의 눈과 같았던 마음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고, 남들이 무시하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결론을 얻으며 이걸 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며 달리는 삶으로 귀환했다.
권태기라는 알을 깨고 나와서야 자영과 나는 우리가 달리는 이유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알게 된 것이다. 밖에서 우리에게 던져지는 시선 하에 억지로 향했던 지점으로 달리며 순간의 기분 전환엔 도움이 되지만 그 끝엔 표류가 있다. 반대로 오로지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여 진심을 다해 향하는 목적지가 있는 달리기라면 모든 순간이 금은보화를 찾아 떠난 탐험이 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면, 달리기로 스트레스를 극복한다는 내 말은 참으로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작게는 턱끝까지 차오르는 숨으로 일상에서 오는 부정적 감정을 해소하고, 그 다음 종아리부터 허벅지에 있는 모든 근육과 온몸의 땀구멍, 쉴새 없이 움직이는 호흡기관, 모든 세포가 회사의 묶인 몸둥이일지언정 진정 욕망하는 것을 향한 의지를 다지는 나만의 의식이라고 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