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건대, 나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
정신과 의사나 기타 전문가와 면담을 한 것은 아니었기에 나의 강박이 경미한 수준인지, 아니면 중증의 그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중증의 강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엔 괜히 혼자 께름칙해져 나의 강박이, 현대인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경미'한 것이라 스스로 생각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는 크게 두 갈래인데,
하나는 메모 및 알람에 대한 강박(확인 강박),
나머지 하나는 강박적 사고(구체적으로 말하면 침습적 사고)로 나뉜다.
태생부터 생각이 많아서 그런가.
시도 때도 없이 머릿속을 스치는 각종 해야 할 일, 챙겨야 할 물건, 심지어는 누군가에게 해야 할 말들까지.
가리지 않고 모든 것들을 수시로 알람을 맞춰놓는다.
휴대폰에 빽빽하게 들어찬 알람들로도 모자라 포스트잇을 잘 보이는 곳에 붙여놓거나, 심지어는 꼭 챙겨야 할 물건들이라면 내 동선이 겹치는 곳, 이를테면 다음 날 신을 신발 뒷굽에 살포시 놓아두기까지 한다.
웃긴 건,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이미 나는 그 일, 물건, 말들을 진즉에 처리하거나, 챙기거나, 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모두 내 머릿속에 각인되었음에도 혹시나 하는 불안 때문에,
즉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끊임없이 메모를 하고, 알람을 맞추는 등 나 자신을 괴롭히곤 하는 것이다.
맹렬하게 완벽함을 추구한다는 것. 참으로 고된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음으로 침습적 사고인데,
주로 나 혹은 내가 아끼는 사람들(딸, 아내, 부모님 등)에게 일어나지 않았으면 아니, 일어나서는 안 될 일들이
기어코 일어나고 마는 그런 생각들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떠오르는 것이다.
딸과 아내가 산후조리원을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의 기억인데,
나는 거실에서 생후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내 딸을 두 팔로 안고 서 있다가, 갑자기 팔에 힘이 빠져 딸을 떨어뜨리거나, 혹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장난감에 발이 걸려 나와 아이가 함께 넘어져 딸이 다치게 되는, 매우 불쾌하고 거슬리는 상상을 한 적이 있다.
누구보다 딸을 아끼는 내가 이런 상상을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괴로워하던 어느 날,
미국의 정신과의사 '애나 렘키'가 집필한 '도파민네이션'이라는 책에서 나와 똑같은 경험을 한 누군가의 사연을 만나 무릎을 탁 쳤다.
요약하자면, 나를 그런 상상으로 이끈 배경에는,
'내게 전적으로 기대어 보호받아야 하는 생명체를 돌봐야 한다는, 아빠로서 느끼는 엄청난 책임감'이 마음속 깊은 곳에 꽈리를 뜰고 있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그것에(딸이 다치게 되는 것에) 엄청난 공포를 느끼고 있었고, 그 공포가 내 마음에서, 상상 속에서 또렷한 이미지로 발현되었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너무나 소중한 대상을 향한 마음에서 비롯된 근거 없는 불안이었으리라.
(불안은 막연한 감정이어서, 상당히 불편한데도 제거하기가 참 어렵다.)
하지만, 이런 강박들이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만 끼치는 것은 아니다.
알람과 포스트잇 강박을 오래 지니고 살아온 덕에, 직장에서도 꼼꼼함이 몸에 밸 수 있었고,
강박적 사고(침습적 사고) 덕에, 소중한 내 사람들의 건강과 낯빛을 들여다보려는 습성을 갖게 됐다.
이래저래 불편한 점들이 분명 있지만,
이런 강박을 투쟁의 대상이 아닌, 나의 일부로 보듬으려 한다.
앞으로 최소 50년은 함께 지내야 할 텐데.
끊어낼 수 없는 관계라면,
헤어질 수 없는 운명이라면,
잘 지내보자고.
나는, 나의 강박을 친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