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뭔가요?
독일에서 저는 지멘* 헬스케어 본사에 취직을 했습니다. 기업 홍보부 산하, Digital Engagement라는 부서에 있는 웹 콘텐츠 매니지먼트 (Web contents management)라는 팀에서 일을 하게 되었지요. 이 팀은 독일에 약 8명의 팀원이 있었고, 미국에 약 3명의 팀원이 있었습니다. 저희 팀 매니저는 미국 필라델피아에 계셔서, 10월에 일을 시작했지만, 실제로 매니저는 12월에 처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직속 매니저가 미국에 있다 보니, 시차 문제도 있고, 또 매니저가 휴가를 가거나 어떤 이유로 부재일 경우, 팀원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in-country manager라는 개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독일 내, HR과 관련된 문제는 이 독일 매니저에게 도움을 받을 수가 있었지요.
그럼 이번 글에서는 독일에서 제가 어떤 업무를 담당했는지 나눠보겠습니다. 웹 콘텐츠 매니저, 직무 타이틀 그대로 저는 웹에 올리는 콘텐츠를 매니징 하는 일을 했습니다. (네? 뭐라고요?) 지멘* 헬스케어는 여러 가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다양한 비즈니스 분야가 있지요. MRI, CT, 수술 장비, X-ray, 초음파 기기, 그 외에도 Digital Solution 등이 각 비즈니스 분야인데요. 이 분야마다 각 비즈니스 또는 제품에 대한 콘텐츠를 담당하는 마케팅 부서가 따로 있지요. 이 제품 마케팅 매니저들이 커뮤니케이션 부서와 함께 콘텐츠를 개발하고, 그 콘텐츠 예를 들면, 신제품 출시 보도자료를 저희 웹 콘텐츠 매니지먼트팀에 보내면, 저희 팀은 그 콘텐츠를 온라인 홈페이지에 올리는 일을 했습니다. 솔직히 놀랐어요. 이런 일만 하는 부서도 있구나 하고요. 보통 컨추리, 나라에서는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매니저가 모든 마컴(Marketing & Communication) 업무를 다 보기 때문에, 웹 콘텐츠만 매니징 하는 부서가 있다는 사실이 매우 놀라웠습니다.
제가 처음 팀에 합류했을 2017년 10월, 지멘* 헬스케어는 모회사인 지멘*에서 떨어져 나오는 IPO 주식 상장을 비밀리에(?)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멘* 홈페이지에 있는 지난 3년 간의 웹 콘텐츠를 새롭게 만들어진 지멘* 헬스케어 홈페이지로 옮겨야 했지요. 얼마나 많은 자료들이 있었을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도록 할게요. 저는 여러 콘텐츠 중에서 헬스케어만의 '채용' 페이지를 새롭게 구축하고, '언론'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옮기는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지멘*가 독일 회사이다 보니, 모든 자료는 영어와 독일어 두 가지 언어로 옮겨야 했습니다. 그때 옮겨야 했던 콘텐츠가 약 600 페이지 정도 되었던 것 같아요. 상당 부분이 copy & paste 복사 + 붙여넣기여서 이 부분은 외주에서 고용된 팀원들에게 맡겼고, 저는 '브랜딩팀', '인사팀', '언론홍보팀' 관계자들과 만나 어떻게 웹 콘텐츠를 게시하는 것이 좋을지, 그들의 의견을 듣고, 그에 맞는 콘텐츠 방향, 전략, 그리고 디자인, 기술적 가능성을 제안해 주는 일종의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했지요.
정말 다행스럽게도 제가 함께 일했던 관계자들은 모두 영어를 능통하게 할 수 있어서, 저는 업무를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참고로 특정 비즈니스 분야 관계자들은 독일어만 사용하는 분들도 있어서, 당시 독일어를 전혀 하지 못했던 저로서는, 이런 관계자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 매우 감사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이 2025년이니 벌써 8년 전의 일이네요. 저희 회사는 당시 오라클에서 제공하는 웹 콘텐츠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쓰고 있었습니다. 매우 오래된 시스템이라서 웹 콘텐츠를 구상하는데 필요한 모듈 (Module), 페이지 타입 등이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또 사진 혹은 동영상을 올리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여러 제약이 많았지요. 지멘*와 같이 거대한 기업의 경우, 어떤 외부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면, 그것을 전사적으로 사용해야 하고 다른 시스템으로 바꾸기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시스템이 오래되다 보니, 오랜 시간 동안, 내부 IT팀과 슈퍼 유저 등이 기존 모듈의 제한을 바꾸기도 하고, 또 예외 사항들을 추가하여 하나의 웹 페이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 모듈 변경 또는 추가를 위한 요청을 해야 했어요.
사실 600 페이지의 콘텐츠를 옮기는 일이나, 관계자들과 전략을 짜는 일보다 슈퍼 유저의 무드를 살피고, 필요한 것을 얻어내는 데 더 많은 노력이 들어갔습니다. 지난 글에서 언급했던 적이 있는데요. 기존 독일 동료들은 웹 콘텐츠 매니징 경력도 없고, 독일어도 못하는 제가 팀에 합류하는 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던 터였어요. 그런 동료들에게 도움을 받는 것도 꽤 까다로웠습니다. 소위 눈칫밥을 먹어가며 필요한 모듈들을 추가하고, 외주에서 고용된 팀원들에게 복붙을 요청해 드디어 3개월 뒤 Go live 그날이 다가왔습니다. 슈퍼 유저인 독일 동료가 제게 다가와 물었어요. "오늘 Go live D-day인데 기분이 어때?" 제가 답했죠. "응,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다 했으니, 마음이 편안해" 그 동료는 사실 네가 팀에 합류하는 것을 반대했었는데, 네가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프로젝트를 맡고, 또 담담하게 일을 진행해서 놀랐다. 짧은 시간 안에 해내야 하는 일이라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텐데, 솔직히 많이 놀랐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이 피드백을 받는 데 참 기분이 좋았어요.
그리고 드디어 Go live! 600 페이지 중, 4-5 페이지에만 작은 오류가 있었고, 그 오류는 IT 부서에 이야기해 바로 fix가 되었습니다. 타 부서 관계자들에게도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고, 매니저와 독일 동료들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프로젝트 이후 저는 '어려운' 또는 '기간이 타이트한 프로젝트' 등이 있을 때, 손을 번쩍 들어서 독일 동료들이 꺼리는 일들을 도맡아 했습니다. 당시에는 그저 '아, 내가 유럽에서 일을 할 수 있구나, 정말 행복하고 감사하다' 이런 마음이 가득했던 것 같아요. 다소 '까다로운' 또는 '찰랜징한' 업무가 저에게는 일을 배울 수 있고, 또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로 보였지요.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일이나 유럽에서의 직장 생활을 꿈꾸는 분들이 계시거나, 한국에 계시더라도 직장 생활 중, 저와 비슷한 '눈칫밥'을 드셨던 경험이 있으시다면,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댓글에 남겨주세요.
다음 편에서는 독일에 있을 당시, 처음으로 가게 되었던 '출장'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나눠보도록 할게요.