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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chi H Oct 15. 2023

72. 이상한 나라

잘생긴 긴 머리 여자

“ 오늘 뭐 하세요?”


“ 별일 없고 아이가 지낼 호텔을 들렸다가 아이의 짐과 숙박 체크인을 해주고 저녁 먹고 들어 오려고요.”


“ 저랑 혹시 맥주 한잔 하실래요?”


” 아 네, 그럼 오후에 카톡 드릴게요 “


첫 만남에 맥주를 한잔 하자고 제안을 하는 그녀가 대담하기도 해서 부담도 되었지만, 또한 나의 호기심이 발동을 했다.


아이와 명동을 가서 전주캠프에 필요할지 모르는 것들을 대충 사고, 점심도 맛나게 먹고 호텔에 체크인해 주고 캠프대장을 만나서 얼굴 도장 찍고 아이와 일주일 후 전주에서 보자고 다짐하고 헤어져 왔다.


오는 길에 그녀에게 카톡을 했더니, 혹시 다른 투숙객을 체크인하는데 도와줄 수 있는지 묻는다. 뭐 딱히 할 일도 없고 해서 숙소에 갔더니 한국분이 두리번두리번하신다. 알려주는 대로 안내를 해주고 비가 부슬부슬 오고 배도 고프고 해서 혼자 편의점에 가서 맥주 한잔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 가면 가장 좋아하는 것 중에 하나가 편안한 옷에 슬리퍼 신고 나가서 편의점 앞에서 간식거리와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것이다. 사람들 퇴근하는 것도 보고 교복 입은 학생들 보며 추억도 떠올리고 하는 게 가장 좋다. 장마가 시작된 것인지 비가 오니 선선하고 안성맞춤이다.


누군가가 투명한 우산을 들고 후다닥 뛰어온다. 그녀다. 한여름에 저렇게 긴 머리를  풀고 비도 부슬부슬 오는데, 가로등 불빛에 띄엄띄엄 비치며 뛰는 그녀의 모습이 귀신이 축지법을 하듯이 달려오는 것 같다. 닭살이 돋는다. 오싹하다.


“ 어머, 벌써 시작하셨네요”  목마름에 두 번째 캔을 들이켜고 있었다.

“ 안주도 없이 드세요?”


“ 아, 오시면 뭐 드실지 몰라서. 그런데 목이 말라서 일단 한 캔 급하게”


그녀는 피식 웃는다. 비웃음인가? “ 혹시 홍어 드세요?”


” 홍어? 글쎄 그렇게 많이 먹어보지는 않아서 뭐 안 가리고 먹으니 아무거나 드세요 “


난 편의점에 홍어를 파는지도 몰랐다. 그녀는 맥주랑 소주랑 그리고 홍어를 집어든다. 난 혹시나 몰라서 과자랑 오징어를 집어 든 것 같다.


그녀는 내게 그녀의 첫인상을 묻는다. 사실 그녀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 아침에 염주를 샀는데 집에 들어와서 손목에 차는 순간 모두 끊어졌다. 두 번째 염주를 다시 차는데 또 끊어졌다. 미신이다. 어릴 때부터 알 수 없는 그 감정의 골이나 불안감은 언제나 미신처럼 들어맞았다.


농으로 난 그녀에게 ‘ 이 집의 터가 좀 안 좋아요. 혹시 그 쪽방에 사연이 있나요?” 그녀가 놀란 표정을 짓는다.


“ 어디가 어떻게 보이나요?” 난 그녀에게 “거실마루에 분명 뚫리는 문이 있을 것 같은데 그걸 막아버려서 그런지 너무 답답하네요”. 역시나 문이 있단다. 집을 팔면서 한쪽을 막아버린 반쪽 집이라는 것이다.


“쪽방에서 뭐가 느껴지나요?”


나도 내 뚫린 입을  막을 수가 없었다. 나도 내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 누군가에게 참 슬픈 방인 것 같아요. 많이 울던 곳이랄까?”


그녀는 뜬금없이 내게 타로를 봐준다고 한다. 그녀는 내게 심판자이시네요. 타로 카드가 맘에 들었는지 그녀는 내게 조심히 그녀의 이야기를 꺼낸다.


첫 숙박업을 열면서 첫 손님이 캐나다 남자. 그 쪽방에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얼마 후 둘은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그리곤 그는 일주일을 더 연장하고 있다가 한국을 떠나고 캐나다로 돌아갔단다. 애타게 그가 돌아오기만 기다리는데 벌써 3개월이 지났고, 처음 몇 달은 그 쪽방에서 흐느끼며 지냈다고 한다. 애절함과 그리움이 이젠 아마도 의심과 절망감 아님 저주스러운 마음으로 변했을 것이다.


그녀는 내게 묻는다. “ 그를 만나러 갈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난 그녀의 질문에 선뜻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녀도 이미 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애매하게 난 “ 아 글쎄요. 사랑은 국경이 없습니다. 쟁취하세요” 술 취한 아줌마의 주정 같은 대답을 해 준 것 같다.


난 그 흐느낌의 정체를 알았다. 그리고 그녀가 몇 달 후 숙박업을 접었다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그 캐나다 남자는 그녀의 저주에 혹독한 값을 치러야 했을 것이다. 아직도 그녀의 흐릿하고 슬픈 큰 눈을 기억한다.


이상한 나라의 잘생긴 긴 머리 여자. 카톡을 해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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